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부부 ‘동반 치매’ 4년새 86% 늘었다

8 hours ago 3

“배우자 치매땐 발병 확률 2배
돌봐줄 사람 마땅찮아 더 불안”
老老케어 뒷받침 맞춤지원 필요

“주방이 어디 있어?”

이모 씨(76)는 지난해 4월 남편 나모 씨(81)의 이 한마디에 가슴이 철렁했다. 평소처럼 밥상을 주방으로 옮겨 달라고 한 참이었는데, 남편이 주방을 찾질 못했다. 나 씨는 결국 알츠하이머성 치매로 진단됐다. 이 사실에 더욱 절망한 이유는 이 씨도 4년 전 경증 치매 진단을 받았기 때문이다.

“남편도 치매라는 사실에 삶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저도 갈수록 기억이 흐려지는데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6월 19일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에서 만난 이 씨는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했다.

국민 20%가 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면서 부부가 모두 치매에 걸린 경우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30일 동아일보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을 통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한 가족 내 2번째 치매 환자임을 뜻하는 ‘동반 치매’ 환자는 2019년 2857명에서 2023년 5327명으로 늘었다. 4년 새 약 86%가 증가한 것이다. 대다수는 노부부가 함께 치매에 걸린 경우다.

이들은 양쪽 모두 점차 기억을 잃어가면서 집에 불을 낼 뻔하거나 혼자서 병원을 찾아가는 것도 어려워하는 등 일상에 지장을 겪고 있다. 취재팀이 총 세 쌍의 치매 노인 부부와 이들을 돌보는 자녀들을 만나 심층 인터뷰해 보니 “돌봐줄 수 있는 사람도 마땅치 않아 일상 자체가 고통”이라고 토로했다.

부부 중 한 명이 치매일 경우 상대방의 치매 발병 확률이 2배가 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는 만큼 국가 지원 확대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노(老老)케어’를 뒷받침해 줄 수 있는 맞춤형 지원체계 강화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치매 돌보다 신체활동 부족-우울증… 동반 치매 확률 높아져

[늘어나는 부부 ‘동반 치매’] 부부 ‘동반 치매’ 증가세
치매 부부, 소통 줄고 다툼 잦아져
생계 위협받고 사회적 고립 위험성
기존 지원과 완전히 다른 접근 필요

30일 오후 안무춘 씨(오른쪽)가 아내 김옥태 씨를 부축해 함께 동네를 산책하고 있다. 충남 서산시 해미면에 사는 안 씨 부부는 각각 2014년, 2015년 치매 진단을 받았다. 서산=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30일 오후 안무춘 씨(오른쪽)가 아내 김옥태 씨를 부축해 함께 동네를 산책하고 있다. 충남 서산시 해미면에 사는 안 씨 부부는 각각 2014년, 2015년 치매 진단을 받았다. 서산=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노부부의 일상이 달라진 건 10년 전부터였다. 처음 시작은 남편 안무춘 씨(82)였다. 평소 자주 쓰던 한자와 한글이 떠오르지 않거나 물건을 어디에 뒀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2014년 12월 병원을 찾은 안 씨는 경증 치매 진단을 받았다. 그런데 이듬해 아내인 김옥태 씨(82)도 치매에 걸렸다. 남편의 말과 집 안 물건 위치를 기억하지 못했다. 당시를 회상하며 안 씨는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함께 살며 아찔한 상황도 있었다. 김 씨는 남편과 점심을 먹기 위해 국을 끓이고 있었다. 그러다 솥을 불에 올려뒀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채 집 밖으로 나섰다. 수십 분이 지났을까, 다행히 남편이 시커멓게 탄 솥을 발견한 덕에 큰불을 막을 수 있었다. 그날 이후 노부부가 사는 집엔 ‘가스자동차단기’가 생겼다.

