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HD현대重, 하청노조와 교섭 의무 없다" … 손 들어줬지만
노란봉투법 시행 전 사건엔
단체교섭 기준 엄격히 적용
노봉법이 뒤흔들 판결 기준
실질적 지배 했다면 사용자
근로계약관계 없어도 인정
하청 파업·소송 빗발칠 듯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 시행 이전의 원·하청 분쟁에 대해 대법원이 '원청이 단체교섭 의무를 지려면 근로계약 관계가 전제돼야 한다'며 선을 그었지만 산업 현장에서는 "이미 늦었다"는 반응이 나온다. 근로계약 없이도 사용자로 간주할 수 있도록 하는 노란봉투법이 이미 시행돼 기업의 법적 리스크가 커졌기 때문이다.
재계에서는 "법원이 노란봉투법을 해석할 때 보다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지 않는다면 당분간은 하청업체들의 파업이나 소송이 빗발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21일 대법원이 HD현대중공업과 하청 노조의 단체교섭 청구 소송에서 원청 손을 들어준 것은 법체계상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는 각종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므로 그 대상을 함부로 확대해서는 안 된다고 봤기 때문이다.
노조법 90조는 부당 노동행위를 한 사람을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형사처벌하도록 한다. 단체교섭 거부로 부당 노동행위에 해당하려면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여야 한다. 노조의 요구대로 법원이 모든 원청에 사용자성을 인정하면, 기업 경영진은 형사처벌을 피하기 위해 수시로 하청 노조의 교섭 요구에 응해야 한다.
노란봉투법 시행 이전부터 법원은 사용주의 개념을 근로계약 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넓게 보는 판결을 내놓았지만, 이는 원청 기업이 하청 근로자들을 향해 부당한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막는 수준에 그쳐 왔다.
이날 다수 의견을 제시한 대법관 8명은 "지배·개입의 부당 노동행위의 경우 근로자와 직접 근로계약 등을 체결하지 않았어도 근로자의 기본적인 노동 조건에 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가 노동 3권을 침해할 수 있으므로 사용자 개념을 확대한 것"이라고 했다. 이어 "단체교섭은 근로 조건의 유지·개선 등을 위한 단체협약의 체결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며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의 범위는 근로계약 관계의 존재 여부와 밀접한 관련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법원에서는 같은 쟁점으로 다투고 있는 CJ대한통운, 현대제철, 한화오션, 백화점·면세점 노조 등의 사건이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대법원 판단에 따라 이들 재판에서는 기업의 하청 교섭 의무를 인정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날 대법원의 판결이 산업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미치는 파급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대법원이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의 분쟁에 대해서는 '근로자의 근로 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라는 확대된 개념을 적용하면 된다고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조 측은 패소했더라도 새로운 법에 맞춰 원청에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있고, 원청이 재차 거부하면 파업을 하거나 새로 소송을 걸 수도 있다.
하청 노조의 손을 들어준 대법관 4명은 소수 의견을 통해 "계약 관계가 없더라도 도급인이 수급인의 근로 조건에 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다면, 그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에 해당한다"고 엇갈린 판단을 내놓기도 했다.
고용노동부 역시 원청과 하청 노조 간의 교섭 절차 및 사용자성 판단 지원 절차 등을 담은 시행령과 해석 지침을 일찌감치 마련한 상태다. 실제로 당사자인 HD현대중공업을 비롯한 주요 조선사들은 이미 개정 노조법과 정부 지침에 맞춰 내부 관련 절차를 밟아 가고 있다. 사법부가 과거 사안에 대해서는 원청의 교섭 의무가 없음을 명확히 하면서 해묵은 법적 리스크를 해소해 줬지만, 개정법 발효에 따라 향후 전개될 하청 노조와의 교섭 구도 자체를 바꾸지는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향후 법 집행 과정에서 산업 현장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한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향후 개정 노조법을 바탕으로 사용자성을 판단할 때도 민간 계약 관계를 존중해 보다 엄격한 기준을 적용함으로써 산업 현장의 혼란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도권의 한 판사는 "삼성전자를 비롯한 다수의 기업에서 파업을 동원한 노사 분쟁이 일상화되고 있는데, 노란봉투법의 적용 기준이 명확해지지 않으면 파업과 소송이 원청과 하청 양쪽에서 모두 빈발할 가능성이 크다"며 "개별 사건에 대해 뒤늦게 판결할 수밖에 없는 법원보다는 정부와 노사 단체가 적극 협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판결과 관련해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법원의 판결을 존중하며 향후 성실하게 교섭에 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홍주 기자 / 박승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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