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커버리'를 아십니까…내 카톡이 법정에서 공개된다면? [김갑유의 중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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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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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소송을 경험한 기업이라면 미국소송이 얼마나 큰 비용을 소모하는지 실감할 것이다. 미국소송에서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든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 중 하나는 그 비용의 상당 부분이 소위 '디스커버리(Discovery)'라고 불리는 절차에 들어간다는 점이다. 디스커버리가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모든 서류를 확인·대응하다 보니 비용이 늘어나는 것이다.

또 다른 사실은 미국소송 대부분이 디스커버리 절차 중 혹은 정식 소송 전 합의로 종결된다는 점이다. 당사자로서는 소송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합의할 수도 있다. 디스커버리를 통해 정보를 확보하는 과정은 상대방 주장의 타당성을 스스로 판단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사건 관련 문서는 모두 공개

그렇다면 디스커버리란 무엇일까? 디스커버리는 미국소송에서 당사자가 상대방에게 증거 자료나 정보를 요구하고 교환하는 절차를 말한다. 미국소송에서는 상대방에게 서면 질문과 답변을 요구하거나(서면 심문·Interrogatory), 상대방 증인에게 직접 질문하고 답변을 녹취할 수도 있다(구술신문·Deposition). 현장이나 물건을 직접 보고 검사하거나(검증요청·Inspection), 어떤 사실을 인정할지 묻고 답하는 것도 가능하다(진술서요청·Inspection).

이때 상대방이 가진 문서나 교신내용 등을 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데(문서요청), 이 절차를 디스커버리라고 부른다. 우리나라 소송도 '문서제출명령'이라는 절차가 있지만 요구할 수 있는 서류가 대단히 제한적이다. 해당 서류가 필요한 상황임을 잘 설명해야 하는 것은 물론 구체적인 서류를 정해서 요청해야 한다. 반면 미국소송에서는 사건에 관련된 문서라면 모두 공개 대상이 되고, 문서의 형태만 특정하면 공개요청이 가능하다.

그래픽=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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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는 문서제출명령을 위반해 문서를 제출하지 않아도 별다른 제재가 없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법원이 문서 제출을 명한 서류를 제출하지 않으면 판사가 불리한 추론(Adverse Inference)을 통해 당사자에 불리한 사실인정을 하거나, 경우에 따라 법정 모독으로 처벌할 수도 있다. 대리인이 문서의 존재를 알면서도 제출하지 않으면 변호사 자격이 박탈되기도 한다.

디스커버리는 소송에서 진실 발견에 도움이 된다는 차원에서 미국소송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반면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륙법계 국가들은 불필요한 비용과 절차 지연을 피한다는 측면에서 디스커버리 도입을 망설인다. 다만 최근 우리나라 소송에서도 디스커버리가 필요하다는 시장의 요구로 현재 법원과 법조계가 도입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업무상 카톡도 국제분쟁 증거

법원이 아닌 개인이 국제분쟁을 판정하는 국제중재 절차에서도 미국소송만큼은 아니지만, 문서 제출 절차로서 디스커버리가 상당한 정도에서 허용된다. 사건에 관련되고 사건의 결과에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서류라면 당사자는 상대방 요구 시 제출할 의무가 있다. 큰 비용을 발생시킨다는 비판은 있지만, 국제분쟁이 점점 거대화·복잡화하면서 확대되는 추세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문서 제출 절차가 컴퓨터나 모바일기기의 데이터를 모두 카피해서 디지털 데이터베이스로 만들고, 키워드를 입력해서 문서를 추출하는 'e-디스커버리(e-discovery)' 방식이 흔히 사용되고 있다. e-디스커버리는 이메일, 문자메시지, 채팅 기록, 컴퓨터 파일, 서버 로그, 클라우드 저장문서, SNS 로그기록, CCTV 영상 등 모든 관련 자료를 보존·수집해 추출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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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모든 교신이 이메일이나 문자, 채팅 등으로 이뤄지는 만큼 모바일기기도 포렌식 대상이 된다. 그 안에 담긴 모든 자료가 분쟁에서 데이터로 제공되는 것이다. 매일 쓰던 메시지나 채팅이 누군가에게 공개된다고 상상해 보자. 그 누군가는 당신이 보낸 말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법정에서 반대신문을 벌인다.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지는 일이지만, 실제로 벌어지는 현실이다.

