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창재 교보생명 회장과 재무적투자자(FI)인 어피니티컨소시엄 사이에 벌어진 ‘풋옵션(특정 가격에 주식을 팔 권리) 분쟁’과 관련해 2차 국제중재재판의 결론이 나왔다.
19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국제상업회의소(ICC)는 교보생명 FI가 제기한 청구를 인용했다. ICC는 신 회장이 외부 자문기관 등을 통해 풋옵션 가격 재산정에 즉각 나서야 한다고 판정했다. ICC는 이를 어길 경우 하루에 20만달러에 달하는 간접 강제금도 부과하도록 결정했다.
신 회장은 중재재판소 결정에 따라 즉시 외부 기관으로부터 풋옵션 가격을 정해 투자자의 주식을 되사줘야 한다. 교보생명 시장 가치에 따라 신 회장의 지분 매입 규모는 1조~2조원대로 예상된다.
신창재, 경영권 방어 비상…"새 투자자 유치"
ICC "외부에서 풋옵션 가격 정해, 투자자들 주식 되사줘야" 판결
어피니티·IMM프라이빗에쿼티·EQT파트너스·싱가포르투자청 등 재무적투자자(FI)들은 지난 2012년 교보생명 지분 24%를 1조2000억원(주당 24만5000원)에 인수했다. 당시 주주 간 계약에는 2015년 9월까지 교보생명이 기업공개(IPO)를 하지 못하면 신 회장을 상대로 풋옵션을 행사해 지분을 되팔 수 있는 조항이 있었지만, 신 회장은 계약 자체가 무효라고 주장해왔다.
앞서 국제상업회의소(ICC)는 2019년 1차 판정에서 신 회장이 어피너티 등과 맺은 풋옵션 계약을 이행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단 어피너티 측이 주장한 가격(주당 40만9000원) 그대로 이행할 의무는 없고, 상호 합의에 따라 재산정한 가격을 지불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이를 위해선 신 회장이 별도의 회계법인을 선정하고 교보생명의 공정시장가격(FMV)을 산출해 어피너티 측의 FMV와 평균해야 한다. 하지만 신 회장 측은 이 같은 절차 진행을 거부해 왔다. 이에 따라 FI들은 2022년 2월 2차 중재 판정을 통해 가격산정 절차를 강제해달라고 요청했다.
신 회장은 이번 ICC 판정에 따라 풋옵션 의무를 회피하긴 어려워졌다. 어피너티 측은 판정 수령 직후 국내 법원에서 이행을 강제하고, 계약 위반 및 의무 이행의 부당한 지연으로 입은 손해 등에 대해서도 배상을 청구할 예정이다. 국제중재재판 판정은 국내 법원의 확정 판결과 같은 효력이 있지만 집행력을 가지려면 중재법에 따라 국내 법원의 승인과 집행 결정이 필요하다. 미이행시 중재 결정문의 도달 시점부터 지연에 따른 연 6%대 이자도 부과된다.
신 회장은 최대 2조원에 달하는 지분 매입 대금을 개인이 직접 마련해야 한다. 현재 자신이 보유 중인 교보생명 지분 36.7%과 FI 지분을 합쳐 특수목적법인(SPC)에 넘기고, 이 법인이 보유한 교보생명 지분 약 60~70%를 담보로 새 투자자들로부터 대출을 받는 방안이 거론된다. 대출 받은 자금으로 어피니티 측 지분을 사들이고, 이후 교보생명을 상장하는 과정에서 구주 일부를 팔아 담보 대출을 갚으면 풋옵션을 받아주면서도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신 회장이 판결 이전부터 주요 금융지주사들과 이미 투자유치 논의를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향후 교보생명의 시장가치를 둘러싸고 어피니티 측과 신 회장 측의 치열한 싸움이 예상된다. 신 회장 측은 풋옵션 가격이 어피니티의 초기 투자가격인 24만5000원을 초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안진회계법인은 교보생명 주식의 공정시장가치를 1주당 41만원으로 산정했는데, 이는 어피니티 측이 2018년 10월 풋옵션을 행사할 당시 교보생명의 IPO 공모 예정가인 18만~21만원(크레디트스위스)과 큰 차이가 있다는 주장이다. 또 지난해 8월 교보생명이 금융지주사 전환 작업의 일환으로 우리사주조합과 골드만삭스 등으로부터 자사주 2%를 매입할 당시 교보생명의 주당 가격은 19만8000원이었다.
차준호/박종관/하지은/조미현 기자 cha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