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BC카드·한경 레이디스컵 2025’ 1라운드가 열린 경기 포천시 포천힐스CC. 낮 12시를 넘어가자 1번홀 티잉구역에 관중이 구름떼처럼 모이기 시작했다. 1라운드 ‘빅매치’로 꼽히는 박현경·홍정민·이예원 조의 첫 티샷을 직관하려는 갤러리들이었다. 낮 12시24분, 홍정민 박현경 이예원 순으로 티잉구역에 들어설 때마다 팬들의 함성이 홀을 울렸다. ‘디펜딩 챔피언’ 박현경이 가장 먼저 드라이버를 손에 쥐었다. 찰진 타구음과 함께 공이 페어웨이로 뻗어나가는 순간 팬들은 일제히 “굿샷!”을 외쳤다. 이어 홍정민과 이예원까지 호쾌한 티샷을 선보이며 ‘별들의 전쟁’의 시작을 알렸다.
◇더위도 꺾지 못한 응원 열기
이날 포천힐스CC에는 체감기온 34도, 평일이라는 악조건에도 골프팬의 발길이 이어졌다. 총상금 15억원, 메이저보다 더 큰 대회에 KLPGA투어를 대표하는 톱스타들이 총출동해 명품승부에 대한 기대가 커지면서다. 경기 고양 일산에서 왔다는 40대 여성은 “매년 5~6개 골프대회를 가는데 올해는 이 대회가 처음”이라며 “제가 좋아하는 박현경, 홍정민 프로가 같은 조에서 경기한다기에 친구와 함께 왔다”고 활짝 웃었다. 홍정민이 티잉구역에 들어서자 “지난주에 정말 잘 치셨어요! 오늘도 파이팅”이라고 응원을 보내기도 했다.
BC카드·한경 레이디스컵은 매년 수만 명의 갤러리가 찾는 KLPGA투어 대표 흥행 대회다. 서울 어디에서나 한 시간 안팎이면 닿을 수 있는 입지 덕분이다. 셔틀버스는 대회장에서 차로 10분 거리인 갤러리 전용 주차장에서 갤러리들을 연신 실어 날랐다. 배낭을 멘 갤러리들은 한 손에는 접이식 의자를, 다른 한 손에는 우산을 들고 코스를 누볐다. 고양시에서 왔다는 김성현 씨(53)는 “코스를 쉬엄쉬엄 둘러보며 선수들의 멋진 플레이를 구경할 생각”이라고 했다. 대학 친구와 함께 휴가를 내고 왔다는 김모씨(37)는 “골프 대회를 꼭 한번 가고 싶었는데, 가까운 곳에서 이름난 선수들이 모두 참여한다는 경기가 열린다고 해서 소풍 삼아 대회장을 찾았다”고 말했다.
8월 하순 여름 한가운데의 뜨거운 더위도 골프팬의 열정을 꺾지 못했다. 갤러리들은 얼음주머니와 우산, 선글라스, 텀블러, 손 선풍기 등 무더위 속 ‘생존템’으로 무장한 모습이었다. 이마와 목에 냉각시트를 붙인 갤러리들도 눈길을 끌었다. 허다빈 선수를 응원하기 위해 대회장을 찾았다는 50대 이모씨는 “더위가 걱정돼 모자에 마스크까지 두르고 대회장을 찾았지만 경기가 재밌어서 덜 지친다”며 “경기 끝까지 따라가며 응원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코스 내내 7세 딸아이의 손을 잡고 선수들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지켜보던 40대 남성 김모씨는 “덥긴 하지만 골프에 관심 있는 아이에게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는 판단에 주저하지 않고 방문했다”며 “가능한 한 끝까지 경기를 지켜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주최 측도 대회장을 찾은 갤러리들이 쾌적하게 경기를 관람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했다. 입장객에게 부채와 우산을 선물하고, 갤러리플라자에 무더위 쉼터를 마련했다. BC카드가 준비한 빨간 우산은 코스 곳곳을 붉게 물들였다. 경기 분당에서 왔다는 60대 김모씨는 “주최 측이 갤러리를 위해 열심히 준비한 점이 느껴진다”고 했다.
◇한층 성숙해진 관람 매너
올 시즌 최고 스타들이 총출동한 대회답게 응원전도 치열했다. 이예원과 박현경이 맞붙은 챔피언조에는 메디힐 로고가 찍힌 모자를 쓴 팬들로 빼곡했다. 이예원과 박현경이 모두 메디힐 모자를 쓰는 탓에, 팬도 메디힐 모자로 소속감을 표현한 것이다. 두 팬클럽은 모자 색깔로 차이를 뒀다. 이예원의 팬들은 뒷면에 ‘퍼펙트 바니’라는 팬클럽 이름을 새긴 흰색 모자를 썼다. 검은색 메디힐 모자에 ‘큐티풀 현경’을 새긴 박현경의 팬들도 뜨거운 응원열기로 코스를 달궜다.
갤러리는 한층 성숙해진 매너로 선수들을 응원했다. 선수들의 스윙을 담기 위해 많은 이들이 스마트폰을 꺼냈지만, 선수들이 방해받지 않도록 일찍부터 동영상 촬영을 시작했다. 팬클럽에서 온 갤러리는 같은 조 다른 선수들에 대한 응원도 아끼지 않았다. 방신실을 응원하는 팬들은 배소현의 티샷에도 아낌없이 박수를 보냈다.
포천=조수영/장서우/최한종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