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장님의 교육 철학은 단순합니다. 잘 먹고, 잘 싸고, 잘 놀아야 공부도 열심히 한다는 거죠."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세화고등학교. 1층 화장실 문을 열자 고급스러운 회색 대리석 타일로 휘감은 벽면과 바닥부터 눈에 들어왔다. 특급 호텔 화장실 저리가라다. 변기마다 설치된 비데는 기본. 천장에 달린 LG 시스템 에어컨은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을, 겨울에는 따뜻한 온기를 화장실에 전한다.
태광그룹 산하 학교법인 일주세화학원이 최근 26억원을 들여 세화고와 세화여고 화장실 33실(변기 기준)을 전면 리모델링했다. 일주세화학원 관계자는 "고등학교 화장실 리모델링에 이렇게 큰 돈을 들인 사례는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모든 변화의 시작은 "화장실 악취가 너무 심하다"는 학생들의 하소연이었다. 일주세화학원 관계자는 "얼마나 학교 화장실에 가기 싫었으면 학생들 사이에 (소변이 나오지 않도록) 물도 안 마신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고 말했다. 학교 측은 화장실을 수시로 보수하고 매일 2~3차례 청소를 했지만, 묵은 냄새를 지울 수는 없었다.
목돈을 들여 전면 리모델링 논의가 시작된 건 지난해 4월 태광그룹 사주인 이호진 회장이 일주세화학원 이사장으로 취임한 뒤부터였다. 화장실 문제를 전해들은 이 회장은 그 자리에서 "학교의 주인인 학생들이 화장실 가는 걸 꺼린다는 게 말이 되냐. 돈이 들더라도 호텔 못지않게 쾌적하게 바꾸자"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방침이 서자 공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기존 뼈대만 남기고 배관·방수·창틀·바닥·벽체·천장재를 전부 교체했다. 양변기·소변기·세면대도 새 것으로 바꿨다. 총 투입비용은 26억6115만원. 변기 수로 따지면 하나당 8000만원씩 들인 셈이다. 태광그룹 산하 흥국생명과 흥국화재가 각각 14억6031만원과 12억840만원을 기부채납했다.
학생들은 삶의 질이 바뀌었다고 환호했다. 이날 만난 세화고 2학생 학생들은 "우리 집은 물론 호텔보다 더 쾌적하다"며 "화장실이 워낙 고급스럽고 깨끗하다보니 누구도 바닥에 침을 뱉거나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 학교 설립 때부터 '화장실'에 신경 써
일주세화학원은 1977년 세화고를 세울 때도 화장실에 공을 들였다. '일주세화학원 30년사'에 따르면 세화고는 재래식 변기를 쓰던 다른 학교와 달리 수세식 양변기와 보일러 난방을 들여 화제가 됐었다. 태광그룹을 창업한 고(故) 이임용 선대 회장은 당시 교사 건축 현장을 수시로 방문해 "대한민국의 미래를 짊어질 학생들이 공부하는 곳이니 구석구석 꼼꼼히 챙겨야 한다"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린 학생들에게 과분한 것 아니냐"는 일각의 반대에도 이 선대 회장은 "대통령과 장관을 배출할 학교인데, 이 정도 대우는 해야 한다"며 밀어부쳤다. 학생들은 환호했다. 세화여중 1회이자 세화여고 4회 졸업생인 야은숙 동서울대 관광정보처리학부 교수는 '일주세화학원 30년사'를 통해 "그 때 좌변기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시설"이라며 "좌변기를 처음 사용하는 친구들이 많다보니 별별 해프닝이 벌어졌다"고 회고했다.
◇ 학교 안에 e스포츠룸·헬스장·풋살장까지
화장실뿐이 아니다. 일주세화학원은 학생들을 위한 각종 편의시설 투자도 늘리고 있다. 이날 학교 건물 밖에는 다음달 준공하는 인조잔디 운동장 조성 공사가 한창이었다. 공사가 마무리되면 인조잔디 축구장 2개와 농구장, 야외 풋살장, 피구장, 배드민턴장 등이 들어선다.
학교 측은 "비가 오면 질퍽거리고, 햇빛이 쨍쨍하면 흙먼지가 날리는 마사토 운동장에 대한 학생들의 민원을 받아들여 지난해 11월부터 인조잔디 운동장 교체 공사에 나섰다"고 말했다.
지난달 20일엔 실내 체육관 문을 열었다. 이 곳에는 실내 풋살장·헬스장·탁구장·샤워실·e스포츠룸이 둥지를 틀었다. 돈 내고 써야하는 외부 상업시설에 못지않은 설비와 장비를 들였다.
학교 관계자는 "그룹 오너가 이사장으로 취임하자 오랜기간 쌓인 숙제들이 한꺼번에 풀리고 있다"며 "세화고의 파격 변신이 다른 학교로 확산해 많은 학생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공부하고 여가활동도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정우 한경닷컴 기자 krse905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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