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까지 카피해 온라인 판매”… 국내기업 5년간 피해액 10조 추산
특허청 “인력 고령화에 확충 안돼”… 심사 기간 9년새 3배 늘어 13개월
“인력 확충-절차 간소화 시급” 지적
“중국 업체들이 저희 상품을 도용해서 쿠팡에 그대로 팔고 있어요.”경기 포천시에서 15년 넘게 생활용품 편집숍을 운영하고 있는 황세미 씨(37)는 18일 이렇게 하소연했다. 황 씨는 지난해 1월 16일 자신이 고안한 새로운 디자인의 화장품 정리대와 휴지 걸이 등을 만들어 판매하기 위해 상표를 출원했다. 황 씨는 이 상품들을 중국 공장에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주문했는데, 상표권 심사가 지연돼 약 1년 5개월 만인 올 6월 19일에야 상표가 등록됐다.
그사이 문제가 발생했다. 중국의 OEM 공장이 황 씨의 주문 제품과 똑같은 물건들을 대량으로 만들어 중국 업체들에 팔아넘겼고, 이 업체들은 황 씨가 만든 브랜드 로고를 카피해 똑같이 생긴 복제품을 온라인에서 팔기 시작했다. 황 씨는 “지금도 온라인에 우리 상품을 카피한 중국 제품들이 버젓이 판매되고 있다”라며 “대기업과 달리 영세 사업자들은 여건상 새 상품을 출시하기 전에 상표 등록을 미리 끝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 상표 심사하는 사이 中복제품 나와최근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등 중국 전자상거래 플랫폼에서 우리나라 업체 상표를 도용한 복제품들이 활개를 치는 가운데 특허청의 더딘 상표권 심사 처리가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상표 등록이 늦어지면 중국산 복제품들로부터 우리 업체를 보호할 길이 막막하기 때문이다.상표 등록은 사업자가 자신의 상품을 출원해 타인의 상품과 구분하는 일종의 ‘특허권’이다. 상표권이 등록돼야 복제품 등으로 이를 침해당했을 때 상대방에게 손해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경기 군포시에서 침구류 업체를 운영하는 박모 씨(40)가 2022년 10월 14일 신청한 상표는 약 1년 7개월 만인 올 5월 28일에 등록됐다. 박 씨는 “상표권이 나오기 전에는 쿠팡이나 지마켓 같은 오픈마켓에 제품 등록도 못 했다”며 “상표 심사가 늦어져 입은 손해가 1억 원 정도 된다”고 말했다. 영상 제작 중소기업의 김모 대표(41)는 “상표권 등록 과정에서 경쟁 업체가 이의 신청을 걸어 결국 3년이 지나고 나서야 상표가 등록됐다”라며 “일부 업체는 상대방의 상표권 등록을 늦추기 위해 이의 신청 제도를 악용한다”고 말했다.
● 처리 기간 4.7→13.1개월로 늘어실제 특허청의 상표심사 처리 기간은 2015년 평균 4.7개월에서 올해 9월 기준 13.1개월로 9년 새 3배가량으로 늘었다. 특허청이 지난달 16일 공개한 ‘상표심사처리기간 지연의 경제적 피해액 추정’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2년까지 5년 새 상표 심사 처리 지연으로 인한 경제적 피해는 약 10조 원으로 추산됐다. 여기에는 중국산 복제품 출시로 인한 우리 업체들의 피해 등이 담겨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특허청은 이로 인해 5만4812개의 일자리 손실도 입었다고 분석했다.
특허청 피해 사례 조사를 보면 한 기업 대표는 “회사 상표를 내건 상품을 시장에 안정적으로 팔아야 매출, 이익도 꾸준히 나는데 지금은 상표 심사 처리 기간이 너무 길기 때문에 중소기업의 경우 사업을 안정시키는 데 어려움이 크다”고 지적했다. 다른 기업 대표는 “상표 심사 처리가 늦어지는 탓에 제품에 상표 표기도 못 하고, 조기 출시 및 연계 상품 판매도 무산됐다”고 밝혔다.
특허청은 인력 부족 탓에 상표 심사가 늦어질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특허청에 따르면 상표 심사관이 1인당 처리하는 건수는 2020년 1473건에서 지난해 2059건으로 증가했다. 올해 처리 건수는 9월 기준 1839건으로 연말까지 2000건가량 될 것으로 보인다.전문가들은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선 인력 확충 등 대책이 뒤따라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민흥 와이즈업 특허법률사무소 변리사는 “상표와 브랜드 환경이 이전과 다르게 급변하고 중요성이 커지는데 특허청 심사 인력 규모는 그대로고 고령화됐다”며 “심사 인력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심사 처리 속도를 줄이기 위해 관련 규칙을 간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손준영 기자 hand@donga.com
김상윤 인턴기자 성균관대 사학과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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