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오른 '센과 치히로'… 원작 넘어선 아날로그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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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지브리 스튜디오의 명작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무대화되어 서울에서 관객들과 다시 만난다.

공연은 라이브 오케스트라의 음악과 배우들의 생동감 있는 연기로 원작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재현하며, 관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이번 음악극은 애니메이션의 세계를 존중하면서도 무대에서만 가능한 새로운 감정과 풍경을 창출하여 관객들에게 다시 살아갈 힘을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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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극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실사 배우들의 살아숨쉬는 연기
'히사이시 조' 음악 라이브 연주
퍼펫들과 일본전통예술의 결합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한국 초연 사진. 치히로 역을 맡은 가와에이 리나가 용 퍼펫에 올라타는 장면을 연기하고 있다. 도호 연극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한국 초연 사진. 치히로 역을 맡은 가와에이 리나가 용 퍼펫에 올라타는 장면을 연기하고 있다. 도호 연극부

"한번 만난 인연은 결코 잊히지 않는 법이야."

인연과 기억의 소중함을 일깨워준 일본 지브리스튜디오의 명작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20여 년의 시간을 건너 다시 서울의 관객과 마주한다. 이번에는 스크린이 아닌 살아 숨 쉬는 배우들의 연기, 라이브 오케스트라의 음악과 함께 무대로 찾아왔다.

일찌감치 1차 티켓 오픈 물량 3만석 전석 매진을 기록한 이 공연의 개막일인 7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로비는 공연 시작 30분 전부터 관객으로 북적였다. 객석으로 들어서는 순간 분위기는 단번에 달라졌다. 무대는 울창한 담쟁이덩굴로 뒤덮여 있었고, 수채화로 그린 듯한 구름이 떠 있는 푸른 하늘이 시야를 채웠다. 현실의 극장을 벗어나 또 하나의 세계로 넘어온 듯한 인상을 준다.

공연화 소식이 전해졌을 당시, 기대와 함께 우려가 뒤따랐던 것도 사실이다. 세상에는 실사화를 상상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 있는가 하면, 그 가능성조차 쉽게 떠올리기 어려운 작품도 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후자에 가까운 작품이었다.

2001년 공개된 원작 애니메이션은 소녀 치히로가 '신들의 세계'에 들어가 부모를 되찾기 위해 온천장에서 일하며 성장해가는 이야기로 일본 전통 설화와 요괴, 정령의 이미지를 통해 독보적인 세계를 탄생시켰다. 이 작품은 BBC가 선정한 '21세기 가장 위대한 영화 100편' 가운데 4위에 올랐다.

손으로 한 장 한 장 완성된 2D 애니메이션 특유의 질감과 초현실적인 세계관은 이 작품을 무대 밖으로 꺼내는 일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요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음악극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던 원작을 무대 언어로 설득하는 데 성공한다.

성공을 일군 핵심은 배우들의 연기다. 원작의 손짓과 발짓까지 정밀하게 재현한 움직임은 애니메이션의 이미지를 무대 위에서 설득력 있게 되살린다. 공동연출을 맡은 이마이 마오코는 제작발표회에서 "무대 위에 인간이 얼마나 리얼하게 살아 있는지를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배우들은 애니메이션에서 곧바로 튀어나온 듯한 연기를 선보인다. 치히로가 차 뒷좌석에 누워 발을 걸치거나, 계단에서 헛디디는 순간, 난간에 걸터앉아 주먹밥을 먹는 동작까지 세밀하게 옮겨온다. 여기에 원작에서 유바바와 제니바의 목소리를 맡았던 나쓰키 마리의 등장은 세계에 익숙한 숨결을 더한다.

원작의 캐릭터들도 퍼펫을 통해 생생하게 구현됐다. 가오나시, 생쥐로 변한 보우, 가마할아범과 숯검댕이들까지 모두 사람이 직접 조종하는 방식으로 무대에 오른다. 무대 디자인 역시 이러한 방향성을 따른다. 무대 디자이너 존 보서는 극의 중심 공간인 목욕탕을 일본 전통극 노(能)의 무대를 연상시키는 구조로 설계하고, 회전 무대와 가부키의 하나미치 개념을 결합했다.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히사이시 조의 음악을 라이브 오케스트라 연주로 감상할 수 있다는 점 역시 이 공연을 놓치지 말아야 할 이유다. 음악과 함께 펼쳐지는 두 장면은 이 작품에서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다.

온천장에서 갖은 위기를 넘긴 치히로가 하쿠를 만나 주먹밥을 건네받으며 억눌러왔던 두려움과 슬픔을 눈물로 쏟아내는 장면에서, 서정적인 바이올린 선율이 흐르자 객석 곳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이어진다. 용감한 치히로가 여전히 보호받고 싶은 소녀임이 드러나는 이 순간은, 음악이 어우러지며 깊은 울림을 남긴다. 이어 치히로가 기차를 타고 제니바의 집으로 향하는 장면에서도 음악은 조용히 힘을 발휘한다. 말없이 흘러가는 풍경과 노을에 잠긴 바다 위로 선율이 겹치며 지브리 애니메이션 특유의 목가적이면서 평화로운 감각을 무대 위에서 전한다. 전학과 이사를 앞두고 칭얼대던 열 살의 치히로는 두려움 앞에서 울고, 낯선 세계 속에서 길을 잃는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제 안에 있던 용기를 발견하고, 새롭게 알게 된 사랑을 길잡이 삼아 결국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온다. 원작자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 이야기를 '치히로가 살아갈 힘을 되찾는 이야기'라고 설명한 바 있다. 음악극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애니메이션이라는 형식이 지녔던 세계를 존중하면서도, 무대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 감정과 풍경을 새롭게 구축해낸다. 한때 열 살이었던 우리 모두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감동을 건네며, 다시 살아갈 힘을 조용히 전한다. 공연은 3월 22일까지다.

[구정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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