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사진)가 28일 “국내에서 생산하고 판매한 반도체에 최대 10% 생산세액공제를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기존엔 반도체 기업들이 연구개발(R&D) 및 설비에만 최대 20~30%의 투자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투자세액공제 또는 생산세액공제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 후보는 이날 자신의 SNS에 “압도적 초격차·초기술로 세계 1등 반도체국가를 만들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전날 민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이 후보는 이날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이승만, 박정희,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과 박태준 전 국무총리(포스코그룹 초대 회장)의 묘소를 참배했다. 이어 오후엔 SK하이닉스 이천캠퍼스를 찾아 ‘K-반도체 인공지능(AI) 메모리반도체 기업 간담회’를 열었다. 경선 과정에서 내세운 ‘통합’과 ‘성장’을 강조하는 행보를 보인 것이란 평가가 나왔다.
이 후보의 정책이 실행되면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앞으로 국내 신설 공장에 대해 투자세액공제 또는 생산세액공제 중 하나를 선택해 받을 수 있다. 민주당은 자동차산업, 중국과의 경쟁에서 밀리는 배터리, 석유화학, 철강산업 등에도 생산세액공제 신설을 대선 공약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업계는 생산세액공제가 도입되면 저가 수입 반도체 유입을 막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환영한다는 뜻을 나타냈다. 다만 국내 생산하고 판매되는 조건이 붙어 혜택은 한계가 있을 것이란 지적이 나왔다. 근로시간 규제를 풀어주는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을 이 후보가 이날도 언급하지 않은 것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국내 생산·판매 반도체에 최대 10% 세액공제"
"세계 1등 반도체 국가 만들 것", 전략산업 세액공제안 잇단 발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28일 당 후보 확정 이후 첫 공약으로 제시한 반도체 공약의 핵심은 국내 생산 물량에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것이다. 글로벌 통상 질서 재편과 인공지능(AI)이 대선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대선 본선 첫 행보로 첨단산업의 국내 산업 생산 촉진 방안을 꺼내 들며 중도·실용 이미지를 극대화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 후보와 민주당은 2차전지, 자동차 부품, 풍력발전 등에도 유사한 지원 방안을 강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국가 경제는 기업이 유지”
이 후보는 이날 “대한민국 핵심 엔진인 반도체가 글로벌 공급망 리스크에 치열해진 AI 반도체 경쟁까지 더해져 이중, 삼중의 위기에 포위됐다”고 진단했다. 이어 “미국과 일본, 유럽연합(EU)이 경쟁적으로 반도체 지원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며 “국가 차원의 지원과 투자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대선에서 내세운 경제관인 ‘국가주도성장론’을 반영한 구상으로 풀이된다.
이 후보는 이날 경기 이천 SK하이닉스 캠퍼스를 방문한 자리에서 “국가 경제는 결국 기업 활동에 의해 유지된다”며 “민생을 책임지는 정치도 경제 성장과 발전에 총력을 다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는 “반도체산업이 최근 전력과 용수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업계 의견을 들어보고 논의하면서 앞으로 주요 의제로 놓고 계속 검토하겠다”고 했다. 이 후보는 반도체특별법 제정,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등도 속도를 내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의원들은 첨단 제품을 국내에서 생산·판매하는 경우 소득세·법인세를 공제하는 내용의 법안을 잇달아 발의하고 있다. 정일영 의원이 대표발의한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은 반도체, 2차전지, 백신 등 국가전략기술 제품에 2035년까지 생산비의 20%를 공제해주는 내용을 담았다. 김태년 의원안은 생산비의 15%, 진성준 의원안은 판매가의 10%를 공제율로 제시했다.
이 후보와 민주당은 2차전지, 자동차부품, 풍력발전 등 다양한 산업군에 대한 지원 방안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석유화학과 철강 같은 전통 산업 기업들이 고부가가치 제품 중심으로 재편할 수 있는 인센티브를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 “직접 보조금 필요” 의견도
업계에선 국가 차원에서 반도체산업에 직접 혜택을 늘리는 정책 취지에 전반적으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특히 생산비 10% 세액공제는 중국산 저가 반도체의 공습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반도체 기업이 내수 시장에서 상당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로 꼽고 있다.
현재는 반도체 기업들이 연구개발(R&D) 및 설비에 최대 20~30%의 투자세액공제만 받을 수 있지만 앞으로는 투자세액공제 또는 생산세액공제 중 기업이 상황에 맞게 선택할 수 있게 되는 것도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투자세액공제는 기업이 업황 불황 등으로 적자를 낼 때는 받을 수 없다는 한계가 있어서다. 반명 생산세액공제는 기업이 적자가 나도 직접 환급해주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다만 생산세액공제를 받기 위해선 국내 생산 외에 국내 판매란 조건이 붙는다는 점에서 정책 실효성에 한계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경우 D램, 낸드플래시 메모리는 일부 중국에서 생산하는 물량도 있지만 국내 생산 비중이 70% 이상인데 국내 판매 비중은 전체 판매 물량 대비 한 자릿수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서다.
일각에선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해외 각국에 공급망을 구축하고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해외 진출을 막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창욱 보스턴컨설팅그룹 MD파트너는 “미국의 반도체 직접 보조금은 390억달러에 달한다”며 “국내 기업이 세계 1등을 유지하려면 비슷한 지원을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천=김형규/김채연/최해련 기자 k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