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체 2회 넘으면 보호 못받아
계약갱신청구권 행사도 못해
밀린 돈 뒤늦게 내면 거주가능
출근 전부터 전화기에 불이 났다. 사무실 주변 빌라 임대인인데 임차인과 분쟁이 생긴 모양이었다.
"한 번도 월세를 제대로 낸 적이 없어요. 전화도 잘 안 받고요. 그래서 고민 끝에 월세가 너무 많이 밀렸으니 당장 이사 나가라고 했죠."
10년 넘게 거래해도 목소리 한번 높게 낸 적 없는 임대인이 마구 흥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직전 임차인도 월세를 장기 연체해 결국 보증금을 다 까먹고 야반도주(?)를 했기 때문이다.
임차인이 월 차임을 2회 이상 연체하면 독촉하고 대비도 해야 한다고 몇 번 조언해줬는데도 마음 약한 임대인은 "오죽하면 집 월세도 못 내겠어요"라며 망설였다. 결국 말 못 하고 망설이는 사이 연체된 월세가 보증금을 껑충 넘어섰다. 몇 날 며칠을 속 끓이다가 전화해도 안 받아서 찾아가 보았더니 이미 짐을 빼고 이사를 나간 뒤였다. 도시가스며 전기 요금 등 각종 공과금도 장기 연체돼 있어 피해액이 컸다.
이번 임차인도 입주 시부터 월세를 밀리기 시작했다. 단단히 거액의 교육비를 치른 임대인은 수시로 밀린 월세를 독촉했지만 해결이 안 되니 결국 1년째 되는 날 계약을 해지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계약을 해지하겠다는 내용증명을 발송하자마자 임차인이 갑자기 밀린 월세를 모두 입금한 것이다.
그리고는 임대인한테 전화해 "밀린 월세를 다 납부했으니 나는 계속 살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간 속 썩인 임차인이 얄미워서 내보내고 요즘 시세가 2배쯤 올랐으니 인상된 금액으로 새 임차인을 구하고 싶었던 임대인에겐 낭패였다. 그는 부동산 사무실로 전화해 "1년 가까이 월세를 독촉해도 안 내더니 해지 통보할 때 갑자기 내버려도 법적으로 문제없나요"라고 물었다. 월세 계약과 관련해서는 유념해야 할 사항이 몇 가지 있다.
월세를 연체하고 싶은 임차인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부득이 연체가 발생하기도 하지만 연체하는 순간 임차인의 권리도 상실된다. 한 번 연체했다고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주택 임대차는 2기분, 상가 임대차는 3기분을 연체하면 임대차 보호법에서 보호하는 임차인의 권리를 주장할 수 없게 된다.
연속해서 2~3개월 연체하는 것뿐 아니라 거주 기간을 통틀어서 띄엄띄엄 한두 달씩 연체해 총 연체 개월 수가 주택 임대차는 2기, 상가 임대차는 3기에 달하면 해당한다. 또 여러 달에 걸쳐 월세금을 조금씩 연체한 금액 합계가 2개월과 3개월분에 달하는 경우에도 임대인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요즘 주택 임대차나 상가 임대차에서 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한 방향으로 법이 많이 강화됐다. 그래서 주택 임차인은 기본 계약 기간 2년 후에 1회의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해 다시 2년을 거주할 수 있다. 그런데 월세를 연체하면 이러한 권리들이 박탈된다. 특히 상가 임차인은 권리금 회수 기회를 놓치게 되면 부담하지 않아도 될 원상 복구 비용까지 내야 한다.
계약 해지는 통지 시에 연체 사실이 없으면 해지가 불가하다. 그러나 계약갱신요구권과 권리금 회수권은 현재 연체가 없어도 과거 연체 사실만으로도 거절할 수 있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임대인이 계약 해지를 통지하려면 '현재' 연체가 있어야 한다. 통지하기 전에 임차인이 밀린 월세를 납부해버리면 계약은 해지할 수 없다.
그러나 계약갱신요구권과 권리금 회수권은 다르다. 임대인이 계약갱신요구권을 거절하기 전에 밀린 월세를 깨끗이 납부했더라도 이미 상실된 권리를 회복할 수 없다.
"보증금이 있잖아요. 그러니 월세를 연체하면 나중에 보증금에서 공제하면 되잖아요." 임차인 중에는 보증금이 있으니 다소 연체가 있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임대인이 승낙하지 않는 한 보증금과 월세는 별개이고 보증금에서 밀린 월세를 공제하라고 주장할 수 없다. 보증금이 있어도 월세가 연체되면 임대인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양정아 공인중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