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먹어주던 사람[고수리의 관계의 재발견]

1 week ago 15

고수리 에세이스트 우리 집 아이들이 참 귀여울 때가 있다. 눈물이 날라치면 내게로 쪼르르 달려와 얼굴을 내민다. 그럼 나는 뜨끈뜨끈해진 얼굴을 감싸고 눈물을 먹어준다. “짜구와, 짜구와.” 희한한 말을 중얼거리면서. 이건 할머니와 엄마가 대대로 가르쳐준 우는 아이 달래는 법이었다. 내가 어릴 적, 그러니까 우리 할머니 허리춤에도 머리통이 안 닿았을 때 내가 울면 할머니가 끌어안고 눈물을 먹어주었다. 나는 입을 꾹 다물고 소리 죽여 우는 애였다던데, 할머니는 그런 걸 슬퍼했단다. 애기는 으앙으앙 울어야지, 애답잖게 요망져서는 백 살 먹은 노인네처럼 운다고. 그게 가여워서 “울지 마라 너는 울지 마라” 달래주던 게 할머니에겐 눈물을 먹어주는 일이었다. 서러운 눈에서 방울방울 흘러내리던 눈물을 호록호록 대신 삼켜주면서 “짜구와, 짜구와” 하고 중얼거리던 할머니를 기억한다. 배시시 웃으며 나를 달래던 자글자글한 얼굴이 내게는 한낮에 뜬 해 같았다. 쨍쨍하고 따뜻했다. 남의 눈물을 먹어본 적 있는지. 눈물 한 방울도 제법 짭조름하다. 내 눈물보다도 어쩐지 짜고 가엽고 애틋하게 느껴진다. 아이들 눈물을 먹어줄 때마다 짭조름한 눈물이 혀끝에 스미면 나는 검푸른 바다를 떠올린다. 날마다 바다에 들어가던 할머니, 할머니의 숨비소리를 기다리며 고스란히 파도를 맞았던 엄마. 짠맛이라면 지긋지긋했을 두 사람의 바다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짜다’는 말을 반드시 ‘짜굽따’라고 억척스레 말하던 여자들이 나를 키웠다. 산다는 건 파도에 휩쓸리는 일이란다. 밀려갔다가 밀려왔다가 살다 보면 그래도 살아진다고 속도 없이 웃던 여자들이 나를 돌봐주었다. 다 자란 나는 그게 고맙고 미안해서, 또 짠하고 속상해서 때때로 울 것 같은 마음이 된다. 여름에는 고향 바다에 다녀왔다. 할머니가 물질하던 바다에서 아이들과 튜브를 타고 놀았다. 파도가 제법 크게 쳤다. 처얼썩 큰 파도가 몰려올수록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즐거워했다. 한참을 놀다 나와 물 밖에서 젖은 옷을 말리고 있을 때였다. 멀찍이 앉아서 지켜만 보던 엄마가 불쑥 튜브를 들고 일어섰다. 그러더니 “딸아, 파도 타러 가자”고 했다. 얼른 놀러 나가고 싶은 어린애 같은 얼굴로. 엄마랑 둘이서 바다에 들어갔다. 철썩 처얼썩 파도가 쳤다. 파도에 몸을 맡긴 채 우리는 밀려갔다가 밀려왔다가 바다를 두둥실 떠다녔다. 그러다 별안간 커다란 파도가 우리를 집어삼켰다. 바닷물을 뒤집어쓰고 콜록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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