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협력연구위원회 공개세미나>
전재성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발제
‘패키지 압박’이 새 외교 현실
“한국, 미·중 사이 어려운 선택 직면”
미국 홀로 세계질서를 떠받치는 모델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진단이 나왔다. 미국 주도 질서의 최대 수혜국이었던 한국도 수동적 대미 의존 외교에서 벗어나 독자적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재성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13일 서울 마포구 서울가든호텔에서 열린 경제금융협력연구위원회(GFIN) 제34회 공개세미나에서 ‘이란 전쟁 전후 세계질서의 변화와 한국의 외교’를 주제로 발제했다. 이 자리에서 전 교수는 “많은 사람들이 미국 쇠퇴를 이야기하지만 핵심은 미국이 약해졌다는 게 아니다”라며 “미국 혼자 국제질서를 유지하는 모델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 본질”이라고 말했다.
전 교수는 미국의 절대적 국력이 무너졌다는 시각에는 선을 그었다. 중국이 경제·군사적으로 미국을 빠르게 추격하고 있지만,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강의 군사력과 경제력, 촘촘한 동맹 네트워크를 보유한 압도적 강대국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미국식 패권 운영 모델은 한계에 직면했다고 진단했다. 핵확산과 인공지능(AI)의 군사화, 기후변화, 팬데믹, 글로벌 사우스의 불안정, 중동 분쟁 등 국제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이 과거보다 늘었기 때문이다.
전 교수는 “지난 30년 동안 미국은 세계 경찰처럼 행동하며 질서를 유지해왔지만 이제는 그 비용이 감당 불가능한 수준으로 커졌다”며 “미국 국채 이자 부담이 국방비를 넘어설 정도로 구조적 피로가 누적됐다”고 설명했다.
트럼프식 외교도 이 연장선이라는 분석이다. 전 교수는 “많은 사람들이 트럼프를 고립주의자로 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며 “미국은 여전히 패권을 유지하고 싶어 하지만 더 이상 혼자 비용을 부담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트럼프가 말하는 건 결국 ‘왜 미국만 돈을 내느냐’는 것”이라며 “국제질서의 수혜자였던 동맹국들이 비용을 나눠 부담해야 한다는 논리”라고 했다. 이에 따라 관세, 방위비, 공급망, 안보 같은 원래 별개였던 의제들이 하나로 묶이는 ‘패키지 압박’이 새로운 외교 현실이 됐다고 진단했다.
전 교수는 동맹국 입장에서는 훨씬 복잡하고 어려운 협상 환경이 만들어졌다고 바라봤다. 특히 한국이 가장 어려운 위치에 놓였다고 강조했다. 전 교수는 “한국은 정부 수립 이후 미국 패권 아래에서만 살아왔고 미·중이라는 두 강대국 사이에서 전략 외교를 해본 경험이 사실상 없다”며 “앞으로의 국제질서는 한국에 훨씬 더 복잡한 선택을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 교수는 “단순히 미국을 따라가는 실용 외교만으로는 부족하다”며 “변화한 국제질서 속에서 한국이 어떤 질서를 원하는지 비전과 논리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미국 혼자 질서를 유지하는 시대가 끝났다면 한국 같은 동맹국들도 이제 책임과 역할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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