● “치매 탓에 부부 싸움도 잦아져”

6월 18일 오전 11시경 충남 서산시 해미면의 한 가정집에서 만난 안 씨 부부는 “명석했던 전과 달리 생각과 행동이 느려진 것 같다”고 말했다. 안 씨는 인터뷰 중에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 듯 머리를 양손으로 감싸거나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더라’라고 되뇌었다.

갑자기 찾아온 치매는 노부부의 생계를 위협하기도 했다. 지난해 4월 나모 씨(81)는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았다. 알츠하이머병은 가장 대표적인 치매 유형이다. 아내 이모 씨(76)는 2021년 3월 경증 치매에 걸렸다. 서산시에서 수십 년째 소를 키우며 농사를 짓던 나 씨 부부는 치매 진단 이후 키우는 소의 마릿수를 점차 줄였다. 60마리였던 소가 이젠 7마리가 됐다. 이 씨는 “(남편도 나도) 정신이 없으니 제대로 키울 수가 없어서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자녀들은 노부부의 잦은 싸움을 걱정했다. 남편 나 씨가 종종 억지를 부리는 탓에 아내 이 씨가 짜증을 내고 싸우게 된다는 것이다. 가령 물건의 개수를 우기거나, 없던 물건을 ‘있었다’고 우기는 식이라고 했다. 이 씨는 “이틀에 하루는 다투게 되니까 힘들다”면서도 “혹시 다른 사람과 다투지 않을까 걱정돼 (남편을) 따라다닌다”고 말했다.

● 부부 중 한 명 치매 시 동반 치매 위험 높아져

이러한 ‘부부 동반 치매’가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부부 중 한 명이 치매일 경우 의학적으로 다른 배우자가 동시 치매에 걸릴 확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022년 김기웅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팀은 60세 이상의 한국인 부부 784쌍을 대상으로 11가지 치매 위험 인자를 2년마다 추적 조사했다. 그 결과 치매 진단을 받은 배우자를 둔 노인이 그렇지 않은 노인에 비해 치매에 걸릴 확률이 약 2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치매 배우자를 돌보는 노인의 경우 신체 활동이 부족해지고 우울증을 겪게 되면서 치매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실제 동반 치매 노부부와 그들의 자녀들은 동거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었다. 지난달 19일 서울 강남에서 만난 이 씨는 “남편에게 ‘병든 당신을 치매 걸린 내가 데리고 살지 못한다. 더 심해지면 병원에 보낼 테니 알아서 해라’라고 한 적 있다”며 “사는 게 사는 거 같지 않다”고 했다. 동반 치매 부모와 살고 있는 윤명숙 씨(70)는 “엄마의 치매 진단 이후 부부간 소통이 어려워지다 보니 아빠도 치매를 앓게 된 것 같다”고 토로했다. 윤 씨의 어머니는 약 2년 2개월 전 중증 치매에, 어머니와 함께 지내던 아버지는 지난해 말부터 경증 치매에 걸렸다.

● 노노(老老) 케어 가능한 맞춤형 제도 필요

전문가들은 치매에 걸린 노인들끼리 함께 살아가는 환경이 늘어나는 만큼 맞춤형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는 부부 동반 치매 가구를 돌봄 사각지대 우선 대상자로 보고 ‘맞춤형 사례 관리’를 제공하고 있다.

김기웅 교수는 “부부 치매는 돌봄 서비스의 양이 2배가 필요한 게 아니라,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동반 치매 부부는) 요양보험 등 지원 체계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맞춤형 설계가 필요하다”고 했다. 박건우 고려대 안암병원 신경과 교수는 “특히 시골 등 고령자가 몰린 지역에서는 지자체가 직접 지원 대상자를 발굴하는 등 찾아가는 서비스를 지금보다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치매 배우자를 둔 노인을 위한 지원도 확대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김희진 한양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치매 남편이나 아내를 배우자가 직접 돌보는 과정에서 사회적 고립감이 커지면서, 배우자는 치매 고위험군에 속하게 된다”며 “치매 배우자를 둔 노인의 우울감과 사회적 고립감을 해소하기 위한 맞춤형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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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서산=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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