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 요리하다 떠오른 아이디어로 시작된 ‘굴 소스’… 3대째 이어온 글로벌기업으로 성장
이금기, 유명 중식당들에서 가장 중요한 소스로 활용… ‘중식풍 소스’ 대표기업
홍콩 본사·공장, 중국 거점 공장 방문해보니… 놀라운 수준의 청결도 ‘창업자 고집’ 이어져
한국서 연간 20%씩 성장… “한국 시장만을 위한 특화 제품 출시 이어갈 것”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 인기를 타고 최근 국내에서 주목받는 소스 브랜드가 있다. 136년 역사의 소스 제조기업 이금기(李錦記)다. 굴 소스 개발을 시작으로 중화풍 소스류를 중심으로 판매하는 글로벌 브랜드다. 흑백요리사에 출연했던 여경래, 황진선, 박은영 등 쉐프들이 중식 요리 맛을 내는 비법으로 ‘이금기’를 사용하는 것이 알려지면서 국내 소비자들 사이에서 인지도가 크게 상승했다.이금기는 1888년 창업자인 이금상이 굴로 요리를 하던 중 아이디어를 얻어 소스를 상품화하면서 시작됐다. 당시에는 이름 뒤에 ‘기(記: 기록할 기)’를 붙여 상점을 열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장사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고 한다. 중국 광둥 지역에서 시작된 이금기는 선풍적인 인기를 타고 1902년 마카오로 회사를 이전했고, 1932년에는 홍콩으로 이주해 본사를 세웠다. 이후 가족경영을 중심으로 3대까지 기업을 이어왔으며, 3대손 이문달 회장이 2021년 별세한 이후 남은 가족들이 중심이 돼 이금기를 운영하고 있다. 비상장 기업으로 실적을 공개하고 있지 않지만, 연간 글로벌 14조 원 수준의 매출을 내는 것으로 추정된다.지난해 한국에서는 690억 원 규모의 매출을 올렸으며 매년 20% 이상 성장세를 기록 중이라고 한다. 이에 따라 이금기는 한국 소비자들과 소통을 확대하고 사업을 확장하고자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에는 홍콩 본사 및 중국 신후이 공장에 한국 기자단을 초청해 소스 제조 과정을 공개하고 미래 비전을 발표했다. 이금기 홍콩 본사에는 제품 연구 시설 및 제조시설이 갖춰져 있다. 한국으로 수출하는 제품 중 상당수는 홍콩 공장에서 제조한다고 하며 이는 원산지를 꼼꼼하게 따지는 한국 소비자들의 취향을 고려한 조치다. 홍콩 연구소 및 제조시설을 둘러보니 무척 깨끗하고 깔끔하게 운영되고 있었다. 이금기는 ‘100-1=0’이라는 품질 관리 철학을 적용해온 기업으로 유명하다. “100번을 잘해도 1번 실수하면 끝이다”라는 자세로 깨끗하고 안전한 먹거리를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
공장 곳곳에는 품질 검사실이 운영되며, 모든 원재료는 공급업체에서 조달된 후 3단계 검수를 거친다. 자동화 기기와 숙련된 기술자가 상호 보완하며 균일한 품질의 소스를 제조하는 데 집중한다고 한다.
이어 이금기의 글로벌 거점 공장인 중국 신후이 시설을 견학했다. 신후이 공장은 홍콩에서 중국 본토로 3시간 30분 거리인 광둥성 장먼시에 있다. 여의도 전체 면적의 3분의 1 규모에 달하는 1.3㎢에 걸쳐 이금기 공장이 세워져 있었다. 이곳 신후이는 이금기 공장을 주변으로 상권이 형성돼 있을 만큼 지역의 중심시설로 자리잡힌 것이 특징이다. 마치 삼성전자 수원 공장을 중심으로 상권과 주거시설이 형성된 것과 비슷한 형태다. 신후이 공장에서는 다양한 소스를 제조 중이지만, ‘간장’을 중점으로 생산 중이었다. 간장은 발효를 거쳐 제조되기 때문에 장시간 보관할 공간적·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한다. 신후이 공장에는 한 통에 간장 60톤이 들어가는 대형 발효 통이 3000개 이상 있다. 첨단 소재를 사용해 만든 간장 발효통은 우리 조상들이 쓰던 장독대와 비슷한 역할을 하고 발효통 상단에 특수한 뚜껑을 달아 햇빛을 받으며 발효 및 숙성되는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공장 관계자는 “간장 제조에 사용되는 모든 콩은 ‘유전자를 변형하지 않은 콩’을 쓰며, 화학적인 방식으로 급하게 간장을 만들지 않고 자연 발효를 거쳐 가장 안전하게 만드는 방식을 적용 중”이라고 강조했다.현장에서 만난 토니 목 이금기 신후이 공장장은 “고품질의 소스를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으며, 최근 트렌드에 발맞추기 위해 AI 기술을 도입하고 공장 친환경 인증을 받는 등 혁신을 지속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AI 도입은 공장 자동화 단계에서 ‘맞춤 생산’ 방식으로 개선하는 것을 의미한다. 대량 생산 체계를 넘어 소비자 수요를 예측하고 실시간으로 맞춤 생산하는 방식이다. 현재 토요타의 생산 방식과 유사하며, 향후 이금기는 AI 기술 도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현재 신후이 공장에서는 다양한 간장 제품과 새우장, XO소스, 칠리소스, 치킨파우더 등 폭넓은 제품을 생산 중이며, AI 맞춤 생산이 고도화되면 재고를 줄이는데 기여하고 생산-출하-판매가 신속하게 이어지는 업무 효율화가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공장을 견학하면서 놀랐던 점은 건물 안팎으로 우수한 청결 상태를 보였다는 점이다. 통상 제조 공장의 경우 업태 특성상 오염에 취약한데 이금기 신후이 공장은 한국, 일본의 유명 기업들의 생산 공장보다도 더 깨끗한 상태를 유지 중이었다. 창업주에서부터 이어져 온 결벽에 가까운 청결의식이 공장 전체에 적용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실제로 친환경 분야에서 국제적인 권위를 갖는 미국 LEED(Leadership in Energy and Environmental Design) 인증을 지난 2020년 획득했다고 한다. LEED는 미국 녹색건축위원회가 개발한 국제 인증제도로 지속가능성을 평가하는 국제적인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기자단을 인솔한 정진기 이금기 한국 총괄이사는 “이금기는 전 세계 100여 개 국가로 수출하는 글로벌 소스 제조사로 철저한 위생을 최우선 가치로 두고 생산하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금기는 향후 종합 식품 기업으로서 발돋움 하기 위해 다양한 제품 개발을 시도하고 있으며, 이곳 현지에서는 달걀, 메추리알 등을 활용한 간편식도 꾸준하게 출시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또한 “앞서 한국 시장만을 위한 춘장 소스를 개발해 현재 인기리에 판매 중이며, 조만간 매운 마라탕 소스를 출시하는 등 한국 특화 제품을 꾸준히 개발할 계획이다. 이금기는 한국 소비자들에게 사랑받기 위해 다양한 소스류 출시와 활발한 교류를 통해 더욱 친근하게 다가갈 예정이다”라고 강조했다.
홍콩과 중국의 개발시설 및 공장을 견학하고 느낀 이금기 맛의 비결은 ▲청결하고 맛있는 소스를 만들겠다는 창업자 정신을 100년 넘게 이어왔다는 점과 ▲좋은 재료를 확보해 꼼수 부리지 않고 제대로 만든다는 점을 들 수 있었다. 진정기 이사는 “이금기의 간장들은 한국브랜드의 일부 간장들보다 숙성 기간이 훨씬 더 길며 전통 방식을 고집해 만들고 있다. ‘음식을 음식답게 만들자’라는 것이 이금기의 자부심이자 기본 원칙”이라고 말했다.김상준 동아닷컴 기자 ks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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