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준기 산업에디터] “평판을 쌓는 데는 20년이 걸리지만, 잃는 데는 5분이면 족하다”는 워런 버핏의 수십년전 경고는 마치 총파업 카드까지 꺼내들며 천문학적 성과급을 요구하는 삼성전자 노조를 정면 겨냥한 것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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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23일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앞에서 삼성전자 노조 투쟁 결의대회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반도체 공장은 무슨 과자 공장이 아니다. 이 산업에서 생산 차질이 갖는 무게는 가공할 만하다. 2018년 평택 공장 정전으로 단 28분 가동이 멈춘 당시 손실 규모만 500억원에 달한 게 이를 방증한다. 이미 JP모건은 총파업과 성과급 확대 요구가 현실화될 경우 연간 영업이익 감소 규모를 최대 43조원으로 봤다. 파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공장 가동이 흔들리면 고객 신뢰에 금이 가고, 이는 계약 축소와 공급망 재편으로 이어진다. 단 한 번의 그릇된 선택이 삼성뿐 아니라 국가 경제에까지 치명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산업을 통해 수차례 목도한 바 있다.
물론 노조의 정당한 보상 요구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다. 그러나 AI 시대 글로벌 경쟁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공급망 신뢰까지 흔드는 방식이어선 곤란하다. 글로벌 반도체 경쟁은 이미 국가대항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미국은 보조금과 관세로 공급망을 자국 중심으로 재편하고, 중국은 막대한 자금으로 반도체 자립 속도를 끌어올리고 있다. 지난달 29일 열린 이데일리 넥스트테크포럼이 던진 메시지 역시 AI 시대 반도체 경쟁력의 핵심은 결국 속도와 실행력이었다.
‘나쁜 표준’ 남을 가능성 경계해야
그동안 재계에선 ‘삼성이 하면 표준이 된다’는 말이 정설처럼 통했다. 삼성이 내놓는 제도와 관행, 조직문화의 변화가 곧 국내 산업 전반의 기준으로 확산된다는 것이다. 노조 역시 이 무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노조의 선택과 행동은 단순한 사내 이슈를 넘어, 기업사회가 노동과 성과를 바라보는 방식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움직임은 그 기대와 정반대 방향으로 흐른다. DS(반도체)부문 사내게시판에서 확산된 ‘기부금 약정제도 취소’ 릴레이는 대표적 사례다. 임직원이 취약계층을 위해 매월 일정 금액을 후원하면 회사가 동일 금액을 매칭해 지원하는 사회공헌활동인데, 일부 조합원들이 회사의 매칭 비용을 문제 삼으며 취소 인증과 동참을 독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과급 확대를 강하게 요구하면서도 사회적 책임에는 인색한 모습이라는 비판이 뒤따른 이유다. 사업부문 간 갈등도 문제다. 성과 배분 기준을 둘러싼 불만이 공개적으로 표출되면서, 갈등은 노사 대립을 넘어 ‘노노갈등’으로 번졌다. 노조가 가치나 이념이 아닌, 각각의 이해관계에 치중한다면 향후 노조는 더 쪼개질 것이고, 결국 전체 조합원 권익은 약화될 게 뻔하다. 삼성이 하면 표준이 된다는 공식이 여전히 유효하다면, 지금 벌어지는 장면들 역시 산업현장의 ‘나쁜 표준’으로 남을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
고통 통해 더 단단한 경쟁력 갖추길
삼성 노사갈등은 다시 중대 분기점에 섰다. 노조가 예고한 총파업을 약 2주 앞두고 11일부터 이틀간 성과급 지급방식을 두고 협상을 재개하는 것이다. 사실상 마지막 조정 국면이다. 레이 달리오는 “고통에 성찰이 더해지면 진보가 된다”고 했다. 찢어지는 고통을 겪어야 근육이 생기듯, 노사 모두 이번 위기를 성찰과 실행으로 바꾼다면 갈등은 되레 더 단단한 경쟁력으로 돌아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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