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구 하나에 브랜드가 '휘청'…"단순 오탈자 검수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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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스타벅스코리아의 '5·18 탱크데이' 논란에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사진=이솔 기자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스타벅스코리아의 '5·18 탱크데이' 논란에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사진=이솔 기자

스타벅스코리아의 '5·18 탱크데이' 논란이 확산하면서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사진)이 대국민 사과를 했다. 문구 오탈자나 과장광고 여부 확인 정도에 그치던 마케팅 검수가 밈, 상징, 역사적 맥락까지 모두 따져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평이 나온다.

정 회장은 26일 기자회견을 열어 스타벅스코리아의 5·18 탱크데이 마케팅에 대해 "제 잘못"이라며 사과했다. 그는 "스타벅스코리아의 부적절한 마케팅으로 많은 분이 깊은 아픔과 분노를 느꼈다는 사실을 매우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어떠한 변명도 하지 않겠다. 이번 일에 대한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의 사과를 끝이 아닌 시작으로 삼겠다"며 "내부 시스템과 리스크 관리 체계를 근본부터 다시 점검하고 사회적 책임에 대한 기준도 더욱 높이겠다"고 강조했다. 정 회장이 해당 논란을 두고 사과한 것은 사건 직후인 지난 19일에 이어 두 번째다.

앞서 지난 19일 정 회장은 "그룹을 대표해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며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스타벅스코리아에 대한 불매 움직임이 이어지며 브랜드 리스크가 현실화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전상진 신세계그룹 경영지원총괄은 "매출을 따질 계제가 아니다. 정신적 피해를 입은 분들의 치유가 우선"이라면서도 "굉장히 많은 매출 감소가 있다"고 털어놨다.

2019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희화화로 논란이 된 무신사 광고. 사진=무신사 인스타그램 갈무리

2019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희화화로 논란이 된 무신사 광고. 사진=무신사 인스타그램 갈무리

유사한 사례는 이미 있었다. 무신사는 2019년 양말 광고에서 '책상을 탁 쳤더니 억하고 말랐다'는 문구를 사용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희화화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당시 무신사는 해당 광고를 내리고 사과했지만 스타벅스 사태 이후 이재명 대통령이 지적하며 다시 소환됐다.

게임업계에서도 비슷한 논란이 있었다. 2023년 넥슨 '메이플스토리' 홍보영상에는 남성혐오 커뮤니티를 상징하는 손 모양이 삽입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논란은 넥슨을 넘어 게임업계 전반으로 확산했고, 업계에서는 모든 홍보영상과 일러스트를 프레임 단위로 재점검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들 사례의 공통점은 고의성 입증보다 소비자 해석이 먼저 움직였다는 데 있다. 기업 내부에서는 실수, 우연, 관행적 승인으로 설명할 수 있어도 외부에선 '그 정도도 몰랐느냐'는 반응이 나온다. 특히 온라인 커뮤니티 중심으로 논란이 빠르게 확산하는 환경에선 논란 이후 사실관계를 설명하더라도 사태를 수습하기 어렵다. 소비자들이 논란을 해당 기업의 역사 인식이나 조직 문화 문제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남성 혐오로 논란이 된 넥슨 메이플스토리 장면. 사진=메이플스토리 유튜브 갈무리

남성 혐오로 논란이 된 넥슨 메이플스토리 장면. 사진=메이플스토리 유튜브 갈무리

짧은 주기의 행사와 프로모션을 반복하는 기업들은 부담이 커졌다. 스타벅스코리아도 조사 결과 발표에서 "많은 행사를 빠르게 진행하면서 날짜와 문구의 사회적 맥락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는 설명이 나왔다. 속도를 중시하는 마케팅 관행이 리스크 검토가 부족해지는 환경으로 이어졌단 얘기다.

업계에서는 기업 마케팅 검수가 단순한 문안 확인을 넘어 사회적 맥락 검토로 확대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행사명과 카피, 이미지, 출시일, 할인율, 상품명 등이 결합했을 때 어떤 의미로 읽힐 수 있는지 사전에 점검하는 절차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는 것. 정 회장도 이번 사태와 관련해 "내부 시스템과 리스크 관리 체계를 근본부터 다시 점검하겠다"고 약속했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 마케팅 검수라고 하면 법무 검토나 브랜드 톤앤매너 확인 정도만 하고 빠르게 내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일반적이었다"며 "이제는 역사적인 사건은 물론 온라인 밈과 커뮤니티 코드까지 철저하게 점검해야 한다. 담당자 개인의 감각에 맡겨서는 안 되는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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