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창원지법 ‘민생전담부’ 시범운영
전세금 사기 등 생계형 사건 신속 처리
접수에서 선고까지 223일→91일 확 줄어
화해·조정도 전국 평균보다 16%P 많아
“운영 현황 점검뒤 설치 확대 모색할 것”
“피고(집주인)가 법률적으로 다투겠다 해놓고서 법정에 나오지 않아 오늘 종결하고 선고하겠습니다. 주문. 피고는 원고(임차인)에 1억5000만 원과 연 5%의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8일 오전 11시 20분 서울법원종합청사 동관 560호 법정. 서울중앙지법 민사23단독 최유나 부장판사가 이와 같이 원고 승소 판결하자 임차인 박모 씨(32)와 삼촌 이모 씨(64)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전세 계약이 끝난 지 2년여 만에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것. 소송을 제기한 지 76일 만에 나온 판결이었다.
서울중앙지법과 창원지법은 이와 같은 ‘민생사건 적시처리부’(민생 전담부)를 2월 23일 법관 정기 인사일부터 각각 4개, 1개씩 설치해 시범 운영하고 있다. 민생 전담부는 서민들이 당사자가 되는 생활밀착형 사건을 전담해 처리하는 재판부다. 민생과 관련된 사건은 신속하게 처리해 서민들이 빠르게 생업에 전념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로 꾸려졌다. 박 씨 사건에선 소액 사건이나 임대차 보증금 반환 사건에 대해 변론종결 직후 바로 선고할 수 있는 ‘즉일선고’ 제도가 활용됐다.
● 1년 반 동안 못 받은 보증금…소송 낸지 2달여 만에 결론박 씨는 2022년 6월 직장 근처인 서울 관악구 봉천동 한 아파트 원룸에 전세를 얻었다. 보증금 1억5000만 원에 월세 5만 원, 관리비 8만 원 수준이었다. 이후 인천으로 직장을 옮기게 되자 계약 종료를 두 달 앞둔 2024년 4월 “만기일에 맞춰 집을 나가겠다”며 보증금 반환을 요청했다.
4월 집주인이 이자 보전마저 중단하자 박 씨는 결국 원룸을 떠났으며, 같은 달 23일 보증금 반환 소송을 제기했다. 박 씨의 소송을 도운 삼촌 이 씨는 “사회 초년생 여성을 상대로 사기를 친 것”이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집주인은 “억울한 점이 있다. 법정에서 다투겠다”는 의견서를 내면서도 구체적인 의견은 밝히지 않았다.
이달 8일 첫 변론기일이 열렸지만 집주인은 법정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최 부장판사는 “구체적인 내용이 없는 형식적인 답변서만 제출하고 변론기일에 출석하지 않아 원고가 주장하는 사실을 모두 자백한 것으로 본다”며 박 씨 손을 들어줬다.
● 전세보증금 등 민생 사건, 전국 평균보다 132일 빠르게 선고
민생 전담부에서는 매달 이같은 사건 80여 건을 접수해 처리하고 있다. 박 씨와 같은 임대차 보증금 반환이나 전세사기 및 중개사고 사건, 개별 소상공인이 원고인 물품 대금 사건, 개별 임대인이 계약 종료 후에도 방에서 나가지 않는 임차인에게 제기하는 건물 인도 사건 등을 대상으로 한다. 개인파산 절차가 끝난 이후 채권자로부터 “내 빚이 누락됐다”며 추가 독촉을 받을 경우 빚을 갚을 의무가 없음을 확인하는 면책확인 및 청구이의 사건도 전담부가 맡는다.민생 전담부는 신속한 사건 처리를 위해 소장 송달일로부터 5주일 이내에 첫 변론기일을 지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판사가 적극적으로 질문하고 입증을 촉구하는 등 재판을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진행한다. 임대차 보증금 반환 사건에서는 다른 민사 사건에서 많이 활용되지 않는 즉일선고 제도를 적극 활용하기도 한다. 박 씨는 “변호사가 최소 몇 번의 변론을 거쳐야 한다고 해서 이렇게 빨리 끝날 줄은 예상하지 못했는데 첫 변론에 바로 선고를 받게 돼 기쁘다”고 밝혔다.


법원행정처는 올해 민생 전담부 운영 경과를 지켜보면서 연말까지 운영 현황, 통계 등을 지속해서 점검할 예정이다. 이후 그 결과를 각급 법원에 공유해 민생 전담부 설치를 원하는 다른 법원에서도 참고할 수 있게 돕는다는 계획이다.
여근호 기자 yeor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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