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대행 시정연설 아수라장
국회의장, 韓출마론 겨냥해
"대통령·대행 권한 같다는건
헌법에 위배되는 발상" 직격
국힘 "편향된 발언" 거센 항의
권성동·박찬대 고성·삿대질
민주당 "12조짜리 대권 놀음"
◆ 2025 대선 레이스 ◆
"여기는 당신이 올 자리가 아니다."
한창민 사회민주당 대표가 24일 국회 시정연설을 시작하는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를 향해 이렇게 외쳤다. 입장할 때는 '매국협상 중단'이란 손팻말을 든 야당 의원들이 입구에 줄지어 섰다. 지도부가 '침묵 대응'을 요청했지만 더불어민주당 좌석에서도 "사퇴하라"란 고성이 터져 나오긴 마찬가지였다.
1979년 최규하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 이후 46년 만에 열린 권한대행의 시정연설은 그렇게 아수라장이 됐다. 가까스로 20분에 걸쳐 추가경정예산에 대한 설명을 마친 한 권한대행의 수난은 끝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국회의장 차례였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한말씀 드리겠다"고 돌발 발언을 시작했다. 우 의장은 "헌법재판소 판결에서도 이미 확인됐듯이 대통령과 권한대행의 권한이 동일하다는 것은 헌법에 위배되는 발상"이라며 "권한대행께서는 대정부질문 국회 출석 답변과 상설특검 추천 의뢰 등 해야 할 일과 헌법재판관 지명 등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잘 구별하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국가적으로 매우 엄중한 상황으로 12·3 비상계엄 여파가 여전하다"며 "파면 당한 대통령을 보좌한 국무총리로서, 권한대행으로서 책임을 크게 느껴도 부족한 때"라고 면전에서 한 권한대행을 비판했다.
우 의장의 발언은 표면적으로 대통령 몫의 헌법재판관을 지명한 것을 겨낭한 듯 보이지만 사실상 대선 출마 가능성을 견제하는 발언으로 풀이됐다. 한 권한대행은 좌석에서 불쾌한 표정을 지었지만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반면 국민의힘 의원석에서는 "편향된 발언"이라며 항의가 쏟아졌다. 권성동 원내대표 등 국민의힘 의원들은 단상으로 올라가 우 의장에게 거세게 항의했다. 민주당에서는 박찬대 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 등이 올라와 국민의힘 의원들과 고성과 삿대질을 주고받았다. 곤욕을 치른 한 권한대행은 이날 본회의장을 빠져나올 때 대선 출마 여부를 묻는 취재진에게 "고생 많으셨다"고만 답했다.
총리실에 따르면 한 권한대행은 이날 국회에 도착한 뒤에야 국회사무처 측에서 우 의장의 발언 계획을 전달받았다. 총리실 관계자는 "한 권한대행이 우 의장이 뭔가 할 말을 준비했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감내해야지'라며 각오하고 들어간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총리실 일각에서는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국회의장이 행정부를 대표하는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지나친 발언을 한 게 아니냐는 불만도 제기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한 권한대행은 이날 시정연설을 통해 12조2000억원 규모의 정부 추경안 집행 계획을 발표했다. △미국발 통상 충격 대응 △인공지능(AI)·반도체 등 첨단산업 육성 △산불 피해 복구와 민생 지원 등 3대 분야에 중점 대응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대미 관세 협상도 언급했다. 그는 "오늘 밤 미국 워싱턴DC에서 '한미 2+2 통상협의'가 열린다"며 "국익이 최우선이라는 원칙하에 무역 균형, 조선, 액화천연가스(LNG) 3대 분야에서 상호 윈윈할 수 있는 합의를 모색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시정연설을 두고 "12조원짜리 대권 놀음"이라고 거칠게 비판했다. 박찬대 원내대표는 이날 본회의를 마친 뒤 "미사여구만 있고 실질적으로 민생과 경제 회복에 도움이 될 만한 수준이 아니다"며 "민생 관련 예산은 4조6000억원 정도에 불과해 도탄에 빠져 있는 경제를 살릴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앞서 민주당 정책조정회의에서 "한 권한대행이 대선에 출마한다면 이는 제2차 내란이자 윤석열을 부활시키려는 두 번째 친위 쿠데타와 다름없을 것"이라고 공세 수위를 높이기도 했다.
노종면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일주일 전 대정부질문에는 일방적으로 불출석을 통보한 한 권한대행이 오늘은 국회를 찾아 추경 필요성을 호소했다"며 "이러니 이번 추경을 앞두고 한 권한대행의 12조원짜리 대권 놀음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홍혜진 기자 / 안정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