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소재·부품 회사 교세라의 창업자 이나모리 가즈오는 일본에서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그는 파나소닉 창업주 마쓰시타 고노스케, 혼다 창업주 혼다 소이치로와 더불어 일본 3대 경영인으로 꼽힌다.
1959년에 교세라의 전신 교토세라믹을 세운 당시 이나모리의 나이는 27살에 불과했다. 300만엔의 자본금으로 시작한 벤처기업 교세라는 현재 시총 2조4700억엔에 달하는 대기업이다. 이나모리가 1984년 설립한 다이니덴덴(현 KDDI)은 현재 일본 2위 이동통신사로 성장해 시가총액이 약 11조1700억엔에 이른다. 그는 65세가 된 2005년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46년간 모은 퇴직금 6억엔을 전부 모교인 가고시마대학 등에 기부하겠다고 밝히고 불교에 귀의해 승려의 길을 걷기도 했다.
그러나 이나모리는 금세 경영 현장에 돌아왔다. 2010년 파산 위기를 맞은 일본항공(JAL)이 그에게 'SOS'를 쳤다. 그때 이나모리는 이미 팔순에 가까운 나이였지만 녹슬지 않은 노장의 실력을 보여줬다. 이나모리는 무보수 회장직을 맡아 2년 8개월 만에 JAL을 도쿄 주식시장에 다시 상장시키고 회사를 정상 궤도에 올려놓았다. JAL을 흑자로 전환하는 데 성공한 이나모리 회장은 2013년 퇴임했다.
그는 생전 젊은 경영자 육성에도 앞섰다. 경영 아카데미 '세이와주쿠'를 설립해 일본은 물론 한국, 미국, 중국 등 전 세계에서 1만 명이 넘는 경영인을 배출했다.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도 젊은 시절 세이와주쿠 수강생이었다.
이나모리는 2022년 8월에 90세를 일기로 노환으로 사망했다.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십과 엄격한 경영 원칙을 가지면서도 소박한 성격, 넓은 인품을 지닌 경영인으로 기억되는 이나모리는 일본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기업인 중 한명이다.
한국과도 깊은 인연이 있다. 이나모리는 대학 시절 첫 직장 동료로 만난 스나가 아사코와 결혼했다. 그가 사망할 때까지 일평생을 함께 한 그의 아내는 우장춘 박사의 넷째 딸이다.
<이나모리 가즈오, 부러지지 않는 마음>은 저자가 생전 각국의 리더들과 젊은 경영인을 대상으로 한 리더십 강연의 핵심을 모은 책이다. 저자는 이 책을 '리더십 지침서'라고 소개한다. 이나모리가 일생을 경영 현장에서 보내며 터득한 경영론이 43개의 주제로 정리됐다. 이나모리 자신이 직접 경험한 일화부터 불교 사상, 일본 역사 속에서 그의 교훈이 적용될 수 있는 사례도 가볍게 담겼다.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노력'이다. 저자는 이를 "교세라 철학의 근간이 되는 원칙"이자 "지금까지 걸어온 내 인생을 가장 단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모든 게 빠르게 변하는 현대 사회를 "리더의 수난 시대"로 정의한다. 이어 "격변하는 환경 속에서 수많은 사람을 한데 모아 장애물을 뛰어넘고 조직을 발전시켜야 하는 요즘 리더에게는 더욱더 남다른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책은 노력에 기반한 열정, 의지, 인격, 이타심, 목표, 도전, 긍지와 같은 가치들을 강조한다.
위대한 업적에 비해 이나모리 회장이 얘기하는 경영론은 평범하다. 책은 구체적인 경영 전략보다는 보편적인 인생관과 경영 원칙을 이야기한다. 다소 시시하고 진부한 조언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이 책이 유명 식당의 '비밀 레시피' 같은 성공 비결 대신 철학을 강조하는 이유는 이나모리 회장의 인생관에서 찾을 수 있다. 저자는 "성공에 이르는 수많은 방법이 있다고 하지만, 저는 '열심히 일하는 것'을 뺀 성공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이 경영인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가 특출난 능력이 아닌 원칙을 따라 묵묵히 걸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마음이 복잡할수록 원칙에 더 집중한다"는 그의 말은 경영인이 아니더라도 모든 독자가 직장생활과 일상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 인생철학이다.
구교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