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제42대 대한체육회장 선거 진행을 맡은 장내 아나운서는 이렇게 말한 뒤 당황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6명의 후보 중 유승민 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과 강신욱 단국대 명예교수 등 두 명만 등장했기 때문이다. 4명의 후보는 자신의 낙선 사실을 알고 일찌감치 자리를 떴다. 이번 선거는 유 전 위원이 3선에 도전한 이기흥 현 대한체육회장을 꺾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체육인들은 평소 ‘스포츠맨십’이란 말을 자주 쓴다. 승부의 세계에서 승패는 나뉠 수밖에 없지만 승자나 패자 모두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 승자는 패자에게 위로를, 패자는 승자에게 축하를 건네는 게 스포츠맨십의 기본이다.
하지만 마땅히 새 회장 당선을 축하해야 할 이 회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동안 “한국 체육 발전을 위해서 노력해왔다”는 그의 진정성을 의심케 하는 행동이었다. 8년간 한국 체육의 수장으로 대한민국 선수들에게 스포츠맨십을 강조해 왔던 그이기에 더 실망스러운 모습이었다.돌이켜보면 그간 이 회장의 행동은 스포츠맨십과는 거리가 멀었다. 국무총리실과 문화체육관광부 등 정부 차원의 감사에서 드러난 체육회와 자신의 비위 사실에 대해 단 한 번도 인정한 적이 없다. 그렇다고 제대로 된 해명을 내놓은 것도 아니다. 여러 차례 입장을 밝힐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 알게 될 것”, “나는 몰랐으니 여기까지만 합시다” 등 회피로 일관했다. 현재 이 회장 관련 비위 건에 대해 서울동부지검과 서울경찰청 반부패수사대에서 수사하고 있다.
이번 선거를 앞두고도 각종 비위 의혹을 받고있는 이 회장이 불출마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다. 하지만 그는 “한국 체육에 애정이 크고 아직 체육계에 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며 3선 도전을 강행했다. 그 과제만 이뤄낸다면 미련 없이 체육회장 자리를 내려놓겠다고까지 했다. 이 말이 진심이었다면 선거 결과에 승복하고 신임 회장에게 축하를 건네며 그 과제를 대신 이뤄달라고 했어야 하지 않을까.
선거 기간 중 유 당선인과 감정 싸움을 했던 강 교수는 선거 직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유 당선인에 대한 축하 글을 올렸다. 또 다른 후보였던 강태선 서울시체육회장도 선거 이튿날인 15일 유 당선인을 축하하는 보도자료를 냈다. 하지만 이 회장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자리에서 내려오는 순간까지도 그는 스포츠맨십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김정훈 기자 h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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