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내게 韓문화는 글로벌 콘텐츠 아닌 원초적 감정에 가까워”

3 hours ago 3

日각본가 사카모토 서면 인터뷰
韓번역 연극 ‘또 여기인가’ 막 내려
스타작가 신뢰에 매회 만석 이뤄
“타인 완전한 이해는 영원히 불가능…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더 흥미로워”


7일 서울 종로구 연우소극장에서 연극 하나가 막을 내렸다. 10일 동안 진행된 작은 공연이었지만, 매회 만석을 이뤘던 작품의 제목은 ‘또 여기인가’. 이름도 생소한 이 초연작을, 관객 상당수는 작가에 대한 신뢰로 찾아왔다. 일본을 대표하는 각본가 사카모토 유지(坂元裕二·59·사진)가 썼기 때문이다.

사카모토 작가는 2023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괴물’로 칸 국제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으며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일본에선 이미 스타 작가였다. 신드롬급 인기를 얻었던 드라마 ‘도쿄 러브 스토리’(1991년)로 데뷔와 동시에 주목을 받았다. 한국에서도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2004년), ‘마더’(2010년),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2021년) 등 그가 쓴 드라마와 영화의 인기가 높다.

사실 그는 오래전부터 희곡을 써온 극작가이기도 하다. 이번 공연은 올 1월 출판사 ‘알마’가 희곡 ‘또 여기인가’를 출간하며 추진됐다. 작가의 팬인 안지미 알마 대표가 2018년 현지에서 공연된 작품의 희곡 번역을 제안했다고 한다. 최근 동아일보와 서면으로 만난 사카모토 작가는 “희곡은 일본에서도 쉽게 출판되는 게 아니라서 제안을 받고 놀랐다”면서 “해외 작품 번역은 그 나라 문화의 성숙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한국 문화에 대한 경외도 커졌다”고 말했다.

7일 폐막한 연극 ‘또 여기인가’. 여러 유명 드라마와 영화의 대본을 쓴 사카모토 유지 작가가 희곡을 썼다. 2018년 일본 도쿄에서 초연됐던 작품으로, 올해 한국에서의 희곡 출판을 계기로 국내 초연됐다. 일본에서도 올해 재공연될 예정이다. 프로젝트 내친김에 제공 ⓒ권혁

7일 폐막한 연극 ‘또 여기인가’. 여러 유명 드라마와 영화의 대본을 쓴 사카모토 유지 작가가 희곡을 썼다. 2018년 일본 도쿄에서 초연됐던 작품으로, 올해 한국에서의 희곡 출판을 계기로 국내 초연됐다. 일본에서도 올해 재공연될 예정이다. 프로젝트 내친김에 제공 ⓒ권혁
‘또 여기인가’는 오래된 주유소를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은 주유소를 운영하는 젊은 점장 지카스기. 이복형 네모리가 찾아와 아버지의 의료사고 소식을 알리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쉬운 작품은 아니다. 사건보다 대화를 통해 인물들의 과거와 비밀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곳곳에 쉽게 이해되지 않는 행동과 말이 반복되기도 해, 관객은 꽤 오랜 시간 인물을 이해하지 못한 채 대화를 따라가야 한다. 영화 ‘괴물’ 등에서도 사용됐던 작법이다.

사카모토 작가는 이에 대해 “시작하자마자 등장인물 상이 설명되는 유형의 작품을 좋아하지 않으며,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물론 작품의 진입장벽이 높아진다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현실과 아주 다른 방식으로 작품을 쓰고 싶지 않습니다. 현실에서 우리는 타인을 서서히 알아갑니다. 만나자마자 그 사람을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건 결코 그 사람을 알게 된 게 아니죠. 그리고 타인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하다는 여지도 필요하고요. 저는 창작에 있어서 ‘이해하는 것’보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더 흥미로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7일 폐막한 연극 ‘또 여기인가’. 여러 유명 드라마와 영화의 대본을 쓴 사카모토 유지 작가가 희곡을 썼다. 2018년 일본 도쿄에서 초연됐던 작품으로, 올해 한국에서의 희곡 출판을 계기로 국내 초연됐다. 일본에서도 올해 재공연될 예정이다. 프로젝트 내친김에 제공 ⓒ권혁

7일 폐막한 연극 ‘또 여기인가’. 여러 유명 드라마와 영화의 대본을 쓴 사카모토 유지 작가가 희곡을 썼다. 2018년 일본 도쿄에서 초연됐던 작품으로, 올해 한국에서의 희곡 출판을 계기로 국내 초연됐다. 일본에서도 올해 재공연될 예정이다. 프로젝트 내친김에 제공 ⓒ권혁
작가는 1990년대부터 낭독극과 단편 연극 대본을 여러 차례 썼다. ‘또 여기인가’는 그의 첫 장편 희곡으로, 오랜 친구의 의뢰를 받아 만들었다고 한다. 그는 “공연 연출가이기도 한 친구는 20대 때부터 술을 마실 때마다 ‘나를 위한 대본 한 편을 써달라’고 했다”며 “항상 귀찮게 여겼지만, 어느 날 밤 기분이 좋을 때 수락해 버리고 말았다”고 했다. 답은 장난스러웠지만, 사카모토 작가는 이미 희곡을 쓰는 걸 “평생의 업”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영상 작업을 주로 해오던 그에게 관객을 직접 만날 수 있다는 점은 연극의 큰 매력이었다. 이번에도 방한해 공연에 참석하려 했지만 새 원고 작업 때문에 오진 못했다고. 그는 “최근 벌어진 일 중 가장 아쉬웠다”며 “조만간 한국에 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사카모토 작가는 한국에 대한 애정이 높은 편이다. 일단 홍상수 감독의 열렬한 팬이다. 또 여러 차례 한국과의 협업에 관심을 보여왔고, 올 4월엔 어머니와 한국을 여행하기도 했다. 한국과의 인연을 묻자 그는 옛날 이야기를 꺼냈다.

“일곱 살 무렵 가족과 해수욕을 갔을 때예요. 휴게소에 들른 아버지가 실수로 한국 음악 테이프를 사신 거죠. 지금으로 치면 트로트라고 할까요? 설상가상 심한 교통 정체가 있었고, 저희는 6시간이 넘도록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한국어 노래를 반복해서 들어야 했습니다. 어린아이였던 저는 그게 무척 불만이었지만, 지금도 그 시간을 잊을 수 없어요. 낯선 언어로 불리는, 감정이 듬뿍 담긴 노래. 지금도 제게 한국 문화는 글로벌한 어떤 것이 아니라, 원초적인 감정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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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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