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의 노선을 따르지 않으면…" 트럼프의 로펌 군기잡기 제동 건 美 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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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2025.05.04 16:34 수정2025.05.04 16:34

워싱턴DC에 있는 대형 로펌 커클랜드앤드엘리스 사무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워싱턴DC에 있는 대형 로펌 커클랜드앤드엘리스 사무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정적을 도와줬다는 이유로 법률회사(로펌)을 상대로 연방정부 청사 출입을 못하게 하거나 연방정부와의 계약 취소를 추진하는 것은 위법하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로펌 업계를 상대로 군기잡기에 나섰던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은 집행이 중단됐다.

워싱턴DC 연방지방법원의 베릴 하웰 판사는 2일(현지시간) 로펌 퍼킨스코이가 행정명령을 중단해 달라고 요청한 주장을 받아들이는 판결을 내렸다. 102페이지에 달하는 판결문에서 하웰 판사는 트럼프 대통령이 “변호사들이 ‘당의 노선’을 따르지 않으면” 처벌받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냈다고 판단했다.

퍼킨스코이는 2016년 대선에서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캠프를 대리한 로펌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퍼킨스코이와 자신의 러시아 유착 스캔들을 조사했던 특검팀 소속 검사를 고용한 윌머헤일 등 여러 로펌을 거명한 행정명령에 잇달아 서명했다. 연방정부와 이 로펌들 간의 계약을 재검토해서 종료할 방법을 강구하고, 로펌 소속 변호사들의 보안허가를 취소하며, 공무원들과 만날 수 없게 하는 등의 내용이다.

하웰 판사는 이 행정명령이 표현의 자유 등에 관한 수정헌법 1조와 법 앞의 평등을 명시한 수정헌법 5조 등을 위배했다고 판시했다. 그는 이 명령이 퍼킨스코이와 그 직원들을 낙인찍고 처벌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적인 불만과 보복의 수단”이 되었다면서 사법 시스템의 원칙에 대한 “전례 없는 공격”이라고 비판했다. “개인적 원한을 해결하기 위해 싫어하는 기업이나 개인을 표적으로 삼아 처벌적 정부 조치를 취하는 것은 미국 정부나 미국 대통령의 권한의 합법적인 사용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퍼킨스코이의 소송전에는 500개 로펌이 지난 4일 실명으로 ‘우리도 이 판결에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고려해 달라’는 내용의 연판장을 제출하는 등 미국 법조계 전역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이 판결은 제너앤드블록,윌머커틀러, 서스먼고드프리 등 다른 로펌들이 제기한 유사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그러나 행정명령의 효력이 중단된다 하더라도 로펌업계 전체는 트럼프 대통령의 위협에 상당부분 굴복한 상태다. 스캐든압스, 커클랜드앤드엘리스, 폴 와이스 등 최소 9곳에 달하는 대형 로펌들은 대부분 트럼프 정부에 상당한 규모의 공익 법률지원(프로보노)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약속했다. 트럼프 정부는 현재 다양성 정책 중단, 각종 계약에 대한 일방적 해지, 연방공무원 대량 해고 등으로 수많은 소송을 당한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핵심 로펌들이 ‘정부의 편에 서겠다’고 서약함으로써 분쟁을 피한 것이다.

"당의 노선을 따르지 않으면..." 트럼프의 로펌 군기잡기 제동 건 美 법원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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