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로 받은 샤넬백, 세금 내야할까? [고인선의 택스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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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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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전(前) 영부인이 다이아몬드 목걸이, 샤넬백 등을 '뇌물'로 받은 사실이 밝혀져 국민들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물건으로 받았든, 현금으로 받았든 뇌물을 받았다면 재산이 늘어난 것인데, 뇌물에 대해서도 세금을 내야 할까?

답은 '그렇다'이다. 뇌물뿐 아니라 절도, 횡령, 사기 등 범죄로 얻은 모든 불법 소득에도 세금이 부과된다. 범죄 수익에 세금을 매긴다는 게 역설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우리 세법의 기본 원칙은 명확하다. 소득의 합법성 여부와 관계없이 경제적 이득이 발생하면 과세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합법이든 불법이든, 소득은 소득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일관되게 이 원칙을 지지해왔다. 현실적으로 이득을 지배·관리하며 향유하고 있어 세금을 낼 능력, 즉 '담세력'이 있다면 과세 대상이라는 논리다. 만약 불법 소득에 과세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성실하게 땀 흘려 번 돈에는 세금을 물리고, 범죄로 손쉽게 챙긴 돈에는 세금을 안 물린다면 형평성에 어긋난다.

소득세법 역시 이를 명확히 규정한다. 과세 대상인 '기타소득'의 한 항목으로 '뇌물'을 명시하고 있다. 뇌물을 받으면 기타소득으로 분류돼 종합소득세 신고 및 납부 의무를 진다.

물론 실제로 뇌물을 받고 자진해서 세금 신고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 형사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뇌물 수수 사실이 드러난다. 이때는 본래 내야 했던 소득세는 물론, 무신고 및 부정행위에 대한 가산세까지 추가로 물어야 한다.

몰수당하면 세금도 돌려받을까

그렇다면 뇌물에 대한 세금을 납부한 뒤 형사재판에서 해당 뇌물이 국가에 몰수·추징됐다면 어떻게 될까. 이미 낸 세금을 돌려받을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가능하다. 우리 세법은 '후발적 경정청구' 제도를 두고 있다. 당초 신고나 결정 시점에는 없었던 사정(예: 법원 판결 등)이 나중에 발생해 과세표준 및 세액 산정 기초에 변동이 생긴 경우, 이를 근거로 세금 감액을 청구할 수 있는 제도다.

대법원은 수뢰, 알선수재, 배임수재 범행 등으로 얻은 뇌물 등 위법 소득에 대한 납세 의무가 일단 성립했더라도, 그 후 몰수·추징을 당했다면 위법 소득에 내재된 경제적 이익의 상실 가능성이 현실화된 것이라고 판단했다. 즉, 그 소득이 종국적으로 실현되지 않은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납세자는 몰수·추징을 사유로 후발적 경정청구를 통해 이미 낸 세금을 환급받을 수 있다.

이 판례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법원은 이미 국가가 뇌물을 몰수·추징해 납세자에게 과세 대상 소득이 남아있지 않다는 점을 중시했다.

모든 범죄 수익 반환이 환급 사유는 아니다

흥미로운 점은 모든 범죄 수익의 반환이 세금 환급 대상이 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뇌물과 달리 횡령이나 배임으로 얻은 소득을 피해자에게 반환하는 경우는 다르게 취급된다.

판례는 횡령·배임 소득을 피해자에게 반환하는 것은 이미 실현된 소득을 처분하는 행위일 뿐, 소득 자체가 소멸하는 게 아니라고 봤다. 따라서 후발적 경정청구를 통한 세금 환급이 불가능하다.

이는 뇌물과 횡령·배임의 본질적 차이에서 비롯된다. 뇌물은 형사벌 규정 자체에 몰수·추징이 예정돼 있고, 국가가 그 범죄 소득을 가져간다. 반면 횡령·배임액은 사적 관계에서 피해자에게 반환된다. 즉, 뇌물은 몰수·추징으로 국가에 이익이 귀속되지만, 횡령·배임액은 사적으로 반환된다는 차이가 판결의 갈림길이 됐다.

작은 뇌물, 큰 대가

필자가 검사, 행정공무원, 변호사로 일하며 접한 뇌물 사건들을 보면 뇌물 액수가 생각보다 크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뇌물을 주는 사람도 투자수익률(ROI)을 계산할 수밖에 없다. 자신이 얻을 이익과 리스크를 고려해 뇌물 액수를 책정하는 것이다.

인생을 바꾸지도 못할 적은 금액에 지금까지 쌓아온 것들을 버릴 필요가 있을까. 검은돈이라 할지라도 과세의 그물망을 피할 수는 없다.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조세의 기본 원칙은 소득의 원천이 합법적인지 여부를 가리지 않는다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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