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세때 ‘동승’ 출연한 배우 지춘성
작품 재창작한 ‘삼매경’ 다시 등장
눈물속 세월의 상실과 그리움 더해
과거-현재-연극 혼재된 상황 그려
초겨울 깊은 산속. 한 작은 산사엔 어린 승려 도념이 자신을 버리고 떠난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살고 있다. 괴로워하는 도념에게 주지 스님은 수행에 전념하라고 타이르지만, 속세에 대한 호기심과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은 그를 끊임없이 흔든다.
‘삼매경’은 나이 든 배우가 34년 전 자신의 ‘도념’ 연기가 실패라 여기며 살고 있다는 설정. 저승길에서 삼도천으로 뛰어들어 과거와 현재, 연극과 현실이 혼재된 ‘삼매경’을 경험한다는 줄거리다. 지 배우의 연기 인생을 작품의 직접적인 모티브로 삼고 있는 셈이다.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개막(17일)을 열흘 앞둔 7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지 배우와 이철희 연출을 만났다.
“그날은 유독 역할에 격하게 빠져 헤어날 수 없을 만큼 눈물을 흘렸는데, 어느 평론가로부터 ‘얕은 눈물샘에 호소하는 연기는 가짜다’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죠. 그런데 이번에도 얕은 눈물샘에 호소해야 하나 걱정입니다. 연습 진행이 어려울 정도로 울음이 나고 있거든요.”
과거의 눈물은 연출의 지시를 충실히 따르며 몰입한 울음이었다면, 현재의 울음은 살아온 세월까지 더해진 게 아닌가 싶었다. 지 배우는 “20대에 처음 ‘동승’을 만났을 땐 혈기로 ‘이건 나밖에 못 할 거야’라고 생각했다”며 “도념이 우는 장면에서 ‘1분 25초에 기승전결을 갖춰 울어달라’는 등 연출의 요청을 충실히 수행했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삼매경’의 연기는 또 다르다. 지 배우는 “(돌아가신) 어머니가 걸리고, 후배들이 걸리고, 그들이 겪어야 할 지난한 세월이 마음에 걸린다”며 “연기를 하다 보면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이 밀려온다”고 했다. 그는 무대 밖에서도 역할에 몰입한 듯 또 눈물을 훔쳤다. 비교적 작은 체구인 지 배우는 10년 전에도 ‘알리바이 연대기’에서 소년 역을 연기한 적이 있다. 젊은 시절엔 평생 어린아이 몸으로 살아가는 ‘양철북’의 오스카가 자기 같다고 여겼단다. 한때는 콤플렉스라고 여겨 극복하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이젠 콤플렉스는 사라지고 무대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만으로 원동력이 된다고 한다.“(극 중 배우처럼) 지금 삼도천에 빠져도 아쉽지 않을 것 같아요. 그저 주어진 순간에 최선을 다하려 석 달째 수도승처럼 연습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이 연출은 이번 연극이 “‘지춘성 배우가 이 작품(‘동승’)을 다시 만난다면 어떨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한 극”이라며 “상실을 키워드로 두 가지 이야기를 겹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원작에서 도념이 갖고 있던 것은 어머니에 대한 상실감이죠. ‘삼매경’에서 배우의 상실감은 34년 전 완성하지 못한 역할에 대한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상실감이 나란히 전개되다가 나중에 서로 만날 수밖에 없는 필연적 우연이 생깁니다. 그 두 이야기가 만나 완성되는 결말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고만 말씀드릴게요.”
이 연출은 “배우의 마음을 따라가는 여정에서 모두가 ‘나는 나답게 살기 위해 이렇게 뜨거워 본 적이 있었나’라고 되물을 시간이 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8월 3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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