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이 글로벌 기업 연구소 역할… 부산대 20년 ‘산학협력의 힘’

6 days ago 5

亞 최초 롤스로이스 UTC 운영
항공기 가스터빈용 열교환기 연구… 롤스로이스와 원천기술 개발 협력
장기 프로젝트로 연구 지속성 높여… 인턴-취업 등 실무 인력 교류 활발
LG전자 등 국내 기업 협력도 확대

부산대 롤스로이스 대학기술센터(UTC) 연구실에서 연구원들이 풍동을 활용한 비행기 날개 실험을 하고 있다. 부산대는 2006년 아시아권 최초로 롤스로이스 UTC를 설립해 항공기 가스터빈용 차세대 열교환기 분야 연구를 20년째 이어가고 있다. 부산=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부산대 롤스로이스 대학기술센터(UTC) 연구실에서 연구원들이 풍동을 활용한 비행기 날개 실험을 하고 있다. 부산대는 2006년 아시아권 최초로 롤스로이스 UTC를 설립해 항공기 가스터빈용 차세대 열교환기 분야 연구를 20년째 이어가고 있다. 부산=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최근 부산 금정구 부산대의 롤스로이스 대학기술센터(UTC) 연구실에서는 연구원들이 풍동(風洞·인공적인 바람을 발생시키는 터널 형태의 실험 장치)을 활용한 비행기 날개 실험에 한창이었다. 풍동 안에 초속 20m 수준의 바람을 일으켜 날개 형상에 따라 쿨링 에어(냉각 공기)가 비행기 엔진 안 가스터빈으로 얼마나 균일하게 들어가는지 판단하는 작업이다. 공기가 고르게 흐르지 않으면 엔진 효율과 안정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부산대는 2006년부터 아시아권 최초로 롤스로이스 UTC를 설립해 항공기 가스터빈용 차세대 열교환기 분야 연구를 20년째 이어가고 있다. 세계 항공 엔진 시장 ‘글로벌 빅3’ 중 하나인 영국 롤스로이스와의 오랜 협력 덕분이다. 주력 연구 분야는 가스터빈 열관리로, 롤스로이스와 원천기술 개발에서 협력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가 국정과제로 ‘서울대 10개 만들기’(성장엔진 연계 지역인재 양성 방안)를 내걸고 기업 주도 인재 양성에 나선 가운데, 부산대의 롤스로이스 UTC가 지역대학 산학협력의 선례로 주목받고 있다. 롤스로이스 UTC는 기업의 장기 기술 로드맵에 맞춰 대학이 원천기술을 개발하고 대학 우수 연구진은 기술 개발에 참여한다. 기업이 미래 산업에 필요한 기술 방향을 제시하고 대학은 원천기술 연구와 실무 인력 양성을 담당한다.

● 대학이 기업의 ‘원천기술 연구소’ 역할

부산대 롤스로이스 대학기술센터(UTC) 설립을 주도한 하만영 부산대 기계공학부 교수(왼쪽)와 민준기 센터장이 센터 개소 당시 롤스로이스에서 받은 항공 터빈 블레이드 옆에 서 있다.

부산대 롤스로이스 대학기술센터(UTC) 설립을 주도한 하만영 부산대 기계공학부 교수(왼쪽)와 민준기 센터장이 센터 개소 당시 롤스로이스에서 받은 항공 터빈 블레이드 옆에 서 있다.
롤스로이스는 지난해 기준 전 세계 29곳에서 UTC를 운영하고 있으며, 거점마다 서로 다른 핵심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부산대의 경우 미래 친환경·고효율 항공 엔진 개발에 필요한 열관리와 열교환기가 주력 분야다. 항공기 엔진 발열 제어, 비행 연료 냉각 문제 해결 등을 연구한다.

센터 설립을 주도한 하만영 부산대 기계공학부 교수는 “기업이 모든 연구를 직접 하는 대신 필요한 기술과 관련 연구를 전 세계에서 가장 잘하는 대학을 선정해 ‘사내 연구소’처럼 활용하는 것”이라며 “일종의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이라고 설명했다.

부산대 UTC에는 교수 20명과 박사후연구원(포닥·Postdoc)을 포함해 7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UTC의 목적은 롤스로이스가 필요로 하는 핵심 기술을 공급하는 동시에 실무에 필요한 박사급 인력을 양성하고 이후 채용까지 연결하는 것이다.

