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석주가 1998 프랑스 월드컵 멕시코와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 라몬 라미레스에게 백태클을 해 레드카드를 받은 뒤 아쉬워하고 있다. 동아일보DB
한국과 멕시코가 맞붙은 1998 프랑스 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 한국은 전반 27분 하석주(58·현 아주대 감독)가 왼발 프리킥 골로 0-0 균형을 깨뜨렸다. 한국 축구 역사상 첫 월드컵 선제골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3분 뒤 하석주가 ‘멕시코의 엔진’ 라몬 라미레스(57)에게 백태클을 해 퇴장당했기 때문이다. 수적 열세에 놓인 한국은 1-3으로 역전패했다.
하석주가 1998 프랑스 월드컵 멕시코와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 라몬 라미레스와 몸싸움을 하고 있다. 동아일보DB
14일 멕시코 과달라하라에서 멕시코시티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하석주에게 백태클을 당했던 라미레스를 만났다. 라미레스는 “28년 전 한국전은 힘든 경기였다. 하지만 한국 선수가 퇴장당하면서 경기 흐름이 바뀌었고 결국 우리가 이겼기 때문에 (내게) 백태클을 한 선수에 대한 악감정은 남아 있지 않다”고 말했다.
2026 북중미(미국, 멕시코, 캐나다) 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홍명보 감독(57)은 프랑스 월드컵 멕시코전에서 풀타임을 소화했다. 라미레스는 “한국 수비진을 이끈 홍명보와 대결했던 기억도 난다. 그는 정말 좋은 수비수였다”고 돌아봤다.
14일 멕시코시티 베니토 후아레스 국제공항에서 만난 라몬 라미레스. 멕시코시티=한종호 기자 hjh@donga.com
선수 시절 미드필더였던 라미레스는 왼발 킥이 뛰어나 ‘축복받은 왼발’로 불렸다. 그는 1994 미국 월드컵과 1998 프랑스 월드컵 출전을 포함해 통산 A매치 119경기에서 14골 7도움을 기록한 멕시코 축구 레전드다. 1996~1997시즌에는 멕시코 클럽팀 과달라하라를 자국 리그 정상에 올려놓기도 했다. 선수 생활을 마감한 지 16년이 지났지만, 라미레스의 인기는 여전했다. 그가 멕시코시티 공항 입국장을 나서자 그를 기다리고 있던 팬들이 다가와 사인을 요청하고 함께 셀카를 찍었다.
라몬 라미레스가 14일 멕시코시티 베니토 후아레스 국제공항에서 팬이 가져온 유니폼에 사인을 해주고 있다. 멕시코시티=한종호 기자 hjh@donga.com
한국과 멕시코는 19일 멕시코 과달라하라 스타디움에서 북중미 월드컵 A조 조별리그 2차전을 치른다. 한국은 12일 1차전에서 체코를 2-1로 꺾었고, 대회 공동 개최국 멕시코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을 2-0으로 제압했다. 한국과 체코의 경기를 봤다는 라미레스는 “한국 선수들은 기동력이 좋고 기술이 뛰어나다. 멕시코가 1-0이나 2-0으로 이겼으면 좋겠지만 매우 어려운 경기가 될 것 같다”고 내다봤다. 그는 “한국은 1998년에도 강했고, 지금도 좋은 팀이다. 한국과 멕시코가 함께 32강에 진출했으면 좋겠다”면서 “멕시코는 이번 대회에서 8강, 한국은 16강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한다”고 덧붙였다.
라미레스는 한국 대표팀 선수 중 손흥민(34·LA FC)이 가장 위협적이라고 했다. 손흥민은 2018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2차전 멕시코전(1-2·한국 패)에서 강력한 중거리 슛으로 골망을 흔든 바 있다. 라미레스는 “손흥민은 세계 최고 수준의 공격수다. 그가 이번에는 멕시코를 상대로 골을 넣지 못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손흥민에겐 다음 경기(3차전 남아공전)에서 득점할 기회가 있지 않나”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홍명보호’는 2차전에서 멕시코 팬들의 일방적 응원을 이겨내야 한다. 한국과 멕시코의 경기를 과달라하라 스타디움에서 직관할 예정인 라미레스는 “멕시코 팬들의 엄청난 응원 열기에 주눅 들면 한국엔 쉽지 않은 경기가 될 것”이라면서 “한국은 많이 뛰면서 공을 최대한 오랫동안 소유하기 위해 노력 노력해야 할 것이다”라고 조언했다.
14일 멕시코시티 베니토 후아레스 국제공항에서 만난 라몬 라미레스. 멕시코시티=한종호 기자 hjh@donga.com
요즘도 가끔 공을 찬다는 그는 여전히 현역 시절처럼 날카로운 왼발 크로스를 올릴 수 있느냐는 질문에 “내 나이가 벌써 50이 넘었다”며 손사래를 쳤다. 잠시 생각에 잠긴 그는 이내 웃으며 말을 바꿨다. “가능할 것 같다. 아마도(I gu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