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가 초등학교 5학년이고, 예산은 최대 10억원 입니다. 대치동 전입을 고민하는데, 어디가 좋을까요?"
서울 대치동에서 한 공인중개사가 손님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는 질문. 한국경제미디어그룹 특별취재팀이 집필한 <대치동 이야기> 속 동네 풍경이다. 자녀의 부족한 실력을 채워줄 수 있는 학원이 밀집한 학군지를 찾아 이주를 감행하는 부모들 덕분에 대치동 공인중개사는 '교육 컨설턴트' 역할까지 한다는 일화가 흥미롭다.
대치동은 '대한민국 사교육'을 지칭하는 보통 명사로 쓰인지 오래다. 경기도 광주군에서 1963년 서울시에 편입된 대치동은 1970년대 중반만해도 어느 농촌과 별다를 바 없는 시골 마을이었다. 그러나 1970년 후반부터 대단위 아파트가 잇달아 들어섰고 고교 진학 방식 및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도입되면서 달라졌다. 이름난 중고교들이 강북에서 강남으로 옮겨왔고 대치동과 인근 지역은 8학군(거주지 근거로 학교를 배정하는 서울 시내 9개 학군지 가운데 8번째 학군을 의미)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딱 20년만에 대치동은 풍부한 교육 수요층을 바탕으로 학원이 밀집하면서 전국구 사교육 타운이 됐다.
책 <대치동 이야기>는 기자들이 사교육 생태계의 현장을 기록한 땀냄새 가득한 책이다. 기자들은 만 3세 아이들의 영어유치원부터 고3에 이르는 대입까지 현재 대치동 사교육의 로드맵을 보여준다. 그리고 부동산 중개업자들을 만나 대치동과 그 주변의 지형도를 분석한다. 책을 읽다보면 대치동에는 은하수의 별마냥 수많은 학원이 있지만 학부모는 고액의 학원비와 주거 비용을 우선 감당해야하고 학생은 원하는 학원에 가려면 레벨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 '대치동'에 들어간다는 의미는 여러가지 욕망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기자들이 쓴 책답게 속도감 있는 현장 묘사가 돋보인다. 저자들은 사교육의 폐해, 공교육의 붕괴와 같은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21세기 대치동의 실태를 전하고, 사교육 매커니즘이 이곳에서 어떻게 끊임없이 작동하는 지 취재했다.
책에 따르면 대치동의 생태계를 이루는 요소는 대치동 부근 학생 규모의 증가, 높은 교육열의 학부모, 특수한 수요도 수용할 수 있는 학원가의 커버리지, 일타 강사들의 유입 등이다. 현재 학부모들은 학생들의 입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정보를 모으는데 능한데, 그들 자신 역시 8학군 명문고 졸업 세대이기에 대치동 인프라를 소위 문화 자본으로 물려주려는 습성이 강하다. 특수한 수요를 커버한다는 것은 내 자녀에 맞춤형 학원이 가능하단 얘기다. 대치동에는 해외에서 오래 살다 한국 소재 대학에 진학 할 때 입시 정보를 얻고, 맞춤형 수험을 준비하도록 하는 '리터니' 대상 학원, 또는 명문미대 진학을 위한 학원 등이 존재한다.
또 한국의 입시를 준비했지만 해외 대학 진학을 위해 입시 전략을 바꾸는 아이들을 위한 학원도 대치동에는 있다. 책에 따르면 대치동에는 입시를 위한 수많은 학원이 있고 목표와 목적에 따라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는게 가장 큰 장점으로 읽힌다. 2021년 한국교육통계연감에 따르면 강남구 등록 사설학원 수는 서울시 전체 사립학원 수의 17%, 그 중 대치동에만 절반 가량 몰려 있다. 경쟁력 없는 학원은 살아남을 수 없고, 니치 마켓도 경쟁력만 있다면 탄력을 받아 성업할 수 있는 구조다.
경제신문의 기자들이 집필한 책답게 공신력 있는 통계와 대치동 관련 부동산 정보도 실려 대치동 입성을 염두한 학부모들에게 실질적 도움을 준다. 자투리 시간없이 학원가로 이동하기 좋은 거주지, 초등학교를 단지내에 품고 있는 아파트, 같은 아파트더라도 동마다 달라지는 진학 학교 등 학부모들이 가지는 당장의 궁금증이 대다수 해결될 수 있을 것 같다.
책에는 대학 합격을 위해 밤낮없이 무거운 가방을 들고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학생들, 자식 교육을 위해 비싼 학원비와 주거비를 감당하는 학부모 모두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무게를 감당하며 입시대첩을 치르고 있다는 내용이 잘 정리됐지만, 공부라는 것이 결국 입시에 국한하는 일이어야만 하는지 불편함과 물음표가 남는다. 실용적이지만 그만큼 생각이 많아지는 책.
이해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