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뷰티 마피아가 되겠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한 벤처캐피털(VC)이 한국 화장품 스타트업을 키우겠다며 내건 슬로건이다. 과거 실리콘밸리에서 파괴적인 혁신을 주도한 페이팔 출신 창업가 집단인 ‘페이팔 마피아’처럼 K뷰티 창업 생태계를 키우겠다는 비전이다. 글로벌 자본 시장에서 K뷰티 몸값이 천정부지다. K뷰티 브랜드의 기업가치는 상각전영업이익(EBITDA) 대비 최대 20배 이상으로, 소비재 평균(9.8배)은 물론 글로벌 뷰티 브랜드 평균(14.9배)도 훌쩍 웃돈다. K뷰티의 성장성과 해외 확장성에 베팅하는 것이다.
'K뷰티 마피아'를 아십니까
과거 K뷰티는 제조업 모델이었다. 우수한 제조 기술을 무기로 명동 면세점과 대형 총판, 이른바 ‘보따리상’에 의존해 중국 시장을 공략했다. 대규모 자본과 백화점 입점, 지상파 광고가 성공 공식이었다. 지금은 완전히 다르다. 국내에선 이름도 생소한 ‘닥터멜락신’ ‘이퀄베리’ 같은 브랜드가 대표적인 예다. 이들의 해외 매출 비중은 각각 97%, 100%에 이른다. 국내 소비자에겐 낯설지만 미국 아마존과 틱톡숍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며 글로벌 Z세대를 사로잡았다.
이들이 히트한 배경엔 상상력과 창의력, 콘텐츠의 힘이 있다. 제품 개발 단계부터 상상력이 투영된다. 피부에 붙이면 투명하게 변하는 마스크팩, 거품 제형의 콜라겐 세럼, 쫀득한 떡 같은 클렌징솝 등 ‘숏폼’에 최적화한 제품이 많다. 15~30초짜리 영상으로 효과를 시각화해 SNS에 띄우고, 인플루언서에게 시제품을 뿌리는 ‘시딩(seeding)’을 통해 화제를 만든다. 이를 발판 삼아 아마존과 틱톡숍에서 제품을 판매하고, 그 판매 데이터를 무기로 얼타뷰티, 타깃, 월마트 등 글로벌 오프라인 유통망에 진입한다. 이 과정에서 아마존의 검색 알고리즘과 틱톡숍의 트래픽 구조까지 정밀하게 계산해 반영한다. K뷰티가 제조업을 넘어 글로벌에서 가장 혁신적인 콘텐츠 커머스 모델로 진화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콘텐츠 빌더들의 반란
오늘날 K뷰티를 이끄는 주역의 면면도 이전과는 다르다. 에이피알, 달바글로벌, 뷰티셀렉션 등 ‘라이징 스타’를 키워낸 1980~1990년대생 창업가는 앱 서비스 기획자, 개발자, 벤처투자자 출신이다. 플랫폼 창업과 투자 경험을 갖춘 이들은 화장품산업에 플랫폼 기업의 문법을 이식한다. 데이터와 온라인 퍼포먼스 마케팅을 동물적으로 이해하는 이들은 스스로를 제조업자가 아니라 ‘콘텐츠 빌더’로 정의한다.
K뷰티는 이제 제품을 넘어 ‘매장’이라는 포맷까지 수출한다. 실리콘투의 모이다, 오프뷰티, 올리브영이 잇달아 해외에 점포를 낸다. e커머스보다 비용과 리스크가 훨씬 큰 오프라인 투자는 K뷰티 트렌드가 오래갈 것이라는 확신 없이는 불가능한 베팅이다. 월마트가 “더 이상 얼타로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된다”며 메디큐브 매대를 자랑하는 장면은 상징적이다.
인공지능(AI) 혁명의 파고 속에서 청년들의 기회가 사라지고 있다는 우려가 많다. 하지만 꿈꾸는 청년들에게는 끝내 길이 열릴 것이다. 화장품은 제조업이라는 고정관념을 깬 한국의 젊은 창업가들이 콘텐츠 커머스라는 새로운 문법으로 글로벌 자본시장을 매료시키고 있듯이. K뷰티 마피아의 거침없는 질주를 응원한다.

5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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