유승민 전 IOC 선수위원의 대한체육회장 당선은 축구계에도 적잖은 시사점을 남긴다. 박지성, 이영표, 박주호(왼쪽부터) 등 젊고 참신한 인재들의 용기 있는 선거 도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스포츠동아DB
유승민 전 대한탁구협회장 겸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43)이 지난해 9월 제42대 대한체육회장 선거 출마를 선언하자 많은 체육인이 “어렵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며 만류했다. 2016년 10월부터 ‘체육대통령’으로 활동하며 3연임에 도전한 이기흥 회장에 당연히 밀릴 것이란 부정적 전망은 선거운동 기간에도 우세했다.
그러나 “세상에 정해진 것은 없다”는 뚝심을 지닌 유승민은 물러서지 않았다. 변화와 개혁, 개선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직접 나서는 게 옳다고 봤다. 주변에선 고개를 저었음에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갔다. 2004아테네올림픽 탁구 남자단식 금메달리스트 출신으로 남자탁구대표팀 코치와 IOC 선수위원을 거쳐 탁구협회장까지 경험한 그는 자신이 있었고, 당당히 도전해 당선의 기쁨을 누렸다.
견고하고 높게만 보인 ‘기득권의 벽’을 넘어선 유승민의 스토리는 축구계에도 적잖은 시사점을 남긴다. 파행을 거듭하며 원점으로 돌아간 제55대 대한축구협회(KFA) 회장 선거가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4연임에 도전한 정몽규 회장과 허정무 전 축구국가대표팀 감독, 신문선 명지대 초빙교수의 3파전으로 8일 치러질 예정이었던 선거는 2차례나 연기됐다. 허 전 감독이 “불투명한 과정, 불공정한 선거”를 이유로 지난달 30일 낸 ‘회장 선거 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7일 인용하면서 한 번 중지됐고, 이어 KFA 선거운영위원회가 재공지한 23일은 범야권 캠프가 거부한 가운데 10일 선거운영위원 전원 사퇴로 끝내 무산됐다.
모든 프로세스가 ‘리셋’됐다. 선거운영위 재구성~선거인단 추첨~후보자 등록~공식 선거운동~본선거 등을 새로 진행해야 한다.
체육회장 선거처럼 KFA 회장 선거 역시 ‘변화 가능성’이 핵심 화두다. 그런데 결정적 차이가 있다. 후보들의 면면이다. 거듭된 실책으로 정 회장에 대한 여론은 좋다고 볼 수 없으나, 범야권 후보들을 매력적으로 보는 이도 많지 않다. 신선함은 없고, 정 회장을 겨냥한 네거티브 공세만 차고 넘친다.
축구계도 변화를 원한다. 후보자 등록부터 다시 가능해진 만큼 젊고 참신한 축구인들의 출마를 바라는 목소리가 높다. 정 회장의 책임론을 꾸준히 주장한 이영표 전 강원FC 대표이사(48), 박지성 전북 현대 고문(44) 등이 대표적이다. 문을 좀 더 넓히면 이동국 전 전북 선수(46), 박주호 축구해설위원(38) 등도 포함할 수 있다. 이 전 대표와 이동국은 KFA 부회장으로 활동했고, 박 고문은 KFA 유스전략본부장을 지내는 등 축구 행정과 낯설지도 않다.
외부에서 “KFA는 신뢰를 잃었다” 등의 말로 훈수를 두는 것도 좋지만, 더 높은 직책에서 활동하면 선한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다. “축구인은 행정을 해선 안 된다”던 과거 이 전 대표의 말은 유승민 신임 대한체육회장의 사례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많은 축구인은 “박지성, 이영표가 선거에 출마하면 많은 지지를 받을 수 있다. 스타가 밑바닥 민심을 훑었을 땐 파급력이 대단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백 마디 말이 아닌 용기 있는 실천이 필요한 때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