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향해 몸을 살짝 기울인 젊은 연인이 있다. 정면에서 바라보면 다정한 모습이다. 서로에게 무어라 속삭이고 있을까. 달콤한 말일까, 아니면 염려 섞인 말일까. 그렇게 상상하던 찰나, 그들은 내게 뒷모습을 들켜버렸다. 앞에선 보이지 않던 손짓들이 그들의 등 뒤에 얽혀 있었다. 잡아 세우는 남자와 벗어나려는 여자. 혹은 막아서는 남자와 나아가려는 여자.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를 관계의 또 다른 장면이 등 뒤에 있었다.
뒷모습은 생의 살코기 같다. 가장 붉고, 가장 연약한 부위. 가지런히 정돈된 앞모습에 ‘보여주려는 힘’이 있다면, 뒷모습에는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보이는’, 혹은 ‘들켜버리는 힘’이 있다. 인간의 급소는 실은 뒷모습에 있다는 생각이다. 시인 이규리는 ‘뒷모습’이란 시에서 “뒷모습은 남의 것”이라 말했다. 뒷모습은 분명 내 것이지만, 정작 나는 보지 못하는 삶의 또 다른 단면이기에 그렇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론 뮤익’ 전시를 보며, 나는 마치 가장 들키고 싶지 않았던 나의 뒷모습을 들켜버린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가 빚은 인물상들은 모두 각자의 뒷모습을 갖고 있다. 단지 입체적인 조각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조각들은 마치 자신이 통제하지 못한 삶의 단면 하나를 등에 달고 있는 듯하다. 골똘한 생각에 잠긴 인물의 얼굴은 이성의 지배를 받는 듯하지만, 그 뒷모습은 다르다. 삶의 무게와 허무, 긴장을 이고 있는 몸. 생생한 삶의 단면 하나가 그곳에 있다.
론 뮤익의 대표작 ‘마스크Ⅱ’의 뒷면은 텅 비어 있다. 작가 자신의 얼굴을 본뜬 이 조각은 정면에서는 눈을 감고 깊은 잠에 빠진 듯한 남자의 얼굴이다. 살짝 벌어진 입술이 그런 인상을 더한다. 그러나 그 얼굴의 뒤는 아무것도 없다. 뒤통수가 없는 납작한 얼굴. 문득 생각한다. 내 얼굴의 뒷면도 그렇게 텅 비어 있는 건 아닐까. 어쩌면 얼굴에 관해 가장 들키기 싫은 진실은 이것인지 모른다. 타인에게 내보이는 낯짝의 이면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
‘나뭇가지를 든 여인’과 ‘치킨/맨’은 또 어떤가. 제 몸보다 큰 나뭇가지를 이고 선 여인의 등에는 삶의 구김살이 깊게 드리워져 있다. 식탁 위, 자신을 노려보는 닭과 눈싸움을 벌이는 노인의 등에는 팽팽한 긴장이 감돈다. 굽은 등으로 경계를 늦추지 않기 위해 곤두세운 근육들. 이들의 뒷모습을 지배하는 건 다름 아닌 안간힘이다. 버텨내는 힘, 짊어지는 힘, 벗어나려는 힘, 붙드는 힘. 삶이라는 일순간의 압력에 저항하는 가장 인간적인 자세.
인간이 타인에게 가장 들키고 싶지 않은 진실이란 실은 누구나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사실 아닐까. 그렇기에 우리 모두가 뒷모습을 갖고 있다는 건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누구나 들키고 싶지 않은 붉은 살코기 한 점을 등에 매단 채 살아가니까. “기름 냄새 피울 저 쓸쓸한 부위는 나에게도 있”으니까. 누군가에게 내 뒷모습이 들켜도 혹은 내가 누군가의 뒤를 봐버려도 괜찮다. 우리는 모두 가장 연약한 단면으로 서로를 마주할 수 있으니 말이다.
“누군가 내 뒷모습 본다면 역시 분홍색으로 읽을 것이다” |
― 시인 이규리의 시 ‘뒷모습’ 중 |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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