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번째 ‘CEO토요편지’ 보내는 박영희 동국대 교수
동문과 소통 위해 2004년 시작
공감과 위로의 편지로 ‘입소문’
기업 CEO는 물론 주부도 구독
매경 기사는 글감의 주요 원천
내일 1000회 맞아 기념행사도
소설가 김홍신 등 축하 메시지
수적천석(水滴穿石). 떨어지는 물방울이 돌에 구멍을 낸다고 했다. 작은 노력이라도 끈기 있게 계속하면 큰 일을 이룰 수 있다는 뜻이다.
박영희 동국대 CEO인문학 최고위과정 지도교수는 이 같은 ‘꾸준함’의 위력을 몸소 입증하고 있다. 2004년 4월 자교 부동산최고위과정을 졸업한 동문들과 소통하기 위해 시작한 ‘CEO의 토요편지’가 오는 15일 1000회 차를 맞이하는 것이다. 300회를 전후로 약 1년6개월간의 안식년을 가진 것을 제외하고 20년 동안 매주 1500~2000자 분량의 편지를 보냈다. 이는 A4 용지로 한 페이지를 넘나드는 분량이다.
최근 매일경제와 만난 박 교수는 “강의에서 미처 다 전하지 못한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시작한 것이 여기까지 왔다”며 “‘이만하면 됐다’ 싶을 때도 있었지만 편지에 공감하는 독자들의 반응이 다음 한 주 동안 새로운 편지를 쓰는 동력이 됐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편지는 내 이야기 같았다’ ‘요즘 힘들었는데 큰 위로가 됐다’는 메시지를 받을 때마다 편지가 누군가에게 작은 빛이 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고 덧붙였다.
편지는 삶에서 겪는 다양한 순간에 대한 인문학적인 성찰을 담고 있다. 박 교수의 경험이 기반이지만 소재 발굴에는 제약이 없다. 책, 영화 같은 문학 콘텐츠는 물론 신문 사설, 지인과의 대화에서 나온 한마디가 편지의 주제가 된다. 다만 ‘훈계하지 않는다’는 기본 원칙은 고수한다. 독자들에게 가르치거나 지시하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 묻고 답을 찾아가는 형식이다.
박 교수는 “같은 사람이 매주 글을 쓰다보니 결국 한계에 봉착했다”며 “2011년 제주도에서 1년 반 지내면서 편지 보내기를 잠시 멈추고 내실을 다졌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그때부터 책 읽기를 시작해 현재까지 1500권 넘게 읽었다”며 “매일경제신문을 비롯해 신문 칼럼과 기고도 라면박스로 10박스 이상 스크랩했다”고 부연했다.
20년의 세월은 수취인도 다양하게 만들었다. 1호 편지의 대상은 동국대 행정대학원 부동산최고위과정 1~4기 졸업자 170명이었지만 지금은 3000명으로 그 수가 늘었다. 직업군도 중소기업 CEO부터 은행 지점장, 변호사 같은 전문직에 자영업자와 주부까지 다양하다. 부모 세대가 받던 편지를 자녀가 이어받아 구독하는 사례도 생겼다.
박 교수는 유튜브를 비롯한 영상 매체가 주류로 자리 잡았지만 아직도 활자 정보를 우선시한다. 읽는다는 행위를 통해 얻는 정보가 더 깊게 체화돼 활용하기 좋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 편지 쓰기에 챗GPT 등 AI를 써봤지만 결국 ‘인간성’을 담으려면 사람의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며 “앞으로 10년 동안 편지 쓰기를 계속해 1500회까지 이어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오는 15일 열리는 1000회 기념 행사는 ‘천 번의 들숨과 날숨’을 주제로 100여 명의 열독자를 포함해 150명 규모로 진행한다. 이황우 동국대 명예교수와 소설가 김홍신, 방송인 김병조 등이 축전을 전한다. 행사 말미에는 어니언스의 ‘편지’를 전체 합창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