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방송 광고도 안 팔리는데, 이 정도는 허용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최근 tvN '벌거벗은 세계사'가 출연진이 앉는 의자에 상품평을 노출해 지나친 광고로 시청 흐름을 방해했다며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법정 제재에 해당하는 '경고'를 받았다. 방심위 결정은 '문제없음'부터 행정지도 단계인 '의견제시'와 '권고', 법정 제재인 '주의', '경고', '프로그램 정정·수정·중지나 관계자 징계', '과징금'으로 구분된다. 법정 제재부터는 방송사 재허가·재승인 시 감점 사유로 적용되는 중징계다.
이를 두고 방송가 안팎에서 "방송 광고 시장이 변화하고 있고, 수년째 쪼그라드는 상황에서 수십년전 규제 방식과 심의를 고수하며 방송사의 목을 조이고 있다"는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의자가 편하다", "이렇게 이용해야 한다" 등의 언급도 없이 단순히 상표가 노출됐다는 이유로 방송사 재허가·재승인 시 감점 사유로 적용되는 법정 제재를 받는 건 과하다는 의견이다.
방송광고시장, 어쩌다가…온라인 3분의 1 감소
지난해 국내 방송광고시장 규모는 3조253억원으로 2023년 대비 10.8%(약2646억원)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는 더 줄어 온라인 광고비의 3분의 1이하가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가 올해 1월 9일 발표한 '2024 방송통신광고비 조사보고서'는 2024년 국내 광고시장 총광고비는 17조원을 넘어서며 전년 대비 2.8% 성정했다고 추정했다. 파리올림픽과 AFC아시안컵 등 스포츠 이벤트와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등이 광고 수요를 촉진했다는 분석이다. 전체 광고시장은 올해 전년 대비 2.7% 증가하며 상승세를 이어갈 거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전체 광고시장의 성장세와 달리 방송 광고시장은 수년째 역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방송 분야 광고 매출액은 전년 대비 10.8% 감소했다. 온라인 광고비가 10조원을 돌파하며 8.2% 성장한 것을 비롯해 신문과 잡지, 옥외 광고 등 다른 분야 광고 매출이 모두 늘어난 것과 비교해 유일하게 마이너스 성장했다.
올해 역시 2.1% 줄어들 것으로 전망됐다. 3조원 선이 무너진 것에 이어 2조원까지 내려앉게 된 것. 2025년 온라인 광고비는 전체 광고시장 매출액의 61.0%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됐는데, 이는 방송광고 매출액의 3배가 넘는 수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하나증권은 지난해 11일 보고서에서 CJ ENM과 SBS 목표주가를 각각 9.4%, 15% 낮춘 7만7000원, 3만4000원으로 결정했다. 이기훈 하나증권 연구원은 "국내 정치이슈가 다소 장기화되면서 1분기 광고 업황 부진뿐만 아니라 계절적 성수기인 2분기도 일부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하향 조정한 이유를 설명했다.
특히 SBS에 대해서는 "넷플릭스향 국내 전송권 매출과 지난 4분기 명예퇴직에 따른 인건비 절감 등으로 50억원 정도 개선될 것으로 보이지만, 광고 부진에 따라 연결 자회사 역시 합산으로 약 40억원의 적자가 예상된다"며 "광고 업황을 하향 전망하며 목표 주가를 하향한다"고 했다.
KB증권은 지난 10일 보고서에서 SBS 목표주가를 2만2000원으로 12% 낮추면서 "대내외적 불확실성으로 인해 광고 수요가 부진하다"며 "경제 및 정치적 불확실성 증가로 전년 대비 (광고가) 15% 역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광고 자회사도 손실이 예상된다"고 했다. 현대차증권 역시 지난 9일 보고서에서 CJ ENM 목표주가를 8만원으로 하향하면서 "TV광고 역성장이 전망된다"고 밝혔다.
경기 침체에 시청 패턴 변화까지
방송 광고 시장 규모의 감소는 경기 침체와 정치적 불안, 여기에 시청자들의 시청 패턴 변화까지 복합적으로 더해진 결과로 해석된다.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2% 초반대였는데, 살림이 어려워진 기업들이 허리띠를 졸라 메면서 방송 광고를 줄이게 됐다는 분석이다.
한 방송사 고위 관계자는 "최근 방송 광고는 주말 빼곤 다 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주말드라마, 예능을 제외하면 시청률이 3%만 나와도 선방했다고 한다. 광고가 완판이 되는 시간대도 주말 프라임 시간대 뿐"이라고 하소연했다.
실제로 몇몇 제작자들은 "더이상 시청자들이 TV를 보지 않는다"며 "최근까지도 콘크리트 시청자로 불리던 노년층도 유튜브 콘텐츠를 보는 시대다. 누가 실시간으로 '본방사수'를 하냐"고 입을 모았다.
한 연출자는 "시청 패턴이 변화하고, 유튜브나 OTT 플랫폼에서는 규제나 제한 없이 자유롭게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방송은 중간광고도 '하네마네' 몇년을 끌었다"며 "수년전 규제로 옭아매니, 방송사 자체가 글로벌 OTT의 하청업체가 됐다"고 우려했다.
소현진 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방송의 영향력이나 공공재인 전파의 특성상 OTT보다 강한 규제가 있어야 하는 건 맞지만, 그 규제와 방식이 현재의 시청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는 건 사실"이라며 "방송사의 수익 악화 개선을 위해 중간광고를 도입할 때에도 시청권 침해 논란이 있었지만 무리없이 잘 자리잡았듯 다른 규제도 조금씩 풀어가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현재 KBS를 제외하고 지상파의 경우 무료로 시청하는 형태인데, 이 상태로라면 콘텐츠의 질이 매우 낮아질 수 밖에 없다"며 "시청자가 불쾌할 정도가 아닌 선에서, 콘텐츠를 왜곡하지 않는 정도를 찾아 완화하고, 광고 유형(길이) 역시 수십년째 정형화 돼 있는데, 이를 다양화해 광고주 욕구를 맞춰 주는 것도 고려해볼만 하다"고 제안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