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바구니 물가가 급등하고 경제 불확실성 커지면서 불황형 소비가 뚜렷해지고 있다. 병원비와 교육비 등을 제외한 대부분 업종에서 지출이 줄어들었다. 여행 업종의 전년 동기 대비 소비 감소율은 두 자릿수에 이르렀다.
13일 대체 데이터 플랫폼 한경에이셀(Aicel)에 따르면 59개 주요 생활업종 가운데 지난 3월 카드 결제 추정액이 작년 같은 기간보다 늘어난 업종은 27개였다. 증가 업종의 4분의 3 이상은 의료비와 교육비였다. 소아청소년과 카드 결제 추정액은 677억원으로 1년 전보다 48.5% 급증했고, 같은 기간 유아교육 업종 결제액은 2185억원으로 8.3% 늘어났다. 한경에이셀은 2000만 명 이상의 카드 회원 데이터를 기반으로 결제금액을 1주일 단위까지 추정할 수 있다.
필수 항목 외에는 지갑을 꼭 닫은 모습이 확연히 드러났다. 여행과 관련한 카드 결제액이 급감했다. 레드캡투어, 노랑풍선, 모두투어 등이 포함된 여행사 결제가 28.8% 줄었다. 문화생활 비용도 7.8% 감소했다. 가구 구입비 감소율은 11.3%였다. 여행과 문화생활이 줄면서 교통비도 16.7% 감소한 7065억원으로 나타났다. 여행과 외식 수요가 감소하자 교통비 지출이 덩달아 줄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진에어 등의 결제액 감소도 컸다. 교통비 지출액은 두 달 연속 감소세를 나타냈다.
의류 7%, 영화관 35% 소비 급감…가구매장도 '3월 성수기' 날려
59개 업종 카드결제 추정액 분석해보니
지난 3월 카드 결제액 데이터는 소비 위축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병원비와 교육비처럼 가장 마지막에 줄이는 항목을 제외하고 대부분 부문에서 소비가 감소했다. 업계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 충격까지 더해지면서 당분간 ‘방어적 소비’가 더욱 두드러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병원비·교육비에만 지갑 열어
13일 대체 데이터 플랫폼 한경에이셀(Aicel)에 따르면 3월 대학병원의 카드 결제 추정액은 1조42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5.0% 늘었다. 피부과(10.1%), 내과(9.4%) 등의 카드 결제 추정액도 많아졌다. 소아과는 48.5% 급증했다.
소아과뿐만이 아니다. 자녀를 위한 돈에도 아직 지갑이 열려 있다. 유아교육 카드 결제액은 1년 전보다 8.3% 늘어난 2185억원을 기록했다. 학원비 카드 결제액이 1조392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3% 증가했다. 사교육비 인상에도 학원을 계속 다니게 했다는 분석이다.
의료와 교육을 제외한 대부분 업종은 한겨울 같은 3월을 보냈다. 일단 집 밖을 나가는 일이 줄었다. 여행 업종의 카드 결제액은 전년 동기 대비 28.8% 급감해 59개 주요 생활 업종 가운데 낙폭이 가장 컸다. 하나투어(-4.5%), 모두투어(-7.5%), 노랑풍선(-19.6%), 레드캡투어(-43.4%) 등 여행사가 줄줄이 부진에 시달렸다. 항공사도 마찬가지였다. 대한항공(-9.1%), 아시아나항공(-24.8%), 진에어(-33.0%), 제주항공(-5.0%) 등이 외면받았다. 교통비 카드 결제액은 16.7% 감소한 7065억원에 그쳤다.
유흥(-6.7%), 백화점(-5.1%), 편의점(-4.1%), 마트(-4.0%), 한식(-3.9%) 등 대부분 소비 업종도 부진했다. 다만 음식료 카드 결제액은 0.28% 줄어드는 데 그쳤는데 외식 수요가 줄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당장 줄일 수 있는 외식을 하지 않고 집밥을 해먹으려는 수요가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영화관 결제액 35% 이상 줄어
가구와 가전제품 등도 찬바람을 맞았다. 현대리바트(-6.1%) 등을 포함한 가구 업종 카드 결제액은 전년 대비 11.3% 쪼그라들었다. 가전·전자 업종도 7.2% 감소했다. LG베스트샵과 삼성디지털프라자 가맹점의 3월 카드 결제 추정액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6.9%, 5.8% 줄었다. 3월은 결혼과 이사, 신제품 출시 등으로 실적이 호조를 보여야 하는 시기임에도 지난해보다 부진했다.
문화생활도 얼어붙었다. 스포츠·문화·레저 3월 카드 결제 추정액은 1조4972억원으로 전년 대비 7.8% 감소했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인 CGV와 메가박스 결제 추정액은 전년 대비 각각 37.1%, 35.0% 급감했다.
옷도 덜 샀다. 의복·의류 업종의 3월 카드 결제 추정액은 6312억원으로 전년 대비 7.6% 줄었다. 아웃도어 강자였던 디스커버리(-15.3%)와 스포츠 의류 강자인 나이키 온라인 직영몰(-21.3%) 등의 부진이 두드러졌다. 글로벌 골프 브랜드인 핑 의류를 비롯해 팬텀, 파리게이츠, 마스터바니에디션 등 골프웨어 브랜드를 운영하는 크리스에프앤씨의 결제액도 전년 대비 15% 감소했다.
유통업체들은 2분기에도 불황형 소비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대한상공회의소가 500개 소매유통업체를 대상으로 2분기 소매유통업 경기전망지수(RBSI)를 조사한 결과 1분기보다 2포인트 떨어진 75로 집계됐다. 이 지수가 100 이하면 다음 분기 경기가 지난 분기보다 악화할 것으로 본다는 의미다. 백화점과 대형마트의 경기전망지수가 나란히 85에서 73으로 떨어져 가장 큰 폭의 하락세를 나타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소비자가 미래 소득에 대한 불안을 느끼고 필수 소비만 하는 전형적 경기불황형 소비”라며 “내수 진작을 위한 정부와 민간의 적극적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