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N의 3일(현지시각) 보도에 따르면, 신분을 공개하지 않은 이 부부는 전 세계의 불임 센터를 찾아다니며 체외수정(IVF) 시술을 반복했다. 하지만 남편의 정액에서 정자가 전혀 검출되지 않는 무정자증(azoospermia)이라는 희귀 질환 때문에 번번이 실패했다. 일반적인 정액에는 수억 개의 정자가 포함되지만, 무정자증 환자에게서는 전문가가 현미경으로 몇 시간을 꼼꼼하게 들여다봐도 정자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미국 컬롬비아 대학교 불임센터에서 개발한 새로운 AI 기반 기술 ‘STAR 기법’이 이들의 삶을 바꾸었다. 이 시스템은 남성의 정액 샘플에서 극소수의 살아 있는 정자를 찾아내는 데 특화되어 있다. 남편은 단지 정액 샘플만 제출했고, AI가 이를 분석했다. 놀랍게도 AI는 눈으로는 절대 찾을 수 없던 정자 세 마리를 검출해냈고, 이 정자를 사용해 난자를 수정한 결과 아내는 건강하게 임신에 성공했다. 출산 예정일은 올해 12월이다.
아내는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며 “너무 많은 좌절을 겪어왔기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이제 초음파에서 아기를 보게 되니 꿈만 같다”고 말했다.이 기술은 정액 샘플을 특수 칩 위에 놓고 고속 카메라와 고해상도 현미경을 이용해 AI가 1시간 만에 800만 장 이상의 이미지를 촬영하며 정자를 탐색한다.
‘STAR(Sperm Tracking and Recovery·정자 추적과 회수)’ 시스템은 정자로 추정되는 세포를 인식하면, 손상 없이 살아 있는 채로 분리해낸다. 개발을 주도한 제브 윌리엄스 박사(컬럼비아대 난임 센터장)는 “AI가 정자 1~2마리만 존재하는 정액에서도 살아 있는 정자를 찾아내는 것은 말 그대로 게임 체인저”라며 “기존에는 2일간 숙련된 기술자가 찾아도 실패한 샘플에서 AI는 단 1시간 만에 44마리를 찾아냈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무정자증 치료는 정소(고환)를 절개해 조직을 분리해 정자를 찾는 침습적 수술이 일반적이었다. 몇 차례민 반복해도 흉터와 손상이 생기며 매우 고통스럽다.일부는 호르몬 치료나 정자 기증을 선택하지만, 본인의 정자를 통한 임신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STAR 기술은 침습 없이, 정액 샘플만으로 정자를 발견할 수 있어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무정자증은 미국 남성 불임 사례의 약 10%를 차지하며, 전체 불임 원인의 최대 40%가 남성 요인이라는 점에서 이번 기술의 의의는 크다고 CNN은 짚었다.
전문가들은 “AI는 우리가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해준다”며, AI가 배아 선별, 난자 품질 평가, 맞춤형 IVF 약물 조절 등 생식의학 전반에서 적용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사례처럼 AI는 인간의 전문성을 대체하기보다는 강화하며, 불임으로 고통받는 많은 부부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되고 있다. 현재 STAR 시스템은 컬롬비아대학 불임센터에서만 사용 가능하지만, 연구팀은 해당 기술을 논문으로 발표하고 타 기관에도 공유할 계획이다.
윌리엄스 박사는 STAR 시스템을 사용해 정자를 찾아 분리하고 동결하는 데 드는 비용은 약 3000달러(약 409만 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고민인 불임 문제를 가장 현대적인 기술로 해결하고 있다는 점이 감격스럽다”며 “앞으로 더 많은 부부들이 이 기회를 누릴 수 있길 바란다”고 전했다.
하지만 검증이 더 필요하다는 시각도 있다.코넬 대학교 의과대학(Weill Cornell Medicine)의 난임 시술 전문가 지안피에로 팔레르모 교수는 “생식 의학 분야에서 인공지능을 서둘러 적용하는 것이 환자에게 헛된 희망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체외수정 전문가로 난자에 정자를 직접 주입하는 방식을 처음 고안한 그는 “STAR 시스템은 결함이 있다. 왜냐하면 일부 남성은 그들의 정액 샘플을 인간이든 기계든 아무리 분석해도 필연적으로 정자가 없을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체외수정을 받는 환자의 경우 배아를 생성하기 위해 인간 배아학자가 정자를 채취하고 난자에 주입하는 과정이 여전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해식 기자 pistol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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