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수막 내걸고 '반성합니다' 사과하면 뭐해요. 사진만 찍고 그때뿐인데…."
최근 국내 여행지에서 불편을 겪었다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상인의 불친절한 응대, '시가'라는 이유로 터무니없는 가격을 요구하는 사례가 주를 이룬다. 관광업계에선 논란이 된 상점을 넘어 지역 전체가 '바가지 여행지'로 낙인찍혀 자칫 여행객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관광지의 '불친절', '바가지 물가'는 여행지 만족도를 낮추는 주된 요인이다. 한국경제인협회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여행 활성화를 위한 정책으로는 '바가지요금 방지를 위한 제도적 관리 강화'(35.6%)가 1위다. 또한 국내 여행이 해외여행 대비 만족스럽지 않은 이유로는 '높은 관광지 물가'(45.1%)가 꼽혔다.
성수기, 긴 연휴로 여행객이 몰리는 시기 반짝 벌겠다는 이른바 '한탕주의'가 국내 여행 선호도에 찬물을 끼얹는 셈이다. 오죽하면 국내 바가지요금 피해 해외여행 간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지자체와 상인회는 재발 방지를 약속했지만,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최근 속초시장에선 대게·회 직판장에서 실제 주문 금액보다 10여만원 더 많은 요금을 청구해 논란이 일었다. 앞서 속초 오징어 난전 상인의 불친절이 유튜브를 통해 알려지면서 공분을 샀고, 결국 상인들이 사과문을 발표한 지 채 한 달 만이다.
울릉도에서는 비계가 절반이나 차지하는 삼겹살을 '육지고기 와 다르다'며 관광객에게 판매한 식당이 논란이 됐고, 부산 자갈치시장의 한 횟집은 '시가'로 표시한 해삼을 7만 원에 팔았다가 지자체 단속에 적발돼 6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받았다.
내국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 역시 바가지요금과 불친절을 방한 여행 불만 요소로 꼽았다. 한국관광공사가 발간한 '2024 관광불편신고 종합분석서'를 보면 지난해 관광불편신고센터에 접수된 불편 사항은 1543건으로 전년 대비 71.1% 늘었다. 이 가운데 쇼핑(398건)이 전체의 25.8%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쇼핑에서 주된 불만은 '가격시비(23.1%)', '불친절(22.6%)', '환불 및 제품 교환요청(14.6%)' 등이었다.
다음으로 높은 비율을 차지한 '택시'관련 신고는 전년보다 81.1% 늘었다. 불만 사유는 '부당요금 징수 및 미터기 사용 거부(60.2%)', '운전사 불친절(10.4%), '난폭운전 및 우회운전(8.7%)' 순으로 나타났다. 한국에 첫발을 디딘 관광객에게 '바가지요금'과 '불친절'이 첫인상이 되는 셈이다.
잇따른 논란에 대통령까지 나서 단속방안 마련을 당부했다. 지난 2일 이 대통령은 "사소한 이익을 얻으려다가 공공에 너무 큰 피해를 준다. 이제 과거와 달라서 유튜브로 공개하면 확산 속도가 너무 빨라서 치명적"이라며 "그것(바가지요금)을 자율적 상황이라고 방치할 일인가. 고민을 해봐야 한다"고 했다. 더는 자율에 맡겨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업계에서도 비슷한 목소리가 나온다. '한번 보고 말 사이'라는 식으로 단기 수익에 집착하다가 관광 매력도가 낮아져 결국 관광 산업 기반 자체를 허물 수 있다는 우려다. 특히 지금은 한국 관광에 전 세계의 이목이 쏠려있다. 지난 6월 공개된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열풍으로 한국행 항공권 예약, 국내 체험형 관광 상품 예약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인바운드(외국인의 한국여행) 플랫폼 클룩의 예약 데이터에 따르면 케데헌 공개 이후 사우나 이용권 예약은 최대 57% 늘었고, K팝 아이돌 스타일링 체험(200%), K팝 댄스 클래스(40%) 예약도 증가했다.
업계 관계자는 "K콘텐츠의 세계적 인기로 한국 여행 수요가 높아지고 있지만 바가지, 불친절을 이유로 여행 만족도가 떨어지면 한국 관광의 매력도 역시 낮아져 방한객이 급격히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신용현 한경닷컴 기자 yong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