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라이릴리 3상 효과 발표에
노보노디스크 “FDA에 신청”
내년께 나란히 출시 가능성
2030년 시장규모 75조원
한국서도 일동제약 등 도전
하루 한 번씩 약을 먹는 것만으로 살을 뺄 수 있을까. 멀게만 여겨졌던 경구용 비만약 시대가 임박했다. ‘먹는 비만 치료제 시대’를 열 것으로 기대를 모으는 주인공은 현재 비만 치료제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덴마크 노보노디스크와 미국 일라이릴리다. 이들 빅파마가 최근 나란히 경구제의 내년 출시 가능성을 내비치면서 관련 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일라이릴리는 최근 경구용 당뇨 및 비만 치료제로 개발 중인 ‘오포글리프론(Orforglipron)’의 임상 3상 시험의 톱라인 결과, 당화혈색소와 체중이 모두 유의미하게 감소하는 효과를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ACHIEVE-1로 불리는 이번 시험은 2형 당뇨병을 앓는 비만 환자 559명을 대상으로 40주간 진행됐다. 오포글리프론을 40주간의 복용한 결과 연구 참가자들의 당화혈색소 수치는 평균 1.3~1.6% 감소했다. 무엇보다 오포글리프론을 매일 3㎎, 12㎎, 36㎎씩 복용한 참가자들의 체중이 각각 평균 4.7%, 6.1%, 7.9% 줄었다.
오포글리프론은 위고비와 같은 주사제인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약물을 경구용으로 만든 제품이다. GLP-1은 음식을 먹거나 혈당이 올라가면 소장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이다. 기존에는 당뇨병 치료를 위해 개발돼 사용됐으나, 이후 식욕을 억제하고 포만감을 증가시켜 체중 감량을 돕는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비만 치료제로 적응증이 확대됐다.
이번 임상 결과는 비만약으로서 경구용 GLP-1 치료제의 상업화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주사제 기반의 GLP-1 치료제는 이미 비만약 시장에서 압도적인 주목을 받고 있지만, 주사제에 대한 거부감 등으로 복약 편의성과 환자 접근성 면에서 제약이 있었다. 현재 경구용 GLP-1 제제로는 노보노디스크의 ‘리벨서스(성분명 세마글루티드)’가 당뇨병 치료제로 허가된 게 전부다.
일라이릴리는 이번 연구 결과를 기반으로 올 연말까지 오포글리프론의 비만 치료 적응증에 대해 미국 식품의약국(FDA) 등에 허가 신청을 추진할 방침이다. 내년에는 당뇨병 적응증에 대해서도 허가를 받겠다는 구상이다.
일라이릴리가 성공적인 임상 3상 결과를 발표하자, 노보노디스크도 곧바로 올해 초 ‘경구용 세마글루티드’에 대해 FDA에 판매 허가를 신청했다고 응수했다. 세마글루티드는 주사제 중에서는 위고비, 경구제 중에서는 리벨서스의 주성분이다.
노보노디스크는 2023년 이미 경구용 세마글루티드의 임상 3상을 성공적으로 마친 바 있다. 당시 발표된 임상 3상 시험 결과 경구용 세마글루티드 50㎎을 1일 1회 복용한 비만 또는 과체중 성인들은 68주 후 체중이 15.1% 감소했다. 참가자의 89.2%는 68주 후 5% 이상 체중이 줄었다.
노보노디스크는 그간 체중 감량 효과가 더 높은 다른 주사제형의 비만약 개발을 우선순위로 삼아왔기 때문에 경구용 세마글루티드의 시판은 지연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최근 먹는 비만약 시대가 예상보다 일찍 열릴 것으로 전망되자 노보노디스크도 다시 경구용 세마글루티드 카드를 꺼내든 것으로 풀이된다. FDA 승인이 이뤄지면 경구용 세마글루티드가 비만 치료 목적으로 사용 가능한 최초의 경구용 GLP-1 약물이 될 것으로 보인다.
먹는 약은 주사제보다 개발이 어렵다. 다른 제약사들이 따라잡으려면 시간이 필요한 만큼, 먹는 비만약 시장도 한동안 일라이릴리와 노보노디스크의 양강구도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앞서 암젠과 화이자 등 경구형 GLP-1 비만 치료제 개발을 선언한 주요 빅파마들도 최근 줄줄이 실패 소식을 전한 바 있다.
가장 먼저 먹는 비만약 시대를 열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화이자는 최근 간 독성 부작용 우려를 이유로 ‘다누글리프론’(Danuglipron) 개발을 포기했다. 화이자의 먹는 비만약 개발 중단은 이번이 두 번째다. 암젠 역시 ‘AMG786’ 개발을 중단하고 월 1회 주사 방식의 비만약 개발로 전략을 수정한 상태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글로벌 비만 치료제 시장 규모는 2030년 540억달러(75조7400억원)으로 급성장할 전망이다. 다만 비만약의 연이은 흥행에 시장 규모가 5년 뒤 100조원을 넘어설 수 있는 관측도 쏟아지고 있다.
국내 기업들도 꾸준히 이 시장에 도전중이다. 대부분 임상 초기 단계의 후보물질이지만 비만약 시장의 특성상 우수한 체중 감량 효과 등을 입증하면 후발주자라도 시장을 확대에는 무리가 없다는 평가다.
일동제약은 연구개발(R&D) 전담 자회사 유노비아를 통해 GLP-1 계열 경구제 ‘ID110521156’의 국내 임상 1상을 진행 중이다. 저분자 화합물 방식의 합성신약으로 우수한 생산성이 특징이다. 디앤디파마텍 역시 경구용 비만치료제 분야의 핵심 주자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