롤스로이스 UTC와 국내 산학협력의 가장 큰 차이점은 ‘지속성’이다. 보통 국내 산학협력의 경우 기업이 교수 개인에게 단기 과제를 맡기고, 결과물이 나오면 협력이 종료되는 경우가 많다. 과제 기간이 1, 2년 정도로 짧아 연구 성과가 기업의 실제 기술 개발로 이어지지 않을 때가 많고 대학 역시 기술을 축적해 심화 연구 과제로 진행하기 어렵다. 반면 롤스로이스 UTC는 특정 대학에 특정 기술 연구를 맡기고 10년이나 20년 단위로 기술 역량을 쌓는 구조다. 대학은 기술성숙도(TRL)를 기준으로 1∼3단계에 해당하는 기초연구를 담당한다. 주로 미래 엔진에 필요한 장기 원천기술을 개발한다. 장기 원천기술에서 제품 개발 가능성이 확인되면 4∼6단계(상용화 과정)부터 기업 내부 연구진을 투입해 본격적인 부품 개발에 나선다. 대학은 기업이 당장 제품화하기 어려운 기술의 가치를 검증하고, 기업은 그 결과를 바탕으로 실제 엔진 개발 로드맵에 반영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기업과 대학은 실시간 소통하며 연구 성과를 공유하고 실무 기술 개발 과정에 어떻게 적용할지 논의한다. 부산대 역시 롤스로이스와 2주마다 회의를 열고, 필요하면 월별·분기별·연간 회의를 진행해 연구 방향을 정하고 있다. 민준기 부산대 롤스로이스 UTC 센터장은 “연구 시작 6개월 뒤 중간발표에서 서로 원하는 방향이 달랐다는 것을 알게 되는 기존 방식보다 훨씬 효율적”이라며 “실시간 소통해 기업과 대학이 서로 이해하고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과 대학 간 실무 인력 교류도 활발하다. 현재 일시 중단됐지만 2018년까지는 부산대 학부생들이 매년 인턴사원으로 영국 롤스로이스 현지 사업장이나 전 세계 공장에 파견됐다. 2012년에는 UTC 소속 졸업생 2명이 본사에 취업하기도 했다.

2018년 학부생 신분으로 미국 인디애나주 인디애나폴리스공장에서 인턴사원으로 근무했던 김상민 박사는 “부산대 UTC에서 당시 진행하고 있던 연구가 어떻게 실무에서 적용되는지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며 “적용 원리를 알게 돼 다시 대학에 돌아와서도 상용화 과정까지 고려해 다각도로 연구할 수 있었다”고 했다.

● 국내 산학협력까지 UTC 모델 확대

부산대는 이 같은 경험을 국내 기업과의 산학협력에도 적용하고 있다. 부산대는 롤스로이스 UTC 모델을 참고해 2016년부터 LG전자와 연구개발(R&D) 거점인 미래기술연구센터(UFRC)를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 부산대는 열관리 분야를 연구해 왔고, 최근에는 데이터센터 냉각 등으로 연구 범위를 넓히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도 2024년 부산대에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허브’ 1호를 설립했다. 이곳은 대학과 기업을 합쳐 약 100명 규모로 운영되며, 롤스로이스 UTC와 유사한 방식으로 격주에 한 번 기업과 대학이 소통하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부산대를 시작으로 글로벌 R&D센터 10곳을 구상 중이다.

교육부가 올 4월 발표한 ‘성장엔진 연계 지역인재 양성 방안’ 역시 지역별 산학협력 강화 및 거점 연구대학 육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정부는 지역 전략산업과 연계해 거점 국립대를 지역의 교육·연구 거점으로 육성하고, 학부 교육부터 대학원 연구와 취업까지 이어지는 구조를 마련할 계획이다. 지역에서 교육받은 학생이 지역 기업에 입사하고 지역에 정주하려면 대학 교육과 기업 수요가 연결돼야 하기 때문이다.

핵심 방안 중 하나는 기업 주도형 브랜드 단과대이다. 기업 연구원이 대학 교원을 겸직해 강의하거나 연구를 지도하고, 학생 선발과 교육 과정 운영에도 기업이 함께 참여하는 방식이다. 학부부터 기업 연구 과제에 참여해 산업 현장에 바로 투입 가능한 인재를 육성하겠다는 구상이다. 최교진 교육부 장관은 “지방대학 육성을 통해 수도권과 비수도권 대학 간 격차 해소를 넘어, 지역의 인재가 국가 성장의 핵심 원동력이 되는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부산=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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