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동 칼럼] 대공황 때 후버의 길 가는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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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동 칼럼] 대공황 때 후버의 길 가는 트럼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물과 전력을 공급하는 후버댐에 미 31대 대통령 허버트 후버가 기여한 건 별로 없다. 후버댐은 서부 도시를 개발하고자 이미 1910년대 초 논의가 시작됐으며 기초 건설 계획도 1922년 만들어졌다. 원래 이름은 지역명이 들어간 볼더댐이었다. 단지 후버의 대통령 재임기간(1929~1933년)이던 1931년 착공돼 후버를 기념하자는 차원에서 나중에 이름이 바뀌었을 뿐이다.

평범한 댐에 그쳤을 이 댐을 역사책에 남긴 인물은 후버 후임인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이다. 그는 대공황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뉴딜을 제시했고 뉴딜의 대표 사례로 후버댐을 선정했다. 루스벨트는 인력 투입을 늘리고 건설 속도를 높이도록 해 댐 완공을 2년 당겼다. 이 같은 뉴딜 덕에 미국은 대공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고 2차 세계대전을 치러야 하는 상황 때문에 루스벨트는 미국 역사상 전무후무하게 4선을 하게 됐다.

루스벨트 이후 처음으로 재선 너머를 보고 있는 이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다. 그의 말마따나 3선 도전은 농담이 아닌 것 같다. 공화당 일부 의원은 1951년 3선을 금지한 헌법의 개정안을 이미 제출했다. 트럼프는 루스벨트처럼 나라를 구한 인물이란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자신의 정책에 ‘루스벨트 표’를 붙이고 있다. 상호관세가 대표적이다. 지난 2일 상호관세 부과 방침을 발표하면서 91년 전 루스벨트가 도입한 상호무역법(RTAA)의 연장선상이란 점을 전면에 내세웠다.

하지만 트럼프의 주장은 왜곡에 불과하다. 상호무역법은 대통령이 의회의 사전 동의 없이 다른 나라와 상호무역 협정을 맺어 관세율을 정할 수 있도록 한 게 골자다. 방향은 인하였다. 관세율은 대통령이 최대 50%까지 낮출 수 있도록 했다. 실제로도 그렇게 운영됐다. 미국은 1940년까지 영국 프랑스 캐나다 등 22개국과 무역협정을 체결했고 22개국 평균 관세율은 46%에서 28%로 낮아졌다. 트럼프는 ‘의회 동의 없이’라는 대목만 따 왔고 관세율은 높이고 있다. 후버 시절 제정된 스무트홀리법의 재판이다. 1930년 시행된 스무트홀리법은 2만여 개 수입품에 40% 수준이던 평균 관세율을 59%로 높였다. 상대국의 보복관세로 대공황의 골이 깊어진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후버 때나 지금이나 관세 인상에 경제학자와 기업인이 일제히 반대하고 나선 것은 마찬가지다. 무역과 재정의 쌍둥이 적자를 줄이는 효과는 작고, 물가 상승을 부추기고 교역을 감소시키는 부작용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헤지펀드 브리지워터 설립자인 레이 달리오는 지금이 1930년대 대공황 때와 유사하다고 진단했다. 고통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몫이다. 한국은 피해가 가장 큰 국가 중 하나다. 트럼프가 중국을 제외한 70여 개국에 상호관세 적용을 늦추긴 했지만 이미 접어든 후버의 길에서 나올 생각은 없어 보인다. 철강과 자동차에 25%, 그리고 기본관세 10%도 부과 중이다. 국가별 협상이 마음에 안 들면 관세폭탄을 실제 투하할 공산이 크다.

미국에서 트럼프 지지율이 떨어지고 반(反)트럼프 시위가 늘어나는 건 주목할 일이다. 후버도 1928년 대선에서 48개 주 중 40개 주에서 승리했으나 다음 선거에선 루스벨트에 42개 주를 넘겨줬다. 요즘 트럼프의 공화당 내에선 내년 11월 하원의원 선거에서 완패할 것이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라는 게 미국 언론의 보도다. 이땐 민주당 주도 의회가 법으로 트럼프 관세 행정명령을 무력화할 수 있다. 그 전이라도 관세폭탄이 철회되면 큰 다행이다. 한국으로선 당분간 인내하고 충격을 줄이기 위해 협상에 힘을 쏟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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