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답형 질문, 주도권 다툼 일관한 첫 토론
중립성 따지다 사회자가 핵심 질문도 못 해
향후 토론도 ‘알 권리’ 충족 가능성 낮다면
유권자 각각 사회자 돼 묻고, 자질 따져야
역사상 최초로 흑백 TV 시절인 1960년 이뤄졌던 존 F 케네디와 리처드 닉슨 후보 간 미국 대선 TV토론은 양복 색깔과 분장 여부에 쏠린 관심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당시 라디오로 토론을 들었던 유권자들은 닉슨의 승리라고 여겼다고도 한다. 실제로는 TV에서 젊고 자신만만해 보였던 케네디가 미국인의 선택을 받았다. 이후 1976년 제럴드 포드 당시 대통령의 소련 영향력에 관한 실언, 1992년 조시 부시 당시 대통령이 토론회 도중 손목시계를 보다가 동문서답한 장면, 2000년 민주당 후보로 나선 앨 고어 당시 부통령이 한숨을 내쉬며 보였던 고압적인 태도 등이 주로 회자된다.
그럼에도 2024년 미 대선 TV토론의 영향력은 이전과는 차원이 달랐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를 토론에 끌어들이기 위해 통상보다 3개월 이른 6월 토론회를 제안했던 조 바이든 당시 대통령이 되레 고령 리스크를 고스란히 노출하며 결국 민주당 후보직 사퇴에 이르렀다. 지지율 하락 정도가 아니라 TV토론의 취지대로 대통령 직무 수행 능력을 검증해 중도 낙마까지 초래한 토론으로 역사책에 기록되게 됐다.
미 대선 TV토론과 비교해 볼 때 우리 방식의 특징 중 하나는 질문하는 사회자가 없다는 사실이다. 사회자가 있어야 국민들의 관심사를 후보들에게 구체적으로 물어볼 수 있다. 그런데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주재하는 현행 TV토론의 지상 과제는 중립성이다. 사회자가 질문하고 후보가 답변하는 토론회로 운영하기 어렵다는 얘기다.특히 ‘주도권 토론’이라는 희한한 형식은 후보들로 하여금 상대방 공격에 자신의 토론 시간 대부분을 쓰도록 만든다. 시작할 때 한 번 자막으로 제시되는 토론 질문도 단순하고 추상적이다. 눈치챈 유권자들도 많겠지만 1차 토론 질문들은 대부분 단답형이었다. 경제 성장, 청년 고용, 재정 정책, 국가 경쟁력, 통상 전략, 재원 마련 등 질문이 간단하다 보니 답변이 중구난방이다. 또 다른 주제로도 쉽게 갈아탄다.
사회자가 날카롭고 구체적인 질문을 던져야 얼마나 준비된 후보인지를 유권자가 식별할 수 있다. 중립성만 강조된 나머지 후보들이 질문을 서로 하고 답변을 각자 하는 이상한 토론으로 전락해 버렸다. 좋은 질문이 있어야 좋은 답변이 있다. 토론 없는 비방 속에 유권자의 알 권리는 실종될 수밖에 없다.
물론 1차 토론에서 후보 간 비교 지점이 없지는 않았다. 경제 활성화를 위해 추경을 추진할 것인지, 아니면 규제 완화를 우선 할 것인지는 기존의 진보, 보수 입장 그대로였다. 인공지능(AI) 시대의 미래와 관련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공평한 성장의 기회를,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원전 산업 생태계 회복을 외쳤다. 돈 풀기를 반대하고 교육을 강조한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와 부자 증세를 통한 불평등 해소를 주장한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는 각각 기호 4번, 5번 후보다운 선명한 관점을 드러냈다. 차별화를 노린 같은 진영 내부의 틈새 공격도 있었다. 이준석 후보는 토론회 다음 날 김 후보의 사고와 경험이 현장과 유리돼 있다고 평가했다. 권 후보는 차별금지법 제정에 관한 이재명 후보의 유보적 답변에 대해 “(그런 식이면) 영원히 못 할 것 같다”고 질책했다. 이번 대선의 특성상 2, 3차 토론 이후에도 표심을 바꿀 유권자는 많지 않을 것 같다. TV토론의 운영상 문제점도 당장 개선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토론 대신 비방전이 될 확률 역시 여전하다. 하지만 TV토론을 통해 후보들의 특성을 생방송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경쟁자에 대한 예의, 토론 규칙을 지키는 태도, 자신의 정책 비전에 대한 확신과 전달 능력, 국민에 대한 진정성 등 대통령의 자질을 우리는 엿볼 수 있고 간파해야 한다.그렇다면 시청자인 유권자 각자가 사회자가 돼 후보들에게 질문을 던져 보자. 위기 상황에서 누가 국가 안보를 냉철하게 지킬 것인가? 달라진 미국과 상대할 새로운 외교 리더십을 가진 후보는 누구인가? 국가 경쟁력을 높이면서 공동체도 돌아보는 품성을 누가 가졌나? 그동안 유튜브를 통해 전해 들은 편파적이고 간접적인 정보들은 잠시 접어 두자. 지금은 차기 대통령이 될 사람을 직접 보고, 또 말을 들어 보면서 자신만의 선택 기준에 견줘 보는 유권자 숙제의 시간이다. 결국 뽑고 나면 우리 모두의 대통령이지 않은가?
서정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한국정당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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