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색적 경험, 이례적 가격 … 예술일까 상술일까
공연 전 분재·수묵화 체험
무대 누워 음악듣는 공연
국악에 미식 결합하기도
콘서트·호텔 묶은 패키지
195만원에 팔아도 완판
순수예술 문턱 낮추지만
푯값 상승 주범 지적나와
공연에다 '색다른 경험'을 얹어 팔았더니 '완판'이다. 수익 극대화를 위해서든, 신규 관객 발굴을 위해서든 팬덤과 관객이 기꺼이 지갑을 열 만한 최대 가격선에서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하는 게 핵심이다. 대신 천정부지로 치솟는 가격과 퀄리티에 대한 질문은 해결해야 할 숙제다.
먼저 참신성으로도, 관객 반응으로도 최근 세종문화회관의 시도가 돋보인다. 올해 시작한 기획 프로그램 '세종 인스피레이션'이다. 극장 공간을 경험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하겠다며 색다른 관객개발법을 선보였다. 지난달엔 대극장 로비에 만찬 테이블을 깔고 인기 셰프 최현석이 직접 소개하는 코스 요리를 제공했다. 다음 날 같은 극장에서 개최된 상주단체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의 창단 60주년 기념 공연 '헤리티지'와 연계한 프로그램이다.
미식과 국악관현악의 연결고리는 오방색을 담은 궁중 갈비찜, 수막새(처마 끝 무늬기와) 모양 디저트 등 전통과 현대의 조화에서 찾았다. 서울 광화문 한복판의 약 50년 역사를 지닌 극장 로비에서, 평소엔 식음료 반입이 제한되는 장소에서 파인 다이닝을 즐기는 흔치 않은 기회. 4만원 상당의 공연 관람권 1장을 포함해 인당 20만원이었던 사전 티켓 50장도 금세 팔렸다.
이 밖에도 5월 서울시발레단의 요한 잉거 안무작 '워킹매드 & 블리스' 더블빌 상연에 앞서 지난달 28일 대극장 무대를 관객 70명에게 개방하고 '리스닝 스테이지'를 선보였다. 오는 7월엔 서울시무용단의 한국무용 레퍼토리 '일무' 공연과 연계해 동양적 아름다움과 여백의 미를 담은 분재·수묵화 워크숍도 추진한다. 2022년 초연된 '일무'는 종묘제례악을 현대적으로 표현해 미국 뉴욕 링컨센터에서도 매진을 기록한 작품이다. 새로운 관객들이 공연 관람 전 자연스럽게 여백, 조화, 느림, 자연 등 전통 무용의 가치를 체험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다.
세종문화회관 관계자는 "보던 사람만 공연을 보는 '그들만의 세상'이 되지 않도록 잠재 관객을 불러모으기 위한 접근"이라며 "실제로 미식·리스닝 체험 후 공연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는 피드백이 다수 있었다"고 전했다. 사전 체험과 본 공연 간 연계성 강화, 너무 비싸지도 싸지도 않은 가격대 선정 등은 숙제다. 안호상 세종문화회관 사장은 매일경제에 "헤리티지 만찬의 경우 적정 수요와 희귀성을 고려해 가격대를 더 높이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논의 끝에 원가 수준으로 선보였다"고 전했다.
관객 동원력이 높은 대중음악 콘서트에선 이미 VIP 마켓 가격이 100만원을 훌쩍 넘겼다. 오는 7월 완전체로 컴백하는 K팝 그룹 블랙핑크가 고양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하는 콘서트의 '호텔 패키지'는 최고가 195만원까지 전석 매진됐다. 5성급 호텔의 2박 싱글룸 숙박권과 공연 1회 관람권, 공식 굿즈 1개 등이 포함된 가격이다. 예매처인 놀 티켓(옛 인터파크 티켓)이 지난해 초 도입한 '플레이 앤 스테이'의 일환으로, 주로 K팝 해외 관객을 위한 패키지로 선보였다가 지금은 국내에서도 판매된다. 지난 4월 내한 가수 중 역대 최다 회차(6회)·최다 관객(32만명)을 동원했던 밴드 콜드플레이는 1장당 108만원, 50만원, 39만원 등 프리미엄 티켓 구성으로도 주목받았다. 가장 비싼 '얼티밋 스피어스 익스피리언스'는 25만원 상당의 지정석 관람권 1장과 공연 전 무대 위 사진 촬영, 무대 뒤 견학, 한정판 굿즈 등을 제공했다. 같은 장소에서 올해 10월 공연을 앞둔 미국 힙합 스타 트래비스 스콧은 사전 파티 참여와 한정판 굿즈를 포함한 '프리 쇼 파티 패키지'를 100만원에 판매 중이다. 밴드 오아시스 내한 콘서트에서도 일반 스탠딩석 입장권(18만7000원)에 23만원을 더 얹은 VIP 패키지를 팔았다.
다만 일각에선 특별한 경험이라는 명분으로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점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예술경영지원센터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이 이달 발표한 공연시장 티켓 판매 현황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공연 티켓 1장당 평균 판매액은 6만8864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765원(약 7.4%) 늘었다. 같은 기간 소비자 물가상승률 2.1%보다 3배 이상 높다. 2023년 1분기 5만6204원과 비교하면 2년 만에 22.5% 늘어난 수치다.
관객 간, 공연 간 격차와 박탈감도 생긴다. 한 콘서트업계 관계자는 "불경기에 가격이 높아지니 몇 번 갈 공연도 한 번으로 줄이는 '선택과 집중'이 늘었다"며 "결국 공연 생태계에 '빈익빈 부익부'를 일으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VIP 경험 그 자체보다는 자리를 확보하려 억지로 표를 사는 경우도 있다. K팝 그룹 팬인 박 모씨(32)는 "서울에 거주하는데도 일반 표가 곧바로 매진되는 바람에 호텔 패키지로 관람한 적이 있다"고 했다. 종종 비싼 가격을 지불한 후 '품질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점도 한계다. 대형 공연장은 무대와 가까운 비싼 자리일수록 가장자리로 밀려나 시야에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고, 편의시설과 먼 경우도 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고가의 VIP 패키지는 월드 투어를 도는 아티스트 측에서 직접 기획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지역별로 조율하긴 해도 맞춤형으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 아니어서 가격과 서비스 사이에 간극이 생기기도 한다"고 전했다.
[정주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