이런 상황이 싫다면, 채팅이나 SNS를 업무에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회사의 이메일이나 회사 내 교신 방식을 통해서 업무를 보고, 개인적인 채팅이나 SNS는 개인 업무로 분리해야 한다. 우리 기업 중에는 같은 업무를 하는 사람들끼리 카톡방을 만들어 업무 논의와 지시를 하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만일 그 업무에 관해서 국제분쟁이 발생하면 카톡방의 교신 내용은 모두 공개 대상이 된다.

디스커버리, 방어 방법은 없나

디스커버리에서 중요한 방어 수단이 있다. 바로 '변호사-고객 특권(ACP·attorney-client privilege)'이다. 변호사의 법률 자문을 받은 내용은 기밀성이 보장되어야 하므로 그런 서류는 상대방이 요구해도 제출을 거부할 수 있는 것이다. '변호사'는 어떤 나라의 자격을 가진 변호사이든 법률 자문이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면 같은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사내변호사가 법률 자문을 한 내용은 공개 대상에서 제외된다.

대부분의 미국 기업은 최상위급 임원 중에 법률 자문을 담당하는 변호사가 있고 기업의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한다. 이에 임원 회의나 교신 내용이 ACP에 따라 공개 대상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다. 그에 비해 국내 기업은 임원 중 변호사가 없거나 변호사 없이 중요 사안을 논의하는 경우가 많아 대부분의 내부 서류가 공개 대상이 된다. 국제 거래에 참여하는 기업이라면, 사내변호사와 외부 변호사의 법률 자문을 적절히 활용해 민감한 내부 서류가 공개되는 것을 합리적 수준에서 방어할 필요가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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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팅이나 SNS처럼 통상 개인적인 용도로 가볍게 대화를 주고받는 도구를 이용해서 기업의 업무를 볼 때는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채팅이나 SNS 속성상 극단적인 표현이나 충분히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이런 내용이 분쟁 절차에서 공개되면 법원이나 중재판정부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주게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부적절하거나 부정확한 표현이 기업 입장을 곤란하게 하는 경우가 생긴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문서라고 하면 서신이나 하드카피로 된 서류가 대부분이었지만, 지금은 대부분이 전자적 형태고 교신 방법도 다양하다. 최근에는 음성 녹음이나 비디오 녹화 내용이 증거로 제출되는 경우도 많은데, 상대방의 동의 없는 녹음이 법적으로 허용되는지는 국가마다 입장이 달라 유의해야 한다. 요즘은 녹음·녹화 조작이 쉽다 보니, 원본임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메타데이터와 원본 데이터도 온전히 보존해야 한다.

'문서 전쟁'은 현실... 사전에 대비해야

국제분쟁을 '문서의 전쟁'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문서가 결정적인 증거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분쟁을 대비해 우리 기업에 유리한 서류를 잘 보관해야 함은 물론, 분쟁에 돌입하면 상대방이 가진 서류에 대해 전략적으로 제출을 요구해야 한다.

국제 거래에 참여하는 이상, 국제분쟁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이 급속도로 늘어나는 현실을 감안하면 언제 있을지 모르는 국제분쟁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일단 분쟁이 발생하고 나서 대응하면 너무 늦다. 상대는 조심스럽게 서류를 관리하는데, 우리는 아무 방비가 없다면 분쟁에서 불리한 결론을 받아들여야 하는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디스커버리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디스커버리'를 아십니까... 내 카톡이 법정에서 공개된다면? [김갑유의 중재 이야기]

김갑유 법무법인 피터앤김 대표변호사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사법연수원(17기)을 마치고 1988년부터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해 2002년 국내 최초로 국제중재 소송그룹을 만들었다. 아시아인 최초로 유엔 산하 국제상사중재협회(ICCA) 사무총장을 역임하고 한국인 최초로 국제상업회의소(ICC) 국제중재법원 부원장을 맡았다. 한국과 론스타의 6조원대 투자자-국가 간 분쟁(ISD)에서 한국을 대리했다. 2019년 국제중재 전문 로펌인 피터앤김을 설립해 활약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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