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스트타업에 주로 투자하는 더벤처스는 요즘 ‘인공지능(AI) 심사역’ 개발에 한창이다. 투자 검토 대상을 고르는 과정을 자동화한 시스템이다. 시제품을 테스트한 결과 AI가 1차 검토를 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0.5달러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심사역 한 명이 투자 검토에 쓰는 시간으로 환산하면 대략 20%를 줄일 수 있다는 계산을 얻었다.
올해 국내 벤처캐피털(VC)업계 최대 화두는 AI 활용이다. 벤처투자는 심사역 개인의 경험과 직관, 네트워크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해 AI 도입이 더딘 분야였다. 투자 검토 범위가 해외로 넓어지고 있는 데다 AI 기술이 발전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심사역 투자 패턴 분석하는 AI
13일 VC업계에 따르면 대형 VC인 소프트뱅크벤처스아시아(SBVA)는 지난해 10월부터 AI 투자 플랫폼 ‘알파미’ 베타 버전을 가동했다. 도입 두 달 만에 스타트업 두 곳을 발굴해 투자까지 마쳤다. AI가 각 심사역의 투자 성향을 학습해 관심 있을 만한 기업을 추천해주는 방식이다. 또 다른 투자사 빅뱅엔젤스도 투자 제안을 사전 검토하는 AI를 개발해 테스트하고 있다.
AI 심사역을 자체 개발 중인 더벤처스 관계자는 “AI 심사역은 인간 심사역의 투자 기준보다 낙관적인 판단을 하도록 설계됐다”며 “좀 더 많은 학습을 통해 고도화하면 인간 심사역의 투자 검토 시간을 80% 이상 줄여줄 것”이라고 예상했다.
DSC인베스트먼트는 자사 업무 효율을 넘어 VC업계를 대상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자회사 똑똑을 통해 ‘VC웍스’라는 AI 솔루션을 개발한 뒤 이달 4~6일 쇼케이스를 열었다. VC웍스는 투자 대상 기업의 보고서 등 각종 데이터를 취합하고 쉽게 관리할 수 있도록 돕는다. 쇼케이스엔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 한국투자파트너스, IMM인베스트먼트 등 국내 대형사를 포함해 매일 40여 명의 관리·심사역이 참여해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사람 보고 투자”는 옛말
미국 실리콘밸리 투자사들은 적극적으로 AI를 활용하고 있다. 미국 VC 시그널파이어는 자체 개발한 AI 플랫폼 ‘비콘AI’로 8000만 개 기업과 6억5000만 명의 인물 데이터를 분석해 기업을 발굴한다. EQT벤처스는 ‘마더브레인’이라는 AI 시스템으로 투자한 기업의 성장지표와 시장 반응을 실시간 분석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벤처투자는 그동안 정량적 데이터보다는 심사역 개인의 직관에 기대는 사례가 많았다. 심사역들은 ‘창업자 눈빛을 보면 안다’는 식으로 투자 기준을 설명해왔다. 첨단 기술 기업에 돈을 넣는 VC업계에서 AI 도입이 더뎠던 이유다. 상장사처럼 정리된 재무제표와 공시자료가 많지 않아 AI가 학습할 데이터도 부족했다. 업계 내 소개, 추천 등 인적 네트워크 의존도가 높은 것도 AI 활용을 가로막는 요인이었다.
최근 들어 비공식 정보량이 늘고 투자 검토 범위도 글로벌로 넓어지자 AI 적용을 추진하는 VC가 계속 늘고 있다. 투자 트렌드가 딥테크 중심으로 바뀌며 글로벌 주요 대학 연구실의 인맥이 중요해진 것도 AI 활용이 늘어나는 원인으로 꼽힌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앞으로는 AI를 투자 업무에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느냐가 VC들의 성과를 가를 것” 이라며 “AI 심사역을 활용한 투자가 일반화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