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노후 안전판인 퇴직연금 자금의 무게추가 원리금 보장형에서 실적 배당형 상품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퇴직연금 적립액이 사상 처음으로 500조원을 돌파한 가운데 상장지수펀드(ETF) 투자 규모는 2년 만에 5배 넘게 급증했다. 원금 보장 중심의 보수적 운용 패턴에서 벗어나 증시 상승 흐름을 연금 자산에 반영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일 금융감독원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5년 우리나라 퇴직연금 투자 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퇴직연금 적립액은 501조4000억원으로 전년(431조7000억원) 대비 16.1% 증가했다. 회사가 퇴직연금 운용 책임을 지는 확정급여(DB)형이 228조9000억원으로 45.7%를 차지했다.
근로자 개인이 알아서 운용하는 확정기여(DC)형 적립액은 141조6000억원으로 28.2%, 개인형 퇴직연금(IRP)이 130조9000억원으로 26.1%였다. 특히 IRP는 2023년 75조6000억원, 2024년 98조7000억원에서 지난해 130조원대로 매년 30% 수준의 증가율을 보이며 급성장했다.
퇴직연금은 근로자 퇴직금을 사전에 적립해 운용하다가 퇴직 시점에 연금 등으로 받는 상품이다. 연금을 받을 때까지는 운용 수익에 세금이 붙지 않고, 추가 적립금에 일정 비율만큼 세액공제 혜택도 적용된다. 이에 노후 대비를 위한 필수 상품으로 꼽히며 퇴직연금 가입자가 꾸준히 증가했다.
운용 방법으로 구분하면 원리금 보장형이 378조1000억원으로 75.4%를 차지했다. 원리금 보장형은 예금과 보험, 국채 등 원금이 보호되지만 기대 수익률이 낮은 종목에 투자하는 방식이다. 나머지 123조3000억원(24.6%)은 실적 배당형으로 운용됐다. 실적 배당형은 펀드와 회사채 등 원금을 보호받지 못하지만 기대 수익률이 높은 종목에 투자한다. 퇴직연금 적립액의 4분의 1 정도만 실적 배당형으로 운용되는 것이지만 2023년 당시 비율(12.8%)과 비교하면 실적 배당형 비율이 두 배 가까이로 올랐다.
실적 배당형 퇴직연금은 개별 주식 종목에 투자할 수는 없지만, ETF를 통해 증시를 추종할 수 있다. 퇴직연금 계좌를 통한 ETF 투자액은 지난해 말 기준 48조7000억원으로 2023년(9조원)과 비교해 5배 넘는 수준으로 불어났다. 실적 배당형으로 운용되는 퇴직연금 적립액의 39.6%가 ETF 투자로 몰린 것이다. 코스피 200을 추종하는 인덱스 ETF 투자액만 2024년 말 3400억원에서 지난해 말 1조4200억원으로 1년 새 4배 넘는 수준으로 증가했다.
퇴직연금을 통한 ETF 투자 등이 늘어나는 와중에 국내 증시가 호황을 맞으면서 퇴직연금 수익률도 뛰어올랐다. 지난해 말 기준 퇴직연금 평균 수익률은 6.5%를 기록하면서 2005년 제도 도입 이후 최고치를 나타냈다. 다만 작년에 10% 넘는 수익률을 거둔 국민연금과 글로벌 연기금 등과 비교하면 저조한 성과다. 여전히 원리금 보장형으로 운용되는 규모가 큰 탓에 수익률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었다는 게 금감원 설명이다. 원리금 보장형으로 운용된 퇴직연금의 경우 지난해 수익률이 3.09%에 그쳐 2024년(3.67%)보다 도리어 하락했다. 반면 실적 배당형 수익률은 증시 활황에 힘입어 같은 기간 9.96%에서 16.8%로 상승했다.
퇴직연금 가입자의 절반은 수익률이 연 2%대에 머문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수익률 상위 10%는 실적 배당형에 전체 적립금의 84%를 투자한 덕분에 적립액의 67%를 운용 수익으로 쌓을 수 있었다. 반대로 수익률 하위 10%는 적립금의 74%를 원리금 보장형으로 운용해 납입한 원금 대비 적립액을 크게 키우지 못했다.
금감원과 노동부는 향후에도 퇴직연금의 안정적인 운용 환경을 조성하고 자산 배분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제도 개선을 추진할 계획이다. 디폴트옵션이 도입 목적인 수익률 제고를 달성할 수 있도록 승인 후 일정 기간이 지난 상품에 대해 평가를 실시해 변경, 승인 취소를 검토하는 등 지속적으로 제도를 개선한다. 직접 운용하기를 어려워하는 가입자가 전문 수탁기관의 도움을 받도록 기금형 퇴직연금제도도 도입한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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