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화에 총기 살인 ‘앵그리 육대남’… “은퇴후 상실감에 공격성 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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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총 살해 파장] ‘사제총 살해’ 계기로 본 60대 범죄
강력-폭력 범죄 피의자 4년새 12%↑… 베이비붐 세대, 경제 발전-IMF 경험
건강수명 느는데 심리적 박탈감
전문가 “대부분은 심리적 건강 챙겨… 은퇴 후에도 사회 관계망 연결 필요”

사제 총기로 아들을 살해한 60대 남성 사건이 충격을 안긴 가운데, 비슷한 세대 남성의 강력 범죄가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 생계형이나 경범죄 위주였던 범죄 성격도 최근엔 폭력, 방화, 성범죄 등으로 거칠어지고 있다. 이른바 ‘육대남’으로 불리는 60대 남성들이 은퇴 후 겪는 사회적 고립과 경제적 불안 등이 대인관계 문제 등 사소한 갈등과 맞물려 범죄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4년 새 12% 증가… 늘어나는 60대 범죄

경찰청에 따르면 강력·폭력 범죄를 저지른 60대 남성 피의자는 2018년 2만6587명(강력 2024명, 폭력 2만4563명)에서 2022년 2만9788명(강력 2373명, 폭력 2만7415명)으로 12% 늘었다. 법무부 조사를 보면 전체 수형자 중 60대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이 2015년 9.5%에서 지난해 17.5%로 증가했다. 수형자 중 남성 비중은 약 90%에 달한다. 60대 이상 인구는 2015년 약 460만 명에서 2022년 약 700만 명으로 52.2% 증가했다. 하지만 같은 기간 수형자 수는 2배 가까이로 늘었다. 성범죄도 예외는 아니다. 경찰 조사 결과 2018년 1756명이던 60대 남성 성범죄자는 2022년 2042명으로 증가했다.

올해 사회적 논란이 된 사건 중 60대가 피의자인 경우가 적지 않다. ‘서울 봉천동 화염방사기 사건’은 4월 21일 층간소음 갈등 끝에 60대 남성이 직접 제작한 화염방사기로 이웃집에 불을 지른 케이스다. 5월 ‘지하철 방화 사건’ 역시 60대 원모 씨가 서울 지하철 5호선 객차에 불을 지른 것으로, 자칫 대형 참사로 이어질 뻔했다. 이달 12일에는 전 여자친구에 대한 스토킹으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60대 남성이 전 연인을 다시 찾아가 살해하려다 경찰에 붙잡혔다.

● “은퇴 이후 상실감, 좌절이 공격성으로 전이”

전문가들은 60대 남성의 범죄 증가 원인으로 ‘상실감’을 공통적으로 지목한다. 김상균 백석대 경찰학과 교수는 “60대 남성은 베이비붐 세대의 일원으로 한국 사회의 중추였지만, 은퇴 후 사회적 지위를 잃고 역할이 사라졌다는 생각에 쉽게 무력감을 느낀다. 지위 변화에 따른 심리적 충격이 클 수 있다”고 분석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60대 남성 인구는 약 387만 명으로, 젊고 사회적으로도 가장 왕성한 나이인 30대 남성(347만 명)보다 많다. 현재의 60대는 1958∼1963년생인 베이비붐 세대다. 이들은 1990년대 경제 호황기에 사회 핵심층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며 경제 기반이 흔들렸다. 이후 2010년대에 접어들며 본격적인 은퇴 시기를 맞았고, 다수는 무직이 되거나 비정규·단기 일자리로 옮겨갔다.

은퇴 후 남은 삶의 시간도 60대들에게 부담이 된다고 한다. ‘건강한 60대’라는 인식이 오히려 심리적 괴리감을 키운다는 것. 김 교수는 “‘몸은 멀쩡한데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은 없다’는 생각이 고립감과 공격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생존한 부모와 독립하지 못한 자녀를 동시에 부양하는 역할도 스트레스를 가중시키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21일 발생한 조모 씨(62)의 사제 총기 살인 사건도 60대 남성의 심리적 박탈감이 배경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조 씨는 20여 년 전 이혼한 전처가 사업적으로 성공한 데 대해 열등감을 느꼈으며, 가족 갈등이 범행으로 이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지하철 5호선에 불을 지른 원 씨 역시 “이혼 소송에 불만이 있었다”고 진술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60대는 사회적 역할 변화가 본격화되는 시기”라며 “이런 전환에 적응하지 못할 경우 사소한 갈등도 자존심 문제로 비화돼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 “대다수 60대는 심리건강 지켜내, 지원책은 강화해야”

하지만 이 같은 60대의 상실감을 범죄와 관련된 ‘위험 신호’로만 받아들여선 안 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치료학과 교수는 “60대 대다수는 상실감을 겪어도 자기 관리를 통해 심리적 건강을 지켜내고 일자리를 찾는 등 어떻게든 가족과 사회에 기여하려 한다”며 “일부의 문제를 전체로 보지 말아야 한다”고 밝혔다.

다만 일부 60대 남성들의 범죄가 부각되고 있는 만큼, 이들 세대의 심리적 공백을 메울 수 있는 복지 및 일자리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박승희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는 “은퇴 후에도 사회와 연결될 수 있는 관계망이 절실하다”며 “단순한 일자리 제공이 아니라, 대화하고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커뮤니티 중심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60대 남성의 심리 상태를 정밀하게 파악할 수 있는 상담 인프라 구축과 심층 연구도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정서영 기자 cero@donga.com
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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