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 첸 "다시 태어나도 바이올리니스트…기쁨이자 특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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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ry me(결혼해주세요)."
"You gotta at least download 'Tonic' app first.(최소한 '토닉' 앱부터 먼저 깔아야지)"

지난 2024년 아르떼와 인터뷰한 바이올리니스트 레이 첸 / ⓒ문덕관

지난 2024년 아르떼와 인터뷰한 바이올리니스트 레이 첸 / ⓒ문덕관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에서 쏟아지는 팬들의 애정 공세를 재치 있게 받아치는 이 사람. IT 개발자 같지만 사실은 '21세기형 클래식 연주자'로 불리는 바이올리니스트 레이 첸(37)이다. 그의 일상을 궁금해하는 소셜미디어 팔로워만 200만 명이 넘는, 클래식 음악계에서 독보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스타다.

대만계 호주인인 그는 네 살 때 바이올린을 시작해 미국 명문 커티스 음악원을 졸업했다. 완벽한 기교와 풍부한 표현력으로 2008년 예후디 메뉴인 국제 콩쿠르, 2009년 퀸 엘리자베스 국제 콩쿠르에서 연이어 우승했다. 공연장이 문을 닫은 팬데믹 시기, 레이 첸은 전 세계 아마추어·프로 연주자들과 온라인상에서 함께 연습할 수 있는 '토닉' 앱을 공동 설립했다. 그가 한 클래식 팬의 청혼에 토닉 앱을 홍보하는 장난 섞인 답변을 남긴 이유다.

실력과 재치를 겸비한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레이 첸이 오는 6월 4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리사이틀을 연다. 공연을 앞두고 있는 그를 아르떼가 서면으로 만났다.

바이올리니스트 레이 첸./©Decca Records

바이올리니스트 레이 첸./©Decca Records

이번 공연에서 그는 모차르트와 바흐에서부터 노르웨이 작곡가 그리그의 작품, 스페인 작곡가 겸 바이올리니스트 사라사테의 카르멘 환상곡 등 다양한 시대의 음악을 연주한다. 그는 "프로그램을 구성할 때 항상 염두에 두는 목표는 바이올린이 표현할 수 있는 모든 범위를 탐구하는 것"이라며 "리사이틀은 하나의 '코스 요리'이고, 관객은 한 자리에서 다양한 음악의 맛을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온라인을 통해 클래식 음악을 접하는 요즘, 공연장에서만큼은 관객이 다양한 취향을 발견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신념이다. "오늘날 라이브 공연의 역할은 관객들에게 악기와 음악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관객이 집에 돌아가 스스로 더 깊이 탐구하고 다음 공연에도 찾아오는 것. 그것이 바로 콘서트가 담고 있는 진정한 의미입니다."

그는 바이올린만큼이나 소셜미디어를 잘 다루는 21세기형 클래식 연주자다. 길거리 즉흥 공연, 생생한 연습 현장 등이 담긴 영상을 소셜미디어에 공유하며 대중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그런 수식어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한다.

"저는 그저 제가 옳다고 믿는 일을 할 뿐입니다. 클래식 음악가의 역할은 위대한 작곡가들의 작품을 어느 시대의 관객에게든 잘 전달하는 것입니다. 만약 시간 여행이 가능하다면 저는 지금과는 매우 다른 방식으로 연주했을 것입니다. 50년 전에도, 100년 전에도, 그리고 100년 후에도 연주는 달라질 것입니다. 그 시대의 사람들을 위해 음악을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죠."

대만계 호주인 바이올리니스트 레이 첸./©Decca Records

대만계 호주인 바이올리니스트 레이 첸./©Decca Records

밝은 에너지로 가득한 그에게도 슬럼프는 있었다. 전 세계 연주자들이 설 곳을 잃었던 코로나19 시기였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는 대신 동료 연주자들이 각자 연주 영상을 공유할 수 있는 온라인 공간을 만들었다.

"연습을 둘러싼 고독함과 동기 부재를 직접적으로 해결하는 음악 연습 앱이에요. 모든 수준의 음악가들이 온라인에서 라이브 연습 스튜디오를 열고 다른 사람들이 들어와 들을 수 있게 해줍니다. 동기 부여뿐 아니라 무대 공포증 완화에도 도움이 되죠. 젊은 음악가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거예요. 혼자인 것 같은 느낌이 들기 쉽지만,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이 무엇이든 세상 어딘가에 똑같이 느끼는 사람이 있다는 걸 항상 기억하세요. 그 감정들과 혼자서 싸우려 하지 마세요."

그는 음악이 가진 변화의 힘을 믿는다. "콘서트홀에서의 연주, 수백만 명이 보는 영상을 만드는 일, 사람들이 서로 연습 과정을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드는 것까지 결국 음악의 힘을 통해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는 게 제 목표입니다."

다시 태어나도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겠다는 레이 첸. 그는 예술가로서의 삶을 한없이 긍정했다. "스타트업을 만들고, 온라인 콘텐츠를 제작하고, 사업을 운영하는 것이 어떤 건지 경험하고 나서야 오히려 예술가로 사는 게 인생에서 선택할 수 있는 길 중 가장 큰 기쁨이자 특권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5년 전엔 아마 다른 대답을 했을 거예요. 하지만 이 여정을 걷고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나니 이제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제가 걸어온 이 길이 모든 가능한 우주를 통틀어 가장 좋은 길이라고요. 힘든 순간이 있더라도 매 순간을 즐기고 있어요. 이것과 바꾸고 싶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허세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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