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사법부 망가지면 나라 망해
민주주의 공화국 보루 지켜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을 대법원이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진행한 후 ‘사법의 정치화 논란’이 일자 사법부가 전국 판사 회의체인 전국법관대표회의를 열어 입장을 정리하기로 했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오는 26일 오전 10시부터 경기 고양에 위치한 사법연수원에서 약 2시간 동안 ‘2025년 제2회 임시회의’를 하기로 했다. 앞서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지난 8일부터 이틀간 진행된 투표를 거쳐 구성원 5분의 1 이상(26명)의 요청으로 임시회의 소집을 결정했다.
임시회의에서 주로 다뤄질 내용은 ‘대법원 판결로 촉발된 사법 신뢰 침해’ ‘재판 독립 침해’ 우려와 관련해 추후 제출되는 안건들로 알려졌다.
법조계에서는 조희대 대법원장이 사퇴해야 한다는 일부 의견이 개진되고 있으나 대법원 결정이 비정치적이었다는 주장도 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후보는 회의 개최 소식을 접한 뒤 “국민 기대를 사법부가 깨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이에 앞서 경북 김천에서 조 대법원장 사퇴와 관련한 질문을 받고 “브라질을 한번 보라. 멀쩡하게 잘나가던 나라가 어느 날 갑자기 퇴락했다”며 “사법이 망가지니 나라가 망한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지금도 저는 대부분의 사법부를 믿지만 최후 보루가 자폭한다든지, 총구가 우리를 향해 난사하면 민주주의 공화국이 보루를 지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국민 모두가 다 알고 사법부도 안다”며 “헌법에 따라 모두가 잘 판단하고 처리할 거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전국법관대표회의 규칙 5조 4항은 “구성원의 5분의 1 이상이 회의 목적·소집 이유를 명시하며 요청하면 의장은 지체 없이 임시회의를 소집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전국 65개 법원의 판사 126명이 모인 판사 대표 회의체다.
임시회의에서 주로 다뤄질 내용은 ‘대법원 판결로 촉발된 사법 신뢰 침해’ ‘재판 독립 침해’ 우려와 관련해 추후 제출되는 안건들이다. 임시회의 개최 7일 전인 오는 19일까지 구성원 4인 이상이 동의하면 안건이 상정된다. 회의 현장에서는 구성원 9인 이상의 동의를 얻으면 안건 상정을 요구할 수 있다.
이번 임시회의 소집 결정의 시발점은 대법원의 이 후보 공직선거법 상고심 절차 신속 진행과 이에 대한 더불어민주당의 공격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지난 1일 상고심 선고에서 2심의 무죄 판결을 뒤집고 유죄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하자 민주당은 ‘사법부의 대선 개입’을 주장하며 조희대 대법원장 사퇴·탄핵 등 카드로 공세를 높이고 있다.
일부 판사는 이 같은 민주당의 주장과 궤를 같이하며 대법원장 사퇴 권고에 대한 논의 필요성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날 이 후보가 대법원을 노골적으로 압박하면서 사법부 내 ‘대선 개입’ 목소리에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법원 내에서는 대법원 결정이 오히려 ‘비정치적’이라는 시각이 우세한 모습이다. 이 때문에 법관 대표들의 임시회의 소집 자체가 타당한지를 두고도 첨예한 의견 대립이 벌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한 부장판사는 “구성원 5분의 1 이상이 소집을 요구하긴 했지만, 회의를 열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이 이보다 훨씬 강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일부 판사들 사이에서는 조 대법원장이 사퇴해야 한다는 요구마저 나온다. 하지만 ‘대법원장 사퇴’는 도가 지나치다는 법원 내 공감대도 형성돼 있어 향후 ‘정치와 사법’의 대결 양상이 팽팽할 것으로 보인다.
우여곡절 끝에 법관회의가 열리게 된 이상 사법부가 토론을 거쳐 건강해지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점에도 많은 판사가 동의하고 있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어쨌든 여론의 의심이 있고 사법부 안에서도 찬성 의견이 많이 나왔던 만큼 오히려 여러 안건을 다루면 사법부가 균형을 갖췄다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며 “민주주의 사회에서 법관들이 여러 의견을 내는 것은 당연하고 회의 자체를 사법의 정치화로 보는 것은 지나친 정치적 프레임”이라고 밝혔다.
다른 부장판사는 “절차가 이례적으로 빨리 진행된 것은 맞지만 관행을 벗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빨리 선고함으로써 민주당 대선 후보 등록이나 대선 절차 논란을 줄일 수 있다는 명분이 있었다”며 “회의 개최 자체를 반대하는 의견도 많았지만 이미 소집이 된 만큼 민주당의 사법 독립 침해에 대응하기 위한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전했다. 서울 박민기·김천 구정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