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핏이 일찌감치 찜한 '마더머신'…트럼프도 함부로 관세 못 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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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핏이 일찌감치 찜한 '마더머신'…트럼프도 함부로 관세 못 때린다

한국을 두 번 방문한 워런 버핏(사진)이 방한 때마다 찾는 기업이 있다. 바로 대구에 있는 절삭공구 전문업체 대구텍이다. 대구텍은 버핏이 이끄는 벅셔해서웨이의 손자회사다. 이스라엘 절삭공구 그룹 IMC가 1998년 대구텍의 전신인 대한중석을 인수했는데 벅셔해서웨이가 2006년 IMC 지분 80%를 사들였다.

버핏과 관련 있는 국내 공작기계 업체는 또 있다. IMC가 2대주주인 코스닥시장 상장사 와이지-원(YG-1)이다. 이 회사는 대표적 절삭공구인 엔드밀 분야에서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다. 엔드밀은 구멍을 뚫는 드릴과 달리 둘레와 끝면에 날이 있어 평면과 옆면을 자르는 데 쓰는 절삭공구다.

버핏이 한국 공작기계 업체에 잇따라 투자한 것은 공작기계산업이 제조업 상황을 가장 먼저 감지할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 공작기계는 기계를 만드는 기계라고 해서 ‘마더 머신(mother machine)’으로 불린다. 기업이 공장을 신·증설하면 자신의 공정에 맞는 공작기계를 주문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기업은 자신의 신제품 제원부터 규격, 설계까지 거의 모든 것을 공작기계 업체와 공유한다. 자연스레 제조업 경기와 기술 흐름이 공작기계 업황에 반영된다. 공작기계산업이 400조원 자산을 운용하는 투자 전문가 버핏에게 중요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버핏이 일찌감치 찜한 '마더머신'…트럼프도 함부로 관세 못 때린다

세계 경제 흐름 읽는 선행 지표

버핏이 일찌감치 찜한 '마더머신'…트럼프도 함부로 관세 못 때린다

글로벌 투자은행(IB)과 자산운용사들은 일본공작기계공업회(JMTBA)가 매달 발표하는 공작기계 수주 통계를 챙겨 본다. 일본은 매출 기준 세계 1위 공작기계 기업 야마자키마작을 비롯해 DMG모리, 아마다, 오쿠마, 마키노, 화낙 등 글로벌 업체가 즐비한 공작기계 중심국이다. 일본 기업이 개발한 컴퓨터수치제어(CNC) 선반, 5축 가공기 등이 없으면 세계 제조업이 멈출 것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일본 공작기계 위상은 절대적이다.

JMTBA에 따르면 일본 공작기계 주문액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4118억엔(약 4조1200억원)으로 전년 대비 68.4% 급감했다. 세계 제조업 경기가 꼬꾸라졌다는 점이 공작기계 업황에 반영된 것이다.

이후 2010년 회복기에 접어들자 공작기계 주문액은 9786억엔으로 전년 대비 137.6% 급증하며 경기 회복의 선행 지표 역할을 했다. 이어 2016년 1조2500억엔이던 주문액이 2017년 1조6455억엔, 2018년 1조8157억엔으로 빠르게 늘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글로벌 제조업 경쟁이 일어난 시기다. 당시 중국이 ‘제조 2025’ 전략에 나서 세계적으로 자동화·고정밀 가공 설비 주문이 쇄도했다.

공작기계 없으면 의료산업도 무너져

공작기계산업은 크게 금속 절삭과 금속 성형으로 나뉜다. 금속 절삭은 전체 공작기계 시장의 65%를 차지한다. 금속 성형은 굽힘, 늘림 또는 압축 등 다양한 기술을 사용해 금속을 원하는 모양으로 변형하는 것이다. 금속을 누르는 프레스, 롤러에 통과시켜 원하는 두께와 형태로 성형하는 압연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공작기계가 쓰이는 곳은 다양하다. 자동차, 항공기, 우주선, 선박에 들어가는 엔진 부품을 비롯해 기어와 베어링, 항공기 날개와 반도체 웨이퍼를 잡고 있는 포커스링 등 수많은 초정밀 제품이 공작기계로 만들어진다. 전력 생산을 위한 각종 발전기 터빈과 석유 시추 드릴도 공작기계로 제조한다. 외과용 가위, 인공관절 같은 의료기기 역시 공작기계 없인 탄생할 수 없다.

얽히고설킨 글로벌 갑을 관계

글로벌 공작기계업계는 일본, 독일, 한국, 중국 등 제조 강국이 주도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일본이 가장 앞서 있다. 지난해 매출 기준 상위 10개 공작기계 업체 가운데 야마자키마작을 비롯해 오쿠마, 마키노, 니덱(일본전산), 화낙 등 5곳이 일본 기업이다. 2016년 독일 DMG와 일본 모리세이키가 합병해 탄생한 이 분야 1위 DMG모리까지 포함하면 일본 기업은 6곳으로 늘어난다. 유럽에선 독일 GROB와 스위스 GF가, 미국은 하스가 10위 안에 들었다. 한국 기업은 DN솔루션즈가 유일하게 3위에 올랐다.

공작기계업계에서 중국의 위상은 독특하다. 중국은 2023년 기준 세계 공작기계(852억달러)의 32%에 달하는 274억달러어치를 제조한 최대 생산국이다. ‘세계의 공장’답게 전 세계 공작기계 수요의 40%가량을 차지한다. 친촨기계공구, 선양기계 등 세계 20위 이내 기업이 있지만 아직 고정밀·고부가가치 기계의 80% 이상은 일본, 독일 등에서 수입하는 ‘을’이다. 반면 절삭공구와 고경도 공작기계 부품에 들어가는 텅스텐, 희토류, 몰리브덴 등을 보유하고 있어 소재 공급 측면에선 ‘갑’의 위치에 있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450여 개 공작기계 제품을 생산하는 DN솔루션즈를 비롯해 절삭공구 강자인 와이지-원, 대구텍 등을 보유한 공작기계 강국이다. 그러나 핵심 원료는 중국에서, 공작기계의 두뇌 격인 CNC 같은 핵심 부품은 일본에서 조달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공작기계산업은 경제안보 측면에서 전략적 특수성이 있다. 중국 원료 없인 공작기계를 만들지 못하지만 한국, 일본, 독일 기계 없인 중국 공장도 돌릴 수 없다.

공작기계산업이 미국의 관세 전쟁에도 비교적 타격이 작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제조업 기반이 무너진 미국은 사실상 하스가 유일한 주요 공작기계 업체다. 만약 미국 정부가 공작기계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면 미국 제조업이 큰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우주, 항공, 반도체, 의료 등 첨단 제조업을 재건하려는 미국 정부의 발목을 잡는 자충수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공작기계는 첨단 반도체 못지않은 국가의 전략 자산”이라며 “AI와 결합해 새로운 공작기계 패러다임을 선도하는 국가가 제조업 경쟁의 승자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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