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의 관세전쟁으로 세계 금융시장이 출렁이는 가운데 미국 단기 채권이 서학개미(해외주식에 투자하는 개인) 피난처로 부각되고 있다. 미국 장기채 금리가 널뛰고 있는 데다 안전자산 지위마저 흔들리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 영향이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시장의 변동성이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단기채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장기채 앞선 단기채 수익률
13일 ETF체크에 따르면 1년 미만 미국 국채에 투자하는 ‘ACE 미국달러단기채권액티브’ 상장지수펀드(ETF)는 최근 6개월간 9.77% 올랐다. 같은 기간 미국 장기채 ETF인 ‘ACE 미국30년국채액티브’(0.61%)를 훌쩍 웃도는 수익을 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정책이 경기 침체를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로 변동성이 극심했던 최근 한 달간 기준 수익률도 각각 -0.21%, -4.67%로, 단기채가 장기채를 앞섰다. 단기채는 달러 가치 상승분과 이자수익을 챙겼지만 장기채는 가격이 하락(금리 상승)한 탓이다.
미국 증시에서도 단기채 ETF가 수익률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1~3년 만기 미 국채에 투자하는 ‘뱅가드 단기채’(VGSH)는 6개월간 2.23%의 수익률을 올렸다. 1년 미만으로 만기가 짧은 미 국채를 담은 ‘아이셰어즈 단기채’(SHV)는 같은 기간 2.19% 상승했다. 반면 미 장기채 ETF인 ‘아이셰어즈 만기 20년 이상 미국 국채’(TLT)는 이 기간 3.91% 하락했다. 환율을 배제한 수익률 측면에서도 단기채가 더 높은 성과를 낸 것이다.
글로벌 자금은 단기채 ETF에 몰리고 있다. 변동성이 컸던 한 달간 SHV에 12억6520만달러(약 1조8398억원)가 들어왔다. 잔존 만기 3개월 미만 미국 국채에 투자하는 파킹형 상품 ‘SPDR 블룸버그 1~3개월 미국 단기채’(BIL)와 ‘아이셰어즈 0~3개월 미국 단기채’(SGOV)에는 같은 기간 각각 71억1840만달러, 48억9630만달러가 순유입됐다. TLT에서는 반대로 이 기간 5억6450만달러 순유출됐다.
이번 급락장을 앞두고 주식을 대거 정리해 주목받은 ‘투자의 달인’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도 단기채를 선호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해 3분기 기준 벅셔해서웨이가 보유한 미국 단기채 규모는 2880억3100만달러에 달했다. 전년 동기(1296억1900만달러)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안전자산 지위 흔들리는 美 장기채
일반적으로 증시가 하락하는 국면에서는 미국 장기채의 인기가 높다. 대표적 안전자산인 만큼 하락장에서 수요가 증가하고 이에 따라 가격이 상승하면서 자본차익을 누릴 수 있어서다. 장기채는 만기가 길기 때문에 단기채보다 얻을 수 있는 자본차익 규모가 크다.
하지만 최근 미국 장기채의 안전자산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 상호관세가 발표된 지난 9일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가 0.5%포인트 이상 급등한 연 4.516%까지 뛴 게 대표적 사례다. 채권 금리가 상승하면 반대로 채권 가격은 하락한다. 증시 폭락과 안전자산인 장기채 가격 급락이 동반되는 건 이례적이다.
월가에서는 중국이 미국 장기채를 팔아치운 게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다. 미 국채 금리 폭등 시점이 미국이 중국에 상호관세를 부과한 시기와 맞물리면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시장에서 대규모 관세 부과 대상인 국가들이 미국 국채를 매도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고 전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미국 장기채는 변동성과 위험성이 점점 커지면서 투자 피난처로 부적합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며 “반면 미국 단기채는 변동성이 작고 현금화가 쉬운 데다 향후 미국 중앙은행(Fed)이 기준금리를 인하하면 자본차익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루만 넣어도 이자…파킹형 ETF 각광
국내 채권 시장에서도 단기채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예금보다 수익률이 높은 데다 쉽게 현금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결합돼 투자금을 끌어모으고 있다는 분석이다. ‘코레이트셀렉트단기채펀드’는 설정액이 연초 대비 1조7606억원 늘었다. 채권형 공모펀드 가운데 올 들어 설정액이 가장 많이 증가했다.
하루만 돈을 넣어도 연 3% 내외 이자를 받는 파킹형 ETF도 투자 대기자금 수요처로 각광 받고 있다. 파킹형 ETF는 상품 유형과 운용사별 운용 역량에 따라 수익률에 차이가 나는 만큼 상품 구조와 거래비용 등을 잘 따져봐야 한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11일 기준 만기기대수익률(YTM)이 가장 높은 파킹형 ETF는 ‘SOL 초단기채권액티브’(3.11%)였다. ‘PLUS 머니마켓액티브’(3.03%)가 뒤를 이었다.
양도성예금증서(CD) 추종형에서는 ‘KIWOOM CD금리액티브(합성)’가 2.72%며, 한국무위험지표금리(KOFR) 추종형 ‘KODEX KOFR금리액티브(합성)’는 2.802%의 기대수익률을 기록했다.
파킹형 ETF 수익률은 일반적으로 머니마켓 유형이 가장 높다. CD와 KOFR 유형은 수익률이 소폭 낮은 대신 변동성은 상대적으로 작다. 머니마켓 ETF는 3개월 이내 은행·회사채 등 초단기 채권에 투자해 초과수익을 추구하는 상품이다. 안정적인 CD 및 KOFR 상품과 달리 단기채 가격 변동에 따른 변동성이 있어 초과수익을 기대하는 투자자에게 적합하다.
맹진규 기자 mae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