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안 오페라는 베르디와 푸치니라는 두 거장 작곡가로 대표된다. 수많은 명작 중 베르디에게 <라 트라비아타>가 있다면, 푸치니에게는 <라 보엠>이 있다. 전자는 신분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 비극적 사랑을 그렸고, 후자는 냉혹한 현실 속에서 젊은 예술가들이 꿈꾸는 낭만과 사랑을 담았다. 두 작품에는 여주인공이 결핵으로 생을 마감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라 트라비아타>는 화려하고 드라마틱한 전개가 눈에 들어오지만, <라 보엠>은 서정적인 음악과 현실적인 감정 묘사가 먼저 떠오른다.
올 시즌(2024~2025) 메트 오페라는 총 19회의 <라 보엠>을 연주했다. 쇼나르 역으로 노래한 바리톤 김기훈은 총 10회, 베이스 박종민은 콜리네 역으로 다섯 번의 무대를 장식했다. 김기훈은 이번 시즌 처음으로 메트에 입성했고, 박종민은 2019년 같은 역으로 데뷔했다.
여주인공 미미는 <라 보엠> 서사의 중심축이자 이야기의 발단이 되는 인물이다. 다락방 문을 두드리며 등장하는 첫 장면부터 생의 끝자락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그녀는 연약하면서도 아름답고 애처로우면서도 따뜻한 존재로 그려진다. 2018년 메트 오페라에 데뷔했던 소프라노 크리스티나 므키타리안(Kristina Mkhitaryan)이 무대에 오르자, 22세의 순수하고 다정한 미미가 눈앞에 펼쳐졌다. 1막의 아리아 ‘내 이름은 미미(Sì, mi chiamano Mimì)’는 유연하고 청아했고, 3막에 부르는 ‘행복하게 떠났던 그곳으로(Donde lieta uscì)’에는 체념과 슬픔이 뚝뚝 묻어났다. 연약하면서도 강인함이 내재된 그의 목소리로 미미를 보는 것은 큰 즐거움이었다.
로돌포 역을 맡은 조셉 칼레야(Joseph Calleja)는 전설적인 테너 카루소에 비견되는 오페라 가수로 평가받고 있지만, 몇몇 장면에서는 기대에 못 미치는 모습을 보였다. 질감이 느껴지는 톤이었지만 객석으로 전달되는 소리는 다소 가벼운 인상을 주었다. 1막의 하이라이트인 듀엣 아리아에서 미미의 감성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지 않았고, 앙상블의 정교함이 떨어지는 순간도 있었다. 특히 특정 음역에서 소리가 갇히며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부분이 가장 아쉬웠다.
김기훈은 파리의 한 다락방에 모여 사는 네 명의 젊은 예술가 중 쇼나르를 맡았다. 긍정적이고 생활력이 강한 인물로서 자신의 실제 성격과 가장 흡사한 배역이라고 말했다. 공연 하루 전날까지 감기가 낫질 않아 무대에 오르기 직전까지 대역을 준비시켰을 만큼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천만다행으로 연주가 시작되기 직전 기침이 멈추고 목소리도 돌아왔다. 그는 부드러운 벨벳 톤의 목소리로 강렬한 존재감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그에게 집중되지 않는 장면에서도 섬세한 연기와 꼼꼼한 디테일로 큰 환호를 받았다.
특히 4막 다락방에서 발레 동작의 일종인 앙트르샤(entrechat)를 코믹하고 능숙하게 선보여 청중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이전 공연을 지켜봤던 소프라노 박혜상은 김기훈처럼 연기하는 쇼나르는 처음이라며 그의 재치와 뛰어난 연기력을 칭찬했다.
뉴욕타임스는 그를 ‘윤기 나는 음색과 멋진 레가토의 가수'로 소개하며, ‘제한된 기회를 최대한 활용했다’고 호평했다. 그리고 그가 더 큰 역할로 메트에 돌아오도록 함께 기대하자는 희망도 덧붙였다.
김기훈은 음악과 가까운 환경에서 자라났다. 아버지와 차를 타고 갈 때면 항상 노래가 시작되었고, 기타와 피아노를 치면서 음악과 점점 가까워졌다. 사물놀이와 밴드 활동을 하는 동안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조금씩 발견하게 되었다. 그에게 음악은 단순한 목표를 넘어서 자신을 표현하는 가장 본질적인 수단이 되어가고 있다.
뉴욕에서의 열 번째 공연을 마치면 그는 서울에서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에 출연한다. 그 후 통영 국제음악제에서 브리튼의 <전쟁 레퀴엠>으로 관객들을 만나고, 독일 베를린 슈타츠오퍼에서 <돈 카를로>의 로드리고 역에 출연할 예정이다.
뉴욕=김동민 뉴욕클래시컬플레이어스 음악감독·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