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도는 서른일곱 되던 1781년 ‘단원(檀園)’이라는 호를 스스로 짓는다. 동양화 기본서 ‘개자원화보’의 밑그림을 그린 이유방의 그것을 따왔다. 김홍도는 스승이자 당대에 ‘예원(藝苑)의 총수(總帥)’라는 위상이 붙었던 표암 강세황에게 이를 현판으로 써달라고 부탁했다. 흔쾌한 마음으로 붓을 들려던 표암의 뇌리에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현판을 써줘 봐야 걸 곳도 없다’.
도화서(국가 그림 전담 기관) 소속 화원이긴 했지만, 영락한 중인 집안 출신이었던 김홍도는 당시만 해도 집 한 채 없었다. 그래서 표암은 쓸모없는 현판보다 김홍도가 누구이고, 얼마나 대단한 실력을 갖춘 화가인지를 담은 <단원기(檀園記)>라는 글을 지어준다. 한국 회화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의 행적과 작품세계의 큰 줄기를 알 수 있는 귀한 기록이 무주택자 제자에 대한 스승의 안타까움에서 나왔을 줄 누가 알았을까. 다만 글의 머리말을 보면 표암의 눈에 김홍도의 재능 자체가 특별했던 것임은 틀림없어 보인다.
‘고금의 화가들은 각기 한 가지만 잘하고 여러 가지는 잘하지 못하는데, 김군 사능(士能·김홍도의 자)은 우리나라에 태어나 어려서부터 그림을 전공하였는데 못 하는 것이 없다. 인물·산수·선불·화과·금충·어해에 이르기까지 모두 묘품(妙品)에 들어 대항할 이가 없다. 인물과 풍속을 모사함에 더더욱 뛰어나 공부하는 선비, 장사꾼과 나그네, 규방과 농부, 누에 치는 여자, 거친 산과 들의 나무에 이르기까지 그 형태를 곡진하게 그려 어색한 것이 없으니 이것은 옛적에도 없던 솜씨다….’ 김세황 <단원기>
서화(書畵)의 대가이자 당대의 평론가였던 표암이 ‘무소불능(無所不能)’이라 극찬했던 단원의 그림 솜씨를 지금 국립중앙박물관 서화실에 가면 볼 수 있다. 올 초 재개관한 서화실의 두 번째 주제전시 ‘단원 김홍도, 시대를 그리다’에 맞춰 그의 명작들이 모였다. 빛에 취약해 자주 교체해야 하는 서화의 특성을 고려해 분기마다 특색있는 ‘원포인트 기획전’을 운영키로 한 국립중앙박물관이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1676~1759)에 이어 내민 두 번째 카드다. 충무공 이순실 친필, 궁중 채색장식화 등 전부 합쳐 50건 96점이 관객과 만난다. 보물은 8건에 달한다.
전시의 핵심은 단연 서화2실에 마련된 김홍도의 주제전이다. 그의 전성기부터 노년까지 이어진 화업이 펼쳐진다. 보물인 ‘단원풍속도첩’에 실린 25점 중 ‘씨름’, ‘서당’ 등 11점이 나열돼 있다. 조선을 대표하는 풍속화로 교과서에서도 본 익숙한 그림들로, 직접 눈으로 보면 더욱 생생하다. 김홍도가 백성의 삶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포착했음을 잘 알 수 있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은 “김홍도는 단군 이래 최고 화가”라며 “진경산수화를 연 겸재가 미술사적 중요도가 높지만, 실력으로는 김홍도가 위”라고 말했다.
‘기로세련계도’와 ‘총석정도’는 단원의 예술적 역량과 원숙한 필치를 확인할 수 있는 명작이다. 개성 만월대서 열린 노인들의 합동 잔치를 그린 ‘기로세련계도’는 노인 64명과 시종, 구경꾼 등 총 237명이 하나 같이 정교하게 묘사돼 있다. 개성 송악산의 빼어난 산세도 새겨졌다. 유 관장은 “산수화와 풍속화가 다 함께 있다”며 “화가로서의 필력이 최고 경지로 나타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총석정도’는 김홍도의 대표작인 ‘을묘년화첩’의 한 그림으로, 강원도(북한) 통천의 총석정을 묘사했다. 먹의 농담 조절, 바위에 부딪혀 부서지는 파도 등이 절묘하다.
회화1실은 단원과 스승 표암을 우애를 조명한다. 보물로 지정된 강세황의 ‘자화상’이 눈길을 끈다. 옥색 평상복 차림의 그림엔 ‘마음은 산림에 있으나 이름은 조정에 올랐다’는 글이 쓰였다. 조선 후기 대표적인 지식인이자 예술가인 표암은 기로정시(노인을 우대해 실시한 특별 과거)에 장원급제해 예조판서까지 오른 인물이다. 어린 시절부터 김홍도의 재능을 알아챈 후 그를 조선 최고의 화원으로 키워냈다. <단원기>에서 그는 ‘(김홍도가) 내 문하에서 재능을 칭찬했고, 같은 관청에 있으면서 함께 거처했고, 예술계에서 지기로 느꼈다’며 그와의 특별한 관계를 쓰기도 했다.
김홍도의 그림 외에도 볼거리가 많다. 회화3실의 조선시대 궁중 채색장식화는 조선 말 회화에 현대적 감각이 깃들기 시작한 시대상이 잘 느껴진다. 이순신의 친필 간찰도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공개된다. 노량해전을 4개월가량 앞둔 1598년 물품 지원을 담당하던 한효순에게 쓴 편지다. 지난 3월 폐막한 박물관 특별전 ‘우리들의 이순신’ 당시에도 소장처를 확인하지 못해 출품하지 못한 작품이다. 유 관장은 “박물관이 끝까지 추적해 소장가를 설득해 전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8월 2일까지.
유승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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