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암호화폐) 산업 진흥을 위한 1호 업권법 '디지털자산기본법'의 발의를 앞두고 업계·학계 전문가들이 법안 세부 사항을 검토하는 자리를 가졌다. 다수 전문가들이 법안의 방향성과 속도감에 대해 긍정을 표했으나, 법안의 핵심 사안 중 일부에 대해서는 개선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왔다.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는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안 리뷰' 세미나가 열렸다. 이번 세미나는 민병덕 더불어 민주당 의원이 주최한 행사로, 내달 민 의원이 발의할 디지털자산기본법의 초안 공개와 더불어 초안에 대한 업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개최됐다.
세미나 전문가 패널로는 △윤민섭 디지털소비자연구원 이사 △이상영 법무법인 YK 변호사 △이정민 금융소비자보호재단 연구위원 △강형구 한양대학교 교수 △원은석 국제디지털자산위원회 이사장 △이호성 이촌세무회계 대표세무사 등이 참석했다.
민병덕 의원은 디지털자산기본법을 발의한 이유에 대해 "미국, 유럽연합, 일본 등은 이미 빠르게 제도화를 추진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여전히 신중하게 가야한다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며 "업계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속도감 있는 법안 발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때문에 민 의원은 디지털자산기본법 발의에 '선 발의, 후 검토' 방식을 채택했다. 그는 "선제적으로 무엇인가 내놓고 이후에 검토를 거쳐 최종안을 발표하면 된다고 생각했다"며 "업계로부터 많은 의견을 듣겠다"고 전했다.
민 의원이 발의한 디지털자산기본법에는 스테이블코인 인가제를 비롯한 디지털자산업 정의 및 육성, 디지털자산위원회 설립, 발행신고서 제도, 발행·유통 공시 분리 규율 등 명확한 산업 규제와 진흥을 위한 조항들이 포함됐다.
발빠른 업권법 도입은 환영…일부 조항엔 우려 표명
세미나 참석자들 모두 속도감 있는 법안 발의와 디지털자산 산업 육성을 위한 방향성에 대해서는 공감했다.
이상영 법무법인 YK 변호사는 "이번 디지털자산기본법은 지난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에서 나왔던 부대의견을 대부분 담은 것으로 보인다"며 "자본시장법을 참고해 탄탄한 구조를 가짐과 동시에 가상자산의 특수성을 고려해 유연하게 적용하고 배제했다"고 평가했다.
이정민 금융소비자보호재단 연구원도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이 투자자 보호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 디지털자산기본법은 업계 육성과 이용자 보호를 함께 고려한 법안으로 보인다"며 "이전에 소외됐던 가상자산 업자들이 이번 규제로 명확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특히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규율체계 방안을 마련한 점이 긍정적이다"라고 말했다.
다만 디지털자산기본법에 포함된 금융위원회(금융위) 산하 디지털자산위원회 신설에 관해서는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초안에 담긴 내용에 따르면 디지털자산위원회는 디지털자산 산업 육성과 진흥을 위한 심의의결 기구로, 금융위원장과 민간위원장 2명을 포함한 20명으로 구성된다.
기본법에 포함된 스테이블코인 인가제와 거래소 상장 일원화 조항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디지털자산기본법 초안에 포함된 스테이블코인 인가제는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기 위해 금융위의 인가를 받도록 하는 조항이다. 준비금은 50억원으로 책정됐다. 발행인의 안전성과 통화 주권을 고려한 조치지만, 일부 패널들은 이를 두고 민간기업의 진입장벽을 크게 높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강형구 한양대 교수는 "스테이블코인 사전 인가제는 민간 스테이블코인의 시장 진입을 본질적으로 제한해 화폐 경쟁과 결제 편익 제공을 저해할 수 있다"며 "보다 유연한 규제 방안으로, 공시와 준비금 투명성을 중심으로 하는 패스포트형 등록제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상장심사위원회에 대한 우려점도 지적됐다. 상장심사위원회는 디지털자산업협회 산하의 거래소 상장을 심사하는 조직이다. 법안이 발의되면 가상자산 거래소는 상장하고 싶은 가상자산에 대해 상장심사위원회에 심사를 신청해야한다.
강 교수는 "현행 상장 구조가 많은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상장심사위원회가 들어선다면 국내 거래소의 경쟁력을 크게 저해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상장심사위원회의 도입으로 국내 상장에 드는 비용과 시간이 증가한다면 유망한 해외 프로젝트들이 한국이 아닌 해외 상장을 고려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어 강 교수는 "여태 가상자산 거래소 업계는 복수 거래소 체재에서 치열하게 경쟁을 해왔다"며 "일부 거래소의 경우 수수료 무료 정책을 펼치는 등 노력을 많이 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상장 일원화로 긍정적인 경쟁 시장을 저해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ICO 허용·금융위 규제 권한 정립 등 필요
세미나 마지막 세션에서는 2017년 이후 금지됐던 국내 시장 내 초기 코인 공개(ICO, Initial Coin Offering), 금융당국 규제 권한 범위 등 업권법 관련 상세 부분들에 대한 질의가 진행됐다.
윤민섭 디지털소비자연구원 이사는 "디지털자산기본법이 시행되면 ICO가 허용되는 것이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업권법이 시행되면 ICO도 당연히 허용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답했다.
금융 당국의 모호한 규제 권한 범위와 가상자산 산업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최한결 고팍스 부대표는 "업계에서 오랜시간 몸 담으면서 느낀 점은 관료들이 너무 큰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된다"며 "고팍스 대주주가 바뀌면서 임원 변경 신고를 했는데, 2년이 지난 현재도 해당 사안에 대한 수리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박 부대표는 "새로운 법안에서 이러한 부분에 대해 명확성을 더해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부연했다.
금융위의 존재가 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박혜진 서울과학종합대학 교수는 "디지털자산 발행에 있어 다른 규칙을 추가하지 않겠다는 부분은 업계에서 반길만한 부분"이라면서도 "발행 신고를 금융위로부터 수리를 받아야한다는 것에서 힘이 빠진다"고 전했다. 박 교수는 "이미 업계가 금융위와 관련해서 경험한 부분이 많다보니, 금융위 수리에 우려가 되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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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욱 블루밍비트 기자 wook9629@bloomingbit.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