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정부가 전체 예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의무지출’을 올해 손보겠다고 나섰지만, 조기 대선 국면에 사실상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빠르게 불어나는 의무지출을 손보지 않으면 정부가 미래를 위해 투입해야 할 예산의 비중을 줄이거나 나랏빚을 늘릴 수밖에 없다는 우려 역시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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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문승용 기자) |
총지출 절반 넘는 의무지출…정책 의지 폭 좁혀
10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정부 예산안 총지출 673조 3000억원 중 54.2%인 365조원이 의무지출이다. 의무지출은 국민·공무원·사학·군인 연금 등 4대 공적연금과 건강보험, 지방교부세, 지방교육재정교부금 등 법에 지급 의무가 명시돼 있어 정부가 마음대로 줄일 수 없는 예산이다. 전체 예산의 절반 이상이 의무지출인 셈이다.
이 같은 의무지출은 3년 뒤인 2028년 433조원으로 불어날 전망이다. 전체 예산에서 의무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내년 55.6% △2027년 56.5% △2028년 57.3%로 빠르게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면서 연금·의료를 비롯한 복지지출이 급증한 데다 국채 이자도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의무지출이 늘어날수록 정부가 정책의지를 발휘할 수 있는 예산은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정부는 2020∼2060년 장기재정전망에서 ‘최악 시나리오’ 땐 2060년 의무지출 비중이 80%에 육박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정부의 정책대응 없이 현재의 인구 감소와 성장률 하락 추세가 유지되는 경우 2060년 총지출은 1648조원, 이 중 의무지출은 78.8%(1297조9000억원)에 달하게 된다는 추산이다
의무지출을 손보지 않고, 재량지출도 늘리면 그만큼 나랏빚이 늘어나게 된다. 지난해 국가채무는 1175조2000억원으로 전년도 대비 48조5000억원(4.3%) 증가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기 전인 2021년도 결산과 비교하면 3년 사이 정부 빚은 204조 5000억원 늘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46.1%에 달한다.
정부, 의무지출 점검 나설 계획…조기 대선 ‘변수’
이런 이유로 기재부는 내년도 예산안 편성 과정에서 ‘의무지출 점검’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인구구조 등 여건 변화와 효과성, 전달체계 중복성 등을 고려해 의무지출 구조를 개편할 계획이다. 각 부처 등이 의무지출 예산을 요구할 때 중장기 소요를 추계하고 필요한 경우 효율화 방안도 담도록 할 방침이다.
문제는 의무지출은 법 개정이 필요한 사항으로 국회 등의 협조가 필수라는 점이다. 조기 대선을 앞두고 반발이 큰 의무지출 조정에 국회가 나서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가장 대표적으로 손봐야 할 대상으로 꼽히는 건 지방교육재정 교부금이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초·중·고등학교 교육 등에 사용된다. 내국세의 20.7%를 재원으로 한다.
교육교부금은 저출생으로 학령인구가 감소함에 따라 조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실제 지난 2022년에는 교육교부금 일부를 대학교에서 쓸 수 있도록 ‘고등·평생교육 지원 특별회계’를 신설했는데, 교육계의 강한 반발에 교부금 전입 비율을 애초 정부안 대비 절반 수준에 그친 바 있다.
대선 직후 본격적으로 예산 편성 작업에 착수하는데, 이 과정에서 의무지출 구조조정이 뒷전으로 밀릴 가능성도 크다. 각 부처는 매년 5월 말까지 예산요구안을 기재부에 제출한다. 기재부는 이를 모아 6월부터 본격적으로 예산 편성 작업에 착수한다. 새 정부가 막 출범한 상황에서 정책 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주요 사업 및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에 초점을 맞출 가능성이 크다. 상대적으로 의무지출 점검은 뒤로 밀릴 수 있다는 게 중론이다.
박노욱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재정구조의 경직성은 정부지출 규모와 구조를 변화시키기 어렵게 하는 제약조건이 되기 때문에, 본격적인 관리체계가 필요하다”면서도 “의무지출은 받는 국민들이 일종의 권리로 인식이 되다 보니, 정치적인 저항이 강할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