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물된 감포 돌미역·칠곡 버거…남편 외조 덕"

4 hours ago 1

해녀 이정숙 씨와 남편 정대엽 씨가 경북 경주 감포읍 연동마을 해변에서 함께 잠수 준비를 하고 있다. /해녀 이정숙 제공

해녀 이정숙 씨와 남편 정대엽 씨가 경북 경주 감포읍 연동마을 해변에서 함께 잠수 준비를 하고 있다. /해녀 이정숙 제공

소멸 위기를 맞은 지방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낸 여성 창업가들과 이들을 물심양면으로 돕는 우직하고 헌신적인 남편들이 주목받고 있다. 최근 인기를 끈 넷플릭스 시대극 ‘폭싹 속았수다’에 등장하는 ‘애순이와 관식이’의 현실판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1호 관식이’는 경북 경주 감포읍 연동마을 해녀 이정숙 씨(55)의 남편 정대엽 씨(61)다. 유명 철강회사에 다니던 정씨는 2022년 어깨를 다쳐 잠시 쉬며 아내 일을 거들다가 회사를 관두고 ‘1호 애순이’ 이씨를 돕는 데 나섰다. 30년간 산소 공급 장치 없이 잠수해 해산물을 캐는 나잠어업을 해온 이씨가 판매에도 나서자 일손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씨와 해녀들은 “어렵게 캔 자연산 돌미역 등 해산물이 도매상에게 헐값에 넘겨지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해 ‘해녀 이정숙’이라는 사업자를 등록해 다른 해녀 15명의 해산물까지 함께 팔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거친 파도를 맞으며 갯바위에서 자란 돌미역은 산모용으로 최고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직판 체제를 갖춘 뒤 이씨의 소득은 연간 1000만원대에서 억대로 급증했다. 이씨는 “다른 해녀들 역시 수익이 200% 이상 늘어 어촌계에도 고무적”이라고 했다.

경북 칠곡 왜관읍 므므흐스 버거의 배민화 대표와 남편 구건호 실장이 햄버거를 선보이고 있다. /므므흐스 버거 제공

경북 칠곡 왜관읍 므므흐스 버거의 배민화 대표와 남편 구건호 실장이 햄버거를 선보이고 있다. /므므흐스 버거 제공

정씨는 온·오프라인 판매, 택배 포장 배송은 물론 갯바위 청소와 같은 잡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를 위해 못하던 수영까지 배웠다. 드라마 속 애순이처럼 평생 글쓰기를 꿈꿔온 이씨는 남편 지원에 힘입어 대학에 입학해 관련 공부를 시작했다. 이씨는 “삶의 터전인 바위를 함께 지켜준 남편 덕분에 2016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된 나잠어업의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고 고마워했다.

하루 버스가 두 번 다니는 경북 칠곡 왜관읍 시골 마을에 세상에 없는 건강버거 ‘므므흐스 버거’를 창업한 배민화 대표와 남편 구건호 실장이 ‘2호 애순·관식이’다. 므므흐스 버거는 지난해 방문자 10만 명, 매출 9억원을 넘어서면서 동네 가게 수준을 뛰어넘었다. 구 실장은 몇 번의 유산 끝에 임신한 아내를 위해 건강버거를 만들다가 2019년 아예 창업의 길로 들어섰다. 마을 어르신들조차 “이 골짜기에 햄버거 가게를 차려서 밥이나 먹고 살겠냐”며 걱정했지만 구 실장의 아이디어는 적중했다. 냉동 패티를 쓰지 않고 흑마늘 진액을 넣은 므므흐스 버거는 인근 주한미군들조차 1시간씩 줄을 설 정도다. 감자튀김도 수입 냉동 감자 대신 국내산 감자로 만든다. 지난해 7t을 계약 재배했는데 1년도 안 된 지난달 완판됐다. 배 대표는 “마케팅과 외부 강의를 제외한 레시피 개발부터 가게 디자인 운영 등 모든 일을 남편이 맡고 있다”며 “남편은 자기를 ‘소사’라고 부른다”고 했다.

폐업한 찜질방이 방치된 자리에 카페와 복합공간을 만들어 연간 18만 명이 찾는 명소로 바꾼 경북 상주 명주정원 이민주 대표도 남편 덕을 많이 봤다. 대기업 엔지니어 출신인 약혼자 양모씨는 전공을 살려 커피 로스팅 기계를 직접 개발한 뒤 특허를 출원했다. 매장 관리 자동화 시스템도 구축해 명주정원의 성공 스토리를 만들고 있다.

경주/칠곡/상주=오경묵 기자 okmook@hankyung